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재판관들이 심판정에 앉아 있다. 류영주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탄핵심판' 첫 변론준비기일…尹 측 "탄핵 적법한지 따지겠다" ②尹 측, 탄핵심판서 "대통령, 고립된 약자…난도질당해" 주장 ③왜 대통령 탄핵심판을 먼저 하냐고요?[법정B컷] ④尹 불출석에 탄핵심판 4분 만에 종료…재판관 기피신청 기각 ⑤심판정 들어온 8명의 재판관, 尹 재판 방해 '칼차단' ⑥尹측 "평화 계엄" 궤변에 "반드시 파면해야"…탄핵심판 본격 설전 ⑦尹 "인권유린" 반발에 "변경 안해"…헌재, 탄핵심판 속도 ⑧尹 탄핵심판서 드러난 '그들만의 망상, 그들만의 세상'[법정B컷] (계속) |
어떤 '
망상(妄想)'은 너무도 얕아 쉽게 깨지곤 하지만, 어떤 망상은 그 뿌리가 촘촘하고 깊어, 날로 굳건해지기도 합니다. 자기 확신이 강할수록, 동조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대체로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 16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보며 스친 생각입니다. 장장 200분간 진행된 변론에서 윤 대통령 측 대리인들의 발언들을 귀 기울여 듣다 보니, 윤 대통령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 정확히는 '윤 대통령의 망상'이 어떤 건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소 극우 유튜브를 즐겨본다고 알려진 윤 대통령 측이 얼마나 여론과 동떨어진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지를요.
이번 법정B컷은 헌법재판소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윤 대통령의 '망상' 속으로 가봅니다. 그 망상 속 '그들만의 세상'에서 윤 대통령은 ①
'정의의 사도'였고 ②'
부정선거 의혹'을 밝혀낼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았으며 ③
'인권이 유린당한 약자'였습니다. 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지배하는 망상의 기반이자 뿌리가 된 이 세 가지 프레임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평화적 계엄"이라는 尹, '정의의 사도'였나?
망상의 첫 번째 뿌리는
'정의의 사도' 프레임이었습니다.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 측 대리인들은 '계엄의 정당성'을 피력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 비상시국 속, 계엄 선포는 '필연적'이었다는 겁니다.
2025.01.16.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24헌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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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한 변호사 : 이 사건 비상계엄의 이유에 대해서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고 재판관님들도 가장 관심이 많으실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이런 계엄이 있었는가? 왜 대통령이 혼자 얼마나 속을 썩이다가 국민들이 이렇게 깜짝 놀랄, 옛날 군부시대 계엄을 떠올릴 계엄을 선포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은 지금 현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비상대권이 헌법에 부여된 대통령의 권한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법조인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재량에 의한 판단이고, 그것은 대법원 판례가 사법적 심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이미 판결을 한 내용이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하에 본인이 판단해 가지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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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변호사의 말만 놓고 보자면, 윤 대통령은 이 '비상 사태'를 보며 속앓이를 하다 어쩔 수 없이 헌정 질서를 회복하고자 비상계엄을 선포한 '정의의 사도'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배 변호사는 그렇게 믿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번 계엄이 '평화적 계엄'이었다는 발언에서도 그러한 믿음이 느껴졌습니다.
2025.01.16.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24헌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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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한 변호사 : 이 계엄은 아시겠지만, 평화적 계엄이었습니다. (…) 그게 국회를 갖다가 저희가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회가 헌법기관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수행 못 하게 한 죄책이라고 말씀하시는 거는 그게 상식과 논리에 맞는지…국민들이 다 보고 계셨는데. (…) 계엄 끝났다 이렇게 발표하는 그런 내란이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지, 그러한 계엄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이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니, 세상에 2시간 만에 끝나는 내란이 있느냐? 비상계엄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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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윤 대통령의 대리인인 조대현 변호사(한때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리인이었습니다)도 계엄의 정당성을 피력하며 외려 "국회의 탄핵 소추는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그 직에서 끌어내리고 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울먹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믿음(국민들의 눈엔 망상이겠죠)은 정말이지 굳건해 보였습니다.
