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우리나라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또다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상태에서 맞이하게 됐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이어 두 번째다.
초유의 대통령 구속 등 정국 혼돈은 그때보다 한층 더 심화했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외교, 경제통상 등 한미관계 곳곳에서 중대한 시험대에 놓였다.
멈춰선 정상외교, 崔대행 준비 나서지만 현실적 의문
20일(현지 시각)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12·3 내란 사태'의 후폭풍 속 한미 간 정상외교는 사실상 가동을 멈췄다.
한미는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의 방한 일정을 취소하고,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 등 주요 외교 일정을 연기했다.
미국의 새 정부, 특히나 불확실성이 큰 것으로 평가받는 트럼프 당선인의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각국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때아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엇박자가 난 것이다.
NCG 회의는 지난 10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됐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이후 지속 여부엔 여전히 암운이 드리워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창원 기자최 대행은 이에 트럼프 신정부와의 소통에 고삐를 쥐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 대행은 지난 16일 외교·안보 분야 주요 현안 해법회의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국 신정부 출범 등 급변하는 대외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신정부와 본격적인 협의 채널을 조기에 구축하고, 민관의 대외협력 역량을 결집해 한미동맹의 안정적 발전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업을 포함한 신규 협력 분야를 발굴하는 동시에 새로운 관세 부과 등 현안에 철저히 대비하겠다"며 "심화하는 미·중 경쟁 속에서 공급망의 안정화·다변화 등 경제 안보 강화를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협의 채널 구축이나 부처별 대응 시나리오 등이 준비는 되더라도 현재 정치적 혼란 속에서 실행·실천되는 건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이병철 교수는 "최상목 대행이든,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든 카운터파트 자체가 흔들리는데 채널을 제대로 구축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페이퍼상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할 순 있겠지만 '액션'으로 나아가겠나"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이어 "미국 입장에선 소통 내용이 지속 가능한지, 담보할 수 있을지가 궁금할 텐데 그럴 수 있겠느냐"며 "수장이 없는 상황에서 한미관계의 큰 모멘텀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측 입장에선 한국을 '패싱'하고 북미 간 대화할 호조건이 만들어졌다고 판단할 텐데 우리로선 별다른 대응 툴이 없다"며 "이밖에 한미동맹, 방위비, 관세 등 여러 방면에서 우리나라가 불리한 여건으로, 높낮이가 뚜렷하게 차이 나는 출발선상에 선 셈"이라고 평가했다.
취임후 '행정명령 폭탄' 예상…관세 등 주요 통상 이슈 촉각
연합뉴스정부는 미국 신행정부 측과도 각급 소통 채널 구축과 관련한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헌법과 법률에 의한 절차에 따라 운영되는 데 대해 미국 측에서도 분명한 신뢰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미국 측과 소통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당일부터 수십 개의 행정명령을 쏟아낼 것으로 예견되는 등 치밀한 계산은 이미 시작됐다. 대표적인 것이 관세를 비롯한 통상 문제다.
멕시코, 캐나다, 중국, 유럽연합(EU)과 더불어 우리나라 역시 막대한 대미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점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커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556억 9천만 달러(약 82조 원)에 달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세대 경제학부 김정식 명예교수는 "아무래도 대통령이 중심을 잡고 국무총리실도 기능하는 체제와 비교해 대응에 실리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지만, 정치 상황이 이러니 어쩔 도리가 없다"며 "경제 관련 부처, 부문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미 수입을 늘려 흑자 규모를 줄이고, 미국과 중국에 집중된 수출선 다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의 제재로 대중수출 자체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며 "반도체 등 부문에 대한 대응책을 수립해야 하고, 성장률이 둔화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또 "트럼프는 중국 무역 제재에 역량을 쏟아부을 가능성이 높고 우리나라도 이에 동맹으로서 협력을 요구받을 것"이라며 "이런 문제로 트럼프 정부와 갈등이 생기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관세' 주장이 대두되고, EU는 멕시코와 관세 인하 등 25년 만에 무역협정 현대화에 합의하는 등 국제 무역 질서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 무게감 있는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아쉬워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