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 산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의 이영면 위원장. 연합뉴스계속고용·정년연장에 관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온 공익위원들이 정년 후 계속고용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되, 2033년부터 의무고용연령이 65세가 되도록 단계적으로 계속고용 의무기간을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또 계속고용이 이뤄질 경우 기존 노동조건을 그대로 승계하지 않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일 대통령 직속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계속고용위)' 공익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고령자 계속고용의무 제도화'에 관한 '공익위원 제언'을 발표했다.
지난해 6월 발족한 계속고용위는 2013년 60세로 정년을 연장한 이후 멈춰섰던 고령노동자의 계속고용 해법을 논의해왔다.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연령이 현행 63세로 정년퇴직을 하는 60세와 3년의 차이가 있어 '소득 절벽'이 발생하곤 한다. 게다가 2033년부터 연금 수령 연령이 65세로 연장돼 소득 공백이 더 커질 위기여서 노동계는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경영계는 우선 정년퇴직한 후 재고용돼야 한다고 맞섰다. 단순히 정년을 연장하면 근속연수 등으로 임금이 정해지는 '연공급제' 탓에 비용 부담이 급증하는 만큼, 정년 이전의 임금·노동조건과 관계없이 새로운 조건에서 다시 고용하자는 얘기다.
이에 대해 공익위원들은 노동계가 주장한 '일률적 정년연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공익위원들은 "법정 정년과 연금수급 연령을 일치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청년들의 고용상황이 엄중한 상황에서 법정 정년 연장이 청년층의 채용과 대기업·공공부문 등의 취업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법정 정년을 연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전까지 시행한다는 전제로, '과도기적 조치'로서 계속고용 의무제도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고령자 계속고용의무제도 적용 예시.(단위 : 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제공공익위원안을 살펴보면 올해 관련 입법에 성공한다는 전제 아래 2027년까지는 2년간 법정정년인 60세까지만 고용하도록 유예기간을 부여하되, 2028년부터 2031년까지 매 2년마다 1년씩, 2032년부터는 매년마다 1년씩 계속고용 의무기간을 연장해 2033년에는 65세까지 계속고용의무를 부과하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공익위원들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완화 △청년일자리와의 조화 △노동시장의 활력 제고 △제도 운영의 노사참여 등 4대 원칙을 제시했다.
아울러 △60세 정년을 도과하고도 계속 일하려는 고령노동자에게 계속고용 기회를 부여하되 △계속고용기간 동안 '생산성'에 상응하는 '적정임금'을 보장하고 △고령자의 건강·안전 등을 감안해 노동시간·직무 등에 대한 노동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공익위원들은 개별사업장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년을 연장한다면 이를 존중하되, 노사가 합의하지 못한 경우에만 고령자 계속고용의무를 지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사업장 내 직종, 직무, 직군 등에 따라 아래와 같은 여러 의무이행 방식을 병행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인 세부 유형으로는 ①정년에 도달한 고령근로자가 계속고용을 희망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기존 직무와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계속고용 하는 '직무유지형 계속고용' ②고령근로자·사용자의 합리적 사유로 계속고용이 어려운 경우 근로시간 단축·직무 등을 변경하는 '자율선택형 계속고용'을 내놓았다.
또 ③청년층이 선호하는 대기업·공공기관에 한해, 계속고용이 청·중·장년의 신규채용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경우 관계사로의 전적 등의 방식으로 계속고용의 기회를 제공해도 계속고용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보는 '계속고용특례'도 거론됐다.
이어 공익위원들은 정부가 계속고용의무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려면 △청년 등 노동자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고령친화 사업장으로 혁신하도록 지원하고 △노동시장 고령화에 대한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계속고용을 위한 적극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익위원안에 대해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은 "고령자 계속고용에 관한 노사 간 입장 차는 여전하고, 노사의 사회적 대화 조기 복귀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급속한 고령화,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정년간의 괴리로 인해 고령자 계속고용의 구체적 실현방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령자 계속고용 제도를 둘러싼 갈등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새 정부 출범 이후 신속한 입법여건 조성 등을 고려하여 오늘 공익위원들께서 준비하신 제언을 발표하게 됐다"며 "고령자 일자리 확대를 넘어 청장년 세대가 공존하는 활력 있는 노동시장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공익위원안이 실제 입법 단계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한국노총이 12.3 내란 사태 이후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보니 이번 안은 노사공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공익위원들이 그간 논의 성과를 갈무리한 수준에서 내놓은 이번 방안으로는 국회가 수용하도록 요구할 명분이 떨어진다.
더구나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어 노사 모두 차기 정부와 대화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난 1일 노동정책 구상을 발표하며 "정년 연장을 사회적 합의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대신 정년을 65세로 높이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같은 날 한국노총이 이 후보와 체결한 정책협약에도 '65세 정년연장 법제화' 문구가 담겼다.
또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경우, 이번 방안이 윤석열 정부 시절 진행된 사회적 대화의 결과물이라는 꼬리표를 떼내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앞서 고용노동부 장관을 사직하면서 "대책없이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들은 절망할 것"이라며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