'부정선거' 판치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연합뉴스'정의의 사도'인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 선포까지 해가면서 이뤄내야 할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 망상의 두 번째 뿌리,
'부정선거 의혹' 프레임이 등장합니다. 윤 대통령 측은 2020년 4·15 총선 등이 부정하게 치러졌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2025.01.16.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24헌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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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한 변호사 : 그래서 도대체 왜 국가비상사태로 판단될 수밖에 없었는지 거기에 대해서 제가 말씀, 빠른 속도로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최대 국정 문란 사태인 '부정선거'. 대통령은 대통령 기간 중에 부정선거에 대한 제보를 워낙 많이 받았고, 부정선거로 의심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부정선거 의혹을 밝히는 것은 대통령의 책무입니다. 부정선거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의혹을 밝히는 것은, 그건 당연한 대통령의 책무입니다. 증거에 의해서 명백하게 알아야지만 계엄을 선포하고 증거 확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다 의혹을 갖고 있고, 충분한 의혹의 이유가 생각되면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부정선거에 대한 증거 확보일 겁니다. 왜 평화적으로 부정선거 증거 확보에 나서지 못하고, 비상계엄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안타까운 상황을 제가 이따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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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윤 대통령 대리인들은 '부정선거 의혹 규명'이 윤 대통령에게 주어진 책무였다며 보다 구체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2025.01.16.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24헌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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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한 변호사 : 이제부터 부정선거 의심 정황들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선거 시스템 관리 부실부터요. 첫째 해킹 및 투개표의 전반적 조작 가능성이 발견됐습니다. 선관위 시스템이 외부망 침투 등 공격에 취약하고, 국내는 물론 중국, 북한의 해킹이 용이하고, 투개표 데이터에 대한 전반적 조작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뭐 아시겠지만, 사전선거(투표)가 도입된 이후로는 법원이 증거 확보가 불가능한 상탭니다. 몇 명이 투표했는지를 알 수가 없고…(…)
이런 시스템이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여기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은 서버에 들어가서 자기들이 투표했다고 허위로 말하고, 그다음에 선거함에, 자물쇠를 검은 종이로 씌워서 다 빼게 되어 있습니다. 열어가지고 얼마든지 넣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 엉성한 걸 했을까요? 어느 철학자가 '목적 없는 사람의 행동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목적이 없이 그렇게 했을까요? 선거관리시스템 관리 부실 및 부정선거 의심 정황들, 두 번째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전투표 수 부풀리기에 대한 선거 결과 조작 의혹. 좀 전에 말씀드렸듯, 부풀리기를 확인할 길도 재판할 길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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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의혹을 확인할 길은 없다면서도, 부정선거가 벌어졌다는 모순된 논리, 이상하지 않나요? 윤 대통령 측은 약 20분에 걸쳐 '중국과 북한에서 선관위를 해킹하고 가짜 투표지를 넣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사전 투표를 신뢰할 수 없다'는 등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주장만을 내세울 뿐, 제대로 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신문에 나온 내용"이라며 언론 보도만을 근거로 삼았을 뿐입니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을 논리적으로 반박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습니다. 망상의 사전적 정의는
'근거 없는 객관적 신념'인데요, 정말 윤 대통령 측의 '부정선거' 의혹에는 '근거'라곤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심지어는 부정선거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관계가 있다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2025.01.16.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24헌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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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한 변호사 : 저희는 이 불법선거가 사실은 중국과 크게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전자 투개표기를 수입한 중국의 그, 육·해상 일대일로 대상 국가들이 키르기스스탄, 콩고, 볼리비아, 남아공, 벨라루스, 이라크, 미얀마, 모잠비크, 엘살바도르, 에콰도르, 필리핀…더 많습니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중국이 '일대일로' 대상 국가들로, 중국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 결과 키르기스스탄은 국민 부정선거 시위로 대통령이 하야했습니다. 콩고는 유혈사태가 났고, 우리 선관위에 항의했습니다. 볼리비아는 유혈사태 후에 대통령이 사퇴했습니다. 이라크는 부정 당선 25%가 나왔습니다. 필리핀은 (한국 전자 투개표기) 사용 불가 판결까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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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장, 납득이 가시나요? 그저 우리나라의 투개표기를 수출한 국가 일부에서 부정선거가 벌어졌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도 '부정선거'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 많은 사람들이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운 주장일 겁니다.
