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큰'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스포일러 주의
하정우가 오랜만에 '추격자' '황해'에서와 같이 서늘하고 건조한 얼굴에 거친 액션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브로큰' 속 하정우는 날 것의 매력을 품은 채 살아났지만, 설득력을 잃은 복수극은 겉멋만 남긴 채 깨져버렸다.
어느 날 하나뿐인 동생 석태(박종환)가 시체로 돌아왔다. 그리고 동생의 아내 문영(유다인)은 자취를 감췄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던 민태(하정우)는 자신과 같은 흔적을 쫓는 소설가 호령(김남길)을 만나고, 그의 베스트셀러 '야행'에서 동생의 죽음이 예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얽혀버린 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형제가 몸담았던 조직과 경찰까지 개입하며 서로가 서로를 쫓고, 민태는 동생이 죽은 그날 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노의 추적을 시작한다.
신인 김진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베테랑 배우 하정우를 비롯해 김남길, 유다인, 정만식 등이 주축이 된 '브로큰'은 시체로 돌아온 동생과 사라진 그의 아내, 사건을 예견한 베스트셀러 소설까지, 모든 것이 얽혀버린 그날 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달려가는 민태의 분노 어린 추적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브로큰'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영화는 시작부터 여러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 겸 그들이 지닌 정보값을 간략하게 나열하며 궁금증을 유발한다. 여러 인물이 각자의 사연을 지닌 채 움직이며 관객들에게 각 인물이 가진 조각과 그들 사이를 잇는 사건들의 조각을 끼워 맞추며 퍼즐을 완성해 볼 것을 권유한다.
복수를 향한 집념을 불태우는 민태의 추적극 중간중간 거친 핏빛 액션 조각들이 쏟아지며 장르적인 재미를 더하고자 한다.
여기에 동생의 죽음과 소설 속 내용이 일치한다는 미스터리까지 던지며 제법 흥미로운 심리 추적극으로 나아갈 것 같던 영화는 사실 장치들만 나열되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결국 추동력을 잃는다.
영화 '브로큰'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또한 미스터리한 추적 액션극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주인공 민태라는 인물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점은 관객들이 마냥 주인공과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지 못하게 만든다.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라는 분노에서 출발한 민태가 동생의 죽음 뒤에 숨겨진 비밀을 밝히기 위해 나선 여정은 마치 개의 복수를 위해 나선 존 윅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민태에게는 존 윅과 같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복수에 나서게 된 계기는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어도, 그 계기 뒤에 숨겨진 이유를 납득시킬 수 있다면 말도 안 되는 복수극은 명분과 공감을 얻게 된다.
민태의 복수극도 계기도 있지만, 그 계기가 명분과 공감을 사는 데는 실패한 것이 '브로큰'이라는 복수극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공감할 수 없는 민태의 원념과 방향성에 관객은 민태의 복수를 두고 그저 '폭력'이라고만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결말에서 민태가 복수의 대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킬 때조차 복수로 인한 카타르시스는 느끼기 어렵다.
영화 '브로큰'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아쉬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며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그러나 어떤 인물은 주요하게 풀어내야 할 사연을 지녔음에도 미처 풀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미스터리를 심어준 인물은 매력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한 채 그 역할이 끝난다. 캐릭터에게 주어진 설정은 흥미롭지만, 이를 서사 안으로 끌고 가지 못한 까닭이다.
이처럼 민태가 동생의 죽음의 원인을 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선 여정이 중심이라지만, 폭력적인 행위만 부각되고 민태의 여정과 미스터리한 요소 간 상호작용이 약해지며 이야기의 재미는 줄어들었다.
결국 의심스럽고 흥미로운 설정을 가진 캐릭터들은 많이 등장하지만, 이들 사이를 잇는 연결과 서사가 부족한 영화는 폭력이란 성근 알맹이를 겉멋으로만 두른 채 끝나게 된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큰 가운데, 배우들은 각자가 맡은 캐릭터를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열연을 펼쳤다. 캐릭터와 별개로 배우들의 호흡 역시 좋다. 특히 하정우는 이전 작품들보다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100분 상영, 2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브로큰' 포스터. ㈜바른손이앤에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