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사직 1년 맞는 전공의…'운 나쁘면 죽는 현실'에 못 돌아가

보건/의료

    사직 1년 맞는 전공의…'운 나쁘면 죽는 현실'에 못 돌아가

    '전공의 사직 1년' 절반 이상 의료기관 재취업
    '의원급' 대부분, 수련 때보다 '워라밸' 좋지만…
    "응급의료체계 붕괴 보고있어" 씁쓸한 마음도
    병역 미필 전공의들은 '입대 연기' 개정에 반발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요즘 저희끼리는 '중환자는 재수 없으면 그냥 죽겠다'고 말하곤 해요."

    응급의학과 4년 차에서 수련을 그만두고 현재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사직 전공의 A씨는 요즘 동료들과 종종 이러한 대화를 나눈다. 3차 병원인 상급종합병원에서 수련을 하다가 2차 또는 1차 의료기관에서 본 상황은 더욱 처참하기 때문이다.

    A씨는 "'초중증환자'처럼 당장 시술은 아니지만 진료는 필요한 애매한 환자의 경우 '응급실 뺑뺑이'가 여전하다"며 "최근에도 서울 전역 34곳에 전화를 했는데 환자를 받지 않아 경기권 병원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급여는 전공의 수련 시절보다 2~3배 늘고 근무 시간은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워라밸'은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지만, 무너지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마주하는 A씨는 씁쓸할 뿐이다.

    지난해 2월 정부의 의과대학 2천 명 증원 발표 뒤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난지 19일로 꼭 1년이 됐다. CBS노컷뉴스가 만난 사직 전공의들은 "응급의료 시스템은 붕괴하고 있다"며 수련병원으로 복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사직한 전공의 절반 이상은 현재 일반의로 병의원에 취업한 상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련병원에서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222명 중 지난달 기준 5176명(56.1%)이 의료기관에 재취업했다.

    재취업한 사직 전공의 중 58.4%인 3023명은 의원급 기관에서 근무중이고, 상급종합병원에 재취업한 전공의는 1.7%인 88명에 그쳤다. 사직 레지던트 9222명 중 4046명은 의료기관 밖에 있다.

    사직 전공의 송하윤씨는 "각자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동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듯하다"며 "의사로 돌아가지 않고 의학적 지식을 활용해 헬스 트레이너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응급실 돌아가지 않는 이유? "'소송 리스크' 전전긍긍할 바에…"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특히 이른바 '필수의료'로 불리는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은 수련에 복귀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히는 분위기다.

    A씨는 "수련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면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은 대부분 그만두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돌아가더라도 다른 과를 선택하겠다거나, (의정갈등 이후) 다른 과로 마음을 바꾼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동네 병원에서 일하는 사직 전공의 B씨도 "응급의학과 수련을 재개할 마음은 없다"며 "(의정갈등) 1년 동안 변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체감되지 않는다, 이제 기대조차 없어서 뉴스를 찾아보지도 않는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 이유로 '소송 리스크'를 꼽았다. 환자 치료 결과가 나쁘면 병원 또는 의사가 법적 책임을 지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B씨는 "환자는 시시각각 상태가 악화하는데 대학병원은 인력이 없으니 웬만한 중증환자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며 "환자를 받았다가 결과가 안 좋아지면 병원에서 책임을 져야 하니 더욱 꺼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실에서 '혹시나 소송을 당하면 어쩌나'하며 전전긍긍할 바에야 (그런 걱정 없는) 병의원에서 일하거나 다른 전공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덧붙였다.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 이경원 교수(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는 의료진의 소송 리스크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응급의료 분야에서 형사 처벌 면제, 민사 배상액 최고액 제한과 같은 법률적,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입대 연기' 개정…미필 사직 전공의 100여명 '반발 집회'

    병역 미필 사직 전공의들은 보다 현실적인 고민에 마주쳤다. 의대생은 전공의가 되면 '의무사관후보생'으로 등록되며, 보통 전공의 과정을 모두 마치고 군의관 또는 공중보건의로 입영한다. 현역 입영은 불가능하다.

    만약 전공의가 사직하게 되면 통상 사직한 다음해 3월에 군의관 또는 공중보건의로 입영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최근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라 훈령 개정을 통해 '현역 미선발자'로 분류해 입대 시기를 최대 4년까지 임의로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정부가 입영 문제를 쥐고 복귀를 종용하고 있다고 본다. 복귀하지 않으면 언제 입대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다른 의료기관에서 일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사직 전공의 송하윤씨는 "사직 전공의들은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원래 일정대로) 1년 뒤에 입영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입대하라 하면 입대해야 한다"며 "의무사관후보생 서약서를 통해 동의받지 않은 내용을 훈령을 통해 행정적으로 밀어붙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미필 사직 전공의 100여명은 오는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군 미필 사직 전공의 항의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