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앞둔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의 모습. 박인 기자"저희는 긴 연휴가 더 싫어요. 시간적 여유가 많으면 명절에 제사를 안 지내고 싶을 테니까요. 저 같아도 해외로 나갈텐데요."
서울 강서구 화곡중앙시장 상인 변선근(49)씨는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최장 10일의 황금 연휴를 맞았지만 "손님도 없어 전혀 연휴가 반갑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연휴 반납하고 장사 나왔건만"…상인들 한숨 가득한 썰렁한 거리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오후 화곡중앙시장에는 활기 대신 냉기류가 흘렀다. 가게 간판들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온 손님들은 10여명밖에 없었다. 시장 한가운데에서 반찬가게를 운영 중인 김정순(59)씨는 "명절이 오니까 오히려 더 장사가 안 된다"며 "(임시공휴일이 지정돼) 연휴가 워낙 기니까 우리 작은 아들도 일본 간다고 비행기 표까지 다 끊어놨다는데 (손님들도) 다 여행을 간 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26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김희순(62)씨도 "사람들이 다 (국내에서) 나가기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들은 연휴가 긴 걸 안 좋아한다"며 "임시공휴일로 내수를 살리자는 건 정부나 국회가 서민들의 속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혀를 찼다.
이곳에서 350m 가량 떨어진 양천구 신영시장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넓은 통로에선 "딸기 한 팩에 6천원 씩" 등을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상인들은 사람들이 명절을 맞아 구경은 와도 물건을 좀처럼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인회 총무를 맡고 있는 양기복(50)씨도 "구경만 오지 구매를 하진 않는다"며 씁쓸해했다. 상인 박향님(63)씨 역시 "오히려 연휴가 길면 해외든, 여행지든 떠나게 된다"며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은 (연휴가 길어져) 여기보다는 관광지로 간다"고 말했다.
설날 연휴를 앞둔 서울 구로구 남구로시장의 모습. 박인 기자동작구 남성시장과 구로구 남구로시장은 비교적 사람들이 붐비는 모습이었다. 명절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시장을 방문한 가족 단위의 시민도 많았다.
하지만 지난 설날에 비하면 사람이 많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과일가게를 오랫동안 운영 중인 강지연(73)씨는 "매출이 작년보다 30%는 떨어졌다"며 "예전엔 선물을 하기 위해 찾은 손님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선물하는 사람도 많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상인 서인희(61)씨도 "옛날엔 시장이 정말 바글바글했는데 지금은 구멍이 숭숭 보인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상인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동작구 주민 지모(60)씨는 "원래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왔는데 지난 명절에 비해 사람이 진짜 없는 편"이라며 "한참 기다리기도 하던 정육점도 대기 줄이 짧다"고 말했다.
명절을 맞아 고기를 사러 왔다는 70대 주민은 "지금도 사람이 많지만, 작년엔 지금보다 확실히 많았다"며 "경기가 워낙 안 좋아 부담이 돼서 작년보다 확실히 적게 사게 된다"고 했다.
내수경기 진작? 현실은 해외로 떠난다…정부, 시장 살리기 나서
설날을 앞둔 서울 강서구 화곡중앙시장의 모습. 박인 기자정부는 설 연휴 기간 내수경기 진작과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설날 연휴와 주말 사이의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소상공인들 사이에선 긴 연휴와 맞물린 해외 여행객 증가와 불경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정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천공항공사는 연휴 시작 전날인 지난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총 214만 1101여명의 여행객이 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역대 최대 공항 이용객 실적을 기록한 지난 추석보다 4.7%가 높은 수치다.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자 정부도 역대 최대 규모인 900억 원을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투입하며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이에 따라 온누리상품권 특별할인 판매와 환급행사를 이용하면, 전통시장에서 20만 원을 들여 농축산물을 구매할 때 최대 8만 원을 절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