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양국은 23일 서울에서 '제3차 한중 해양협력대화'를 개최하고 한중 간 해양 문제 전반을 폭넓게 협의했다. 외교부 제공최근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무단으로 대형 철골 구조물을 설치해 해양 주권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전남 영광군 해상에서 추진 중인 '낙월해상풍력 프로젝트'에 다시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해상풍력사업인 해당 프로젝트는 중국 자본이 흘러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과 핵심 부품이 중국산이라는 점 등 논란에 더해 공사 업체가 중국 선박을 불법으로 들여온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되며 사업 진행이 사실상 올스톱됐다.
업계에선 사업자에 해상 점유 권리를 빌려주는 해상풍력사업은 국가 안보와도 밀접한 사업으로 평가되는 만큼 수사 기관이 서둘러 이 사안에 대한 가르마를 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中국적 '순이 1600' 무단 기항 논란으로 수사…"해양 주권 침해"
25일 업계에 따르면, 명운산업개발 주도로 추진되는 낙월해상풍력 프로젝트는 지난해 3월 첫 삽을 떴지만 좀처럼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해상 사업은 사실상 중단 상태다.
해당 사업은 2조5천억원을 투입해 전남 영광군 낙월면 해역에 364.8㎿ 규모의 풍력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국내 최대 규모 사업으로 참여한 국내 기업만 100여 곳이다. 한국 공유수면에서 추진되는 해상풍력발전 사업은 사업자에게 해상 수면 점유 권리를 빌려준다. 사업이 해상 안보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공사 과정에 엄격한 인허가 절차를 두고 있다.
문제는 해상 공사를 담당하는 토성토건이 지난해 7월 해상풍력타워 설치를 위한 하부 모노파일(해상 구조물 지지용 대형 기둥) 설치를 위해 '순이(Shun-yi) 1600'호를 국내에 들여오면서 시작됐다. 순이 1600호가 중국 정리해양공정유한공사에 소속된 중국 설치선이었기 때문이다.
선박법 6조에 따르면, 국내 선박이 아닐 경우 불개항장 기항이나 국내 항간에서 여객·화물 운송이 불가능하고, 외국 국적 선박이 국내에서 운송을 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토성토건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고, 업계에선 이는 국내 영해를 침범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은 순이 1600호가 불개항장에 머물고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 목포해양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토성토건은 순이 1600호를 국내에 들여오기 전 목포해양수산청에 확인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는 "해당 업체가 순이 1600호 입항 전 목포청을 포함한 해수부에 공식 문의를 한 바 없다"며 "해수부는 순이 1600호가 목포항에 입항한 직후 수 차례 '해당 설치선은 외국적 선박에 해당되므로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안내했다"고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수사 과정에서 순이 1600호가 기항하면서 중국 국적 외국인 작업자가 들어온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순이 1600호가 모노파일 공사를 하던 중 중국 작업자 13명이 국내에 공식 승선 허가 절차를 밟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목포해경과 출입국관리사무소는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그리드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순이 1600호의 기항에 대해 "국제사회가 강하게 경계하고 있는 중국의 '서해 알 박기' 전략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며 "민간 개발을 가장해 타국 해역에 고정식 구조물을 무단 설치하거나 선박을 장기 계류시키는 방식은 사실상 해양 주권을 침식하는 전략적 침투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낙월해상풍력사업 측은 "정부 기관과 협의를 통해 순이 1600호를 매입했다"며 "해당 선박의 국적이 대한민국으로 변경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산 자본 유입 의혹도…"사실 아냐. 비그람파워 투자 받아"
낙월 해상풍력 발전단지 조감도. 명운산업개발 제공낙월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중국산 자본이 유입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명운산업개발은 지난 2021년 자회사 낙월블루하트에 해당 프로젝트를 양도했다. 낙월블루하트는 2021년 7월 설립된 명운산업개발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였지만 2023년 말 기준 28.2%는 태국 자본인 비그림파워코리아가 보유하고 있다. 비그림파워코리아는 명운산업개발 지분도 29% 가졌다. 표면상 태국 자본 비그림파워의 투자로 명운산업개발이 낙월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에너지엔지니어링(CEEC)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리드협회는 "명운산업개발과 낙월블루하트가 회사 인감 등 중요한 권한을 외부 법무법인에 맡기고 있는데, 이 인감이 실제로는 CEEC의 한국 사무소와 같은 주소 사무실에서 보관된다는 사실이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며 "(프로젝트를) 중국 국영기업이 뒤에서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비그림파워는 2016년 CEEC와 아시아 지역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고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의혹이 사실일 경우 낙월해상풍력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되는 전기 판매 수익이 국외로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중국 자본 유입 의혹과 관련해 낙월해상풍력 관계자는 "해당 프로젝트가 CEEC의 보증으로 자금을 조달받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태국 기업) 비그림파워의 보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핵심 부품 중국제 사용 지적도…업계 "수사 빨리 마무리해야"
낙월해상풍력 프로젝트의 핵심 부품이 중국 제품으로 쓰인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해당 프로젝트의 터빈은 중국계 업체인 벤시스의 제품을 사용한다. 터빈은 해상풍력발전 건설 원가의 25~35%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건설 원가의 15%가량을 차지하는 해저케이블도 외부망을 중국 형통광전 제품으로 사용한다. 특히 해저케이블은 매설 과정에서 해저 지형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민감한 정보가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산업연구원 이슬기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WTO 제지로 지난해 4월 우리나라 LCR(자국산 소재·부품 우대 조치)이 폐지되면서 직접적인 국내 제품 사용 지원책은 없는 상황"이라며 "국산 제품을 사용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간접적으로 우회 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각종 의혹으로 프로젝트 진행이 지지부진하자 업계에서는 수사 기관의 수사가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사가 지연되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만큼, 수사 기관이 서둘러 가르마를 타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풍력산업 업계 관계자는 "낙월풍력발전 사업은 국내 대규모 풍력 발전 산업의 첫 걸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산업"이라며 "수사 기관이 속도를 내서 빨리 논란을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