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회장·오픈 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연합뉴스역대급 AI(인공지능) 프로젝트로 불리는 '스타게이트' 참여를 두고 삼성전자의 속내가 복잡하다.
스타게이트 참여가 침체에 빠진 침체된 삼성의 분위기 반전을 끌어낼 수 있는 사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참여 방식에 따라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어서다.
다만 스타게이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다음날 "단연코 역대 가장 큰 규모"라며 호기롭게 발표한 프로젝트인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 득실 만을 따져서 결정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어서 삼성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경영족쇄' 푼 이재용, 첫 행보는 스타게이트 협의
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재계와 테크업계를 뒤흔든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의 방한(訪韓)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것은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전격 합류로 이뤄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3자 회동이다.
이 회장이 항소심 무죄선고로 '사법리스크'가 사실상 해소된 후 이뤄진 첫 대외행보이면서, 이른바 '딥시크 쇼크' 직후 이뤄진 '한미일 AI 동맹' 성사 가능성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오픈AI와 소프트뱅크, 오라클은 AI 합작회사인 스타게이트를 세우고 미국 내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 3사는 스타게이트가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이 AI개발에서 중국을 따돌리는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런 발표를 내놓은 직후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고성능 AI모델을 내놓으면서 충격을 안겨줬다. 이런 상황 속 삼성전자가 스타게이트에 합류할 경우 명실상부 한미일 AI 동맹이 탄생한다.
KB증권 김동원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수인 메모리와 파운드리 제조 설비를 확보하고 있는 동시에 턴키(일괄생산) 공급이 가능한 대규모 AI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보한 부분이 스타게이트 전략 파트너로서의 최대 강점"이라고 밝혔다.
삼성 입장에서도 스타게이트 합류가 반도체 사업 부진으로 촉발된 '삼성 위기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삼성은 지난 1993년부터 30년 넘게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왕좌'를 지켜왔지만 최근 AI산업 발전으로 인해 급증하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은 SK하이닉스에 내줬다. 지난해엔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연간 영업이익(15조1천억원)이 SK하이닉스(23조4673억원)을 크게 밑도는 등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를 위협 받고 있다. 이 회장이 지난 2019년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를 천명하며 뛰어든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이종환 교수는
"삼성은 HBM 선두 탈환과 파운드리 흑자 전환이 절실한데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 빅테크와의 협력히 절실하다"며 "스타게이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삼성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스타게이트, 벌써 회의론…투자가치 있어야 움직인 삼성
박종민 기자스타게이트가 첫 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나오는 회의론은 삼성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스타게이트의 실질적인 내용과 투자금 확보 방안 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오픈AI 등 3사는 우선 1000억 달러(우리돈 약 145조원)를 우선 출자하고 향후 5년 간 5천억달러(약 720조원)를 투입하겠다고 했는데 지난달 미 파이낸셜타임스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아직 스타게이트가 필요 자금과 정부의 지원 계획을 확보하지 못했고, 프로젝트 완성 뒤엔 오픈AI가 인프라에 대한 독점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손정의 회장은 지난 4일 이재용 회장과 만남에 앞서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스타게이트 업데이트와 삼성과의 잠재적인 협력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전하며 '이재용 회장에게 투자를 요청할 것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엔 "이제부터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엔비디아 등처럼 스타게이트에 기술적 파트너사로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손 회장 등이 소프트뱅크 등과 같은 재무적인 참여를 포함한 파트너사가 되는 쪽으로 요청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오픈AI와 소프트뱅크는 각각 190억달러(약 27조원), 오라클은 70억달러(약 10조원)을 스타게이트에 초기 투자할 것으로 전해졌는데 112조원(지난해 연말 기준)이 넘는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을 감안하면 참여 여력은 충분하다.
다만 '재무적인 여력이 있느냐'와 '
삼성이 스타게이트에 그만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앞서 손정의 회장은 3년 전 이 회장에게 Arm 매각을 타진했지만 당시 이 회장의 입장은 "잘 모르겠다"였다. 당시 삼성 내부에선 "Arm이 매력적인 회사이지만 투자 규모를 생각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스타게이트 참여, 이제 논의의 첫 발 뗀 것…따져봐야"
스타게이트 참여와 관련해 삼성 내부에선 아직까지는 신중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세 수장의 이번 회동이 실무단에서 충분한 사전 협의가 이뤄진 후 마련된 자리가 아니라 오픈AI와 소프트뱅크, 삼성전자의 수장들이 논의의 첫 물꼬를 트는 자리였기 때문에 '
본격적인 검토와 논의는 이제부터'라는 것이다.
당초 이 자리는 DS부문장인 전영현 부회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이 샘 올트먼 CEO 등과 면담하는 자리로 조율되었지만 전날 무죄를 선고 받은 이 회장이 직접 참석을 전격적으로 결정하면서 급물살을 탔다는 후문이다.
손정의 회장은 역시 이 회장과의 만남 후 취재진에게게 "우리의 (스타게이트) 업데이트와 모바일 전략, AI 전략에 대해 얘기했고 좋은 논의였다"고 전하면서도 삼성의 스타게이트 합류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삼성과) 더 논의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미국 신정부가 이를 '트럼프 프로젝트'로 내세운 것도 삼성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샘 올트먼 CEO와 손정의 회장,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을 백악관으로 불러 기자회견을 열고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직접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스타게이트에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하진 않지만 규제 완화와 세금 혜택, AI 인프라 독점 권한을 부여하는 등 간접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신정부가 막 출범하는 상황 속 미 대통령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참여 여부를 두고 삼성이 경제적인 득실만 계산해 결정을 내리기 만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류도 흘러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
삼성의 스타게이트 참여 여부는 이제 막 내부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로 봐야 할 것"이라며 "단순히 기술적 협력 수준에서 참여를 할지 재무적 투자자 형태로 참여할지, 후자라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참여할지 종합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하고 스타게이트 측과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전되려면 보다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