이에 국회 측 대리인들은 변론 직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논리"라며 (그렇게 쉽게) 선거 부정이 일어날 수 있다 하는 건 정말 위험한 변론"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尹, "인권 유린당한 고립된 약자"라면서…대리인만 11명 동원
변론이 끝나갈 무렵, 망상은 한층 더 짙어집니다. 앞서 지난 3일 진행된 탄핵심판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대통령이 고립된 약자가 됐다"고 주장했었던 윤 대통령 측은, 이번엔
'인권 유린' 프레임을 내세웠습니다.
헌재가 이날 변론기일을 3회 더 추가로 잡으며 '주 2회 심리'를 공식화하면서 탄핵심판 진행에 속도를 내자, 이에 반발한 겁니다.
2025.01.16.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24헌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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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환 변호사 : 이의 있습니다. 피청구인이 어제 체포된 상황에서 저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틀 간격으로 하는 거는 충실한 변론을 하기가 힘듭니다. 누가 봐도,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서 탄핵심판을 하는데 아무리 형사절차가 아니라 하더라도, 피청구인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 어떻게…그 생각을 해보십시오. 2월 11일과 13일 같은 경우에 12일 하루만 껴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신문을 해버리고 나면, 그러면 13일 준비는 저희가 피청구인 접견 가는 것도 힘든 상황이지만 어떻게 변론 준비를 합니까 재판장님? 이거는 재판의 형식을 취했지만, 실질적으로 누가 봐도 피고인(피청구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재판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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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논하는 윤 대통령 측에 대해,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재판부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며 "기일 변경은 없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습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측의 반발은 계속됩니다.
2025.01.16.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24헌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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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환 변호사 : 재판장님, 아무리 대통령이 지금 직무정지된 기간을 짧게 해야 할 사유가 있다 치더라도, 저희도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문명국가인데, 대통령의 인권이 '남파된 간첩'보다 못합니까? 아무리 형사재판이 아니고 헌법재판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 남파된 간첩, 북한과 직통으로 연결된 피고인을 재판할 때에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 재판부에서 충분히 논의를 거쳤습니다. 변경하지 않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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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권', 심지어 '남파된 간첩'까지 논한 윤 대통령 측근의 주장에선 '오만함'이 느껴졌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인권'이, 그리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남파된 간첩에게도요. 인권 운운하던 차 변호사의 발언에서는 인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묻어 났습니다.
윤 대통령 측 주장의 모순은 심판정 풍경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인권이 유린된 약자'치고는 너무도 많은 대리인단을 거느린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선임한 대리인만 14명, 이날 심판정엔 그 중 11명의 대리인이 자리해 윤 대통령을 호위했습니다.
이 든든한 대리인단을 앞세워 심판정 내외에서 여론전을 펼치며 이미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고 있는 듯한 윤 대통령, 국선 변호사의 조력조차 제대로 받기 힘든 다수의 형사 피고인들과는 선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인권을 유린 당한 약자라기엔, 방패가 너무 든든하지 않나요?
망상일까, 사실일까…헌법재판소가 진실 가려낼 시간
윤창원 기자
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믿음이 근거 없는 '
망상'일지, 근거 있는 '
사실'일지, 헌재가 진실을 가려낼 차례입니다.
다행히 헌재는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 윤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한 증거들을 채택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의 근거로 '부정선거 의혹'을 거론하면서 검토 필요성을 제기한 관련 기관 문서들, △대통령실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보안점검 관련 문서 △국가사이버안보센터의 선관위 보안 점검 보고서 △국정원의 선관위 보안점검 결과 보고서 등에 대해서도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하기로 한 겁니다.
이에 더해 △선관위원과 사무총장 명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 실시된 2020년 총선 전후로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에 체류했던 중국 국적의 사무원 명단 등 선관위 관련 사실조회 또한 채택했습니다.
이제는 헌법재판소의 시간입니다. 헌재는 오는 22일, 3차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8차 변론기일까지 미리 기일을 일괄 고지하며 심판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진실은 밝혀진다는 원칙이 깨지는 걸 보지 못했고, 우리의 말이 진실이기 때문에 당당하다"는 윤 대통령 측 배진한 변호사의 말대로, 헌재가 밝혀낼 진실이 무엇일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