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비상대책위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내란·탄핵 정국 속에서 국민의힘이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87체제'(6공화국) 극복을 목적으로 내걸고, 내란 사태로 귀결된 원인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는 시각이다.
구체적으로 오는 4~6월 사이로 전망되는 조기 대선 당선자의 임기를 차기 총선 시점인 2028년 4월까지로 맞추고, 4년에 한 번씩 중임제 대선을 치르면서 임기 2년을 채운 뒤 지방선거를 통해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를 거치는 방안이다.
하지만 여소야대(與小野大)의 권력 지형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찬성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궁극적인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심판 이후 단 60일 만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의 시간적 제약도 존재한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번째)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비상대책위원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19일 "조만간 (당내) 개헌 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구속된 이후인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긴급 비대위 회의를 열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어서 대부분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불행한 일을 겪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통령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런 제도를 고친 뒤에 대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진작부터 해왔다"고 덧붙였다.
권 비대위원장은 "개헌해야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며 "40년 된 87년 체제가 바뀔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바꿔야 더 이상 불행한 사태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야당도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국회의장은 개헌에 적극적인데 야당 의원들은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개헌을 지지하는 분들과 연합해 여론을 더 들어보고 필요한 정치 제도, 정부 형태에 대해 여론을 형성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 비대위원장의 '개헌' 제안은 시점의 정치적 의미를 놓고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권력 분산의 필요성 자체는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가 마치 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에는 찬반이 나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개헌의 핵심 쟁점인 권력구조 개편인 상황에서 차기 대선주자들의 동의는 필수불가결하다. 주요 주자들의 찬반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여당의 일부 주자들이 적극적인 논의 제기를 하는 형국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황진환 기자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민주당은 개헌 논의에 들어와야 한다"며 개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재차 밝혔다.
오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개헌을 논의합시다'는 글을 올리며 "진리는 평범한 데 있고 불완전한 인간을 믿지 말고 제도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정부와 의회가 건전한 상호 견제로 균형 잡힌 국정을 함께 추구하지 않을 수 없도록 통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 서글픈 아침, 여야가 국민께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했다.
오 시장은 앞서 지난해 1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의 임기단축을 전제로 한 개헌을 제안하며,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화두는 개헌이 돼야 한다. 모든 후보가 개헌을 약속하고 등장해야 된다고 본다"고 말했었다.
그 역시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궤를 같이 하는 논리를 폈다. '제도의 한계'를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와 연결짓는 방식이다.
당시 오 시장은 "합법적인 시스템이 우리 헌법 질서 내에 있었다면 과연 계엄을 선택했을까. 의회 해산과 내각 불신임 제도는 서로 균형을 맞춰 협치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날 다시 페이스북 글을 통해 비슷한 주장을 폈다. 그는 새벽 비상계엄 선포 47일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된 것 관련해 "이 아침, 새삼 지난 47일간의 격랑으로 악몽을 꾼 듯하다"면서 "한 지도자의 무모함으로 온 국민이 허탈감과 참담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아침"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다른 광역단체장 출신 정치인도 최근 사석에서 "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서 '개헌을 강하게 띄울 대권주자를 세워야 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며 여권 대선 출마자 전제 조건으로 개헌 공약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