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총리실 제공"이들 정부가 선거 전에 무역협정의 틀을 마무리 짓고 싶어한다. 이 문제를 해결한 뒤 선거운동을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미국발 관세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폭탄발언에 정부와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한국이 대선 전 협상의 틀을 마련해, 이를 치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려 한다는 의심이 야권도 아닌 협상 상대국인 미국에서 나와서다.
"관세협상 후 선거운동?" 美폭탄발언…정부 즉각 반발
베선트 장관은 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일본 등이) 선거 전에 미국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역 협상의 기본 틀을 마련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선거운동(campaign)'을 하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6월 3일 대통령 선거, 일본은 7월 20일 참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상대국의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까지 거론한 이례적인 발언이다.
해당 발언이 출마 선언이 임박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상황과 맞물리며 논란은 일파만파 번졌다. 무엇보다 최근 한미 '2+2 통상협의' 후 정부가 '7월 패키지'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것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정부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새벽 1시 자료를 배포하고 "'대선 전에 미국과 협상의 틀을 마무리 짓고 그 다음 선거운동을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하거나 논의한 바가 없다"며 "'서두르지 않고 절차에 따라 미국과의 협의를 진행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획재정부가 낸 입장문은 미국 재무부와도 조율된 내용이라고 한다.
'국내용 발언'이라 해도…'한덕수 선거용' 오해는 커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5년도 제1회 추경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나서고 있다. 윤창원 기자발언의 진위 여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일단 미국이 협상 타결을 서두르기 위해 상대국을 압박하는 '레토릭'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취임 100일을 넘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완성차와 차 부품의 관세 인하를 발표했고 중국과도 협상을 재촉하며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종 정책에 대한 여론 반발과 시장의 반응에 맞닥뜨린 트럼프 행정부가 '성과'를 강조하기 위해 내놓은 발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홍보용, 국내용으로 발언하지 않았나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을 서두른 게 없다"고 강하게 반박하며 "베선트 장관이 발언한 영어 원문을 보면 한국만 얘기한 게 아니고 일본, 캐나다를 뭉뚱그려서 얘기했다. 20명 이상의 많은 실무자들이 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드린 말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해당 발언이 미국의 정치용이라 하더라도, 대선 출마를 앞두고 미국과의 통상협의 성과가 조급한 한 대행의 처지가 미국 측의 압박카드로 활용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대행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2+2 통상협의에 대해 "굳건한 양자관계를 재확인했으며, 향후 협의의 기본 틀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내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던 자찬마저 퇴색하게 됐다.
한 소식통은 "미국이 한국의 대선과 정치적 상황을 모두 관심 있게 들여다보며 협상에 활용하려 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서도 "사실이라면 한 대행은 매국노이며, 최 부총리나 안덕근 장관은 '제2 이완용'의 졸개가 되는 것(민주당 박지원 의원)" "관세 협상을 공직자들이 선의를 갖고 국익을 위해서 열심히 하려고 해도 '한덕수 선거용인가' 오해를 받게 된다(개혁신당 천하람 의원)" 등의 질타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