사진 왼쪽의 바둑판 과제 상단은 집 크기 차이가 많이 나는 쉬운 과제, 하단은 집 크기 차이가 적은 어려운 과제. 사진 오른쪽 각 과제 수행 시 바둑 프로 기사와 일반인들 사이에 대뇌의 활성화의 유의미한 차이가 나는 부위. 한국기원 제공프로 바둑 기사의 뇌 분석 결과, 운동 조절에 관여하는 소뇌가 숫자 판단 등 고차원적 인지 기능에도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기원은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태영 교수, 서울대병원 김민아 교수, 한양대 의과대학 조항준·권준수 교수로 구성된 연구팀이 바둑 프로 기사의 뇌를 분석했고, 이를 통해 '직관적인 수 감각'의 신경학적 기반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21일 밝혔다.
여기에서 '직관적인 수 감각'은 유아가 숫자를 배우기 전부터 물체의 많고 적음을 구분할 수 있으며, 동물 역시 먹이나 적의 수를 대략적으로 셀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같은 능력은 '어림 수 짐작 능력(Approximate Number System)'이라 불리며, 인간의 수학적 사고의 기초로 여겨진다.
연구팀은 바둑판 위 돌의 '집' 크기를 일일이 세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프로 기사의 특성이 '어림 수 짐작 능력'의 고차원적 형태라고 봤다. 이에 따라 이들 기사를 일반인과 비교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뇌 활성화 등을 분석했다.
바둑 돌을 두는 장면. 노컷뉴스 자료사진참가자들은 MRI 기기 안에서, 2개의 바둑판 그림을 동시에 제시받고 각각의 집 크기를 비교해 더 큰 쪽을 선택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그 결과, 집 차이가 많이 나는 쉬운 과제에서는 전통적으로 수 인지에 관여하는 대뇌 피질 영역이 주로 활성화됐으나, 집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어려운 과제에서는 우측 소뇌가 뚜렷하게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이 소뇌 활성도가 클수록 바둑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실제 프로 기사가 되기까지 걸린 기간이 짧아지는 경향도 발견했다. 이 같은 결과는 '직관적 수 감각'이 단지 두정엽과 같은 대뇌 영역만을 통해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고도로 숙련된 직관은 소뇌 기반의 자동화된 신경 처리로 작동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에 주로 운동 조절과 균형 감각에 관여한다고 알려진 소뇌가 숫자 판단이라는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에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은 학문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이태영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간의 수 감각이 어떻게 발달하며, 전문가 수준의 직관적 판단이 어떤 뇌 회로를 통해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며 "특히 바둑이라는 전통 게임(스포츠)이 뇌 인지 기능을 연구하는 데 매우 유용한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기원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학술지인 'Scientific Reports'에 온라인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