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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출산'의 장르, 이젠 바뀔 때 됐다[기자수첩]

기자수첩

    '비혼출산'의 장르, 이젠 바뀔 때 됐다[기자수첩]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기자수첩'은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대한민국 뒤흔든 톱스타 정우성의 '혼외 출산'
    비혼출산 이슈化 반갑지만…'가십성 소비'는 씁쓸
    '결혼=출산 기본전제' 아니라는 20대, 전체 43% 달해
    비혼가정 배경, 지극히 개별적·다차원적…윤리적 비난 어려워
    "모든 생명 차별 없이 자라게 하겠다"는 정부 약속이행이 더 중요

    영화배우 정우성씨. 연합뉴스영화배우 정우성씨. 연합뉴스
    지난달 24일부터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세상에 단 하나의 뉴스만 존재하는 양 들썩이는 중이다. 영화배우 정우성씨의 '비혼(非婚) 출산' 얘기다. 연예인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기막히게 포착하기로 이름난 연예매체의 단독보도 이후 모든 언론은 올 3월 정씨의 아들을 출산한 모델 문가비씨와 정씨 관련 온갖 억측을 포함한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상남자' 또는 '위선자'. 정씨를 향한 양극단의 평가마저도 그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 톱스타인지를 역으로 증명한다.
     
    저출생 문제를 취재해온 기자로서 '비혼 출산'이 이토록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지를 돌아보면 딱히 맞먹을 사례가 떠오르지 않는다. 사생활 들추기에 골몰하는 '옐로 저널리즘'과 유엔(UN) 난민기구 친선대사 이력까지 엮은 도덕 심판은 꼴사납지만, 우리는 생산자와 수용자가 판단한 '뉴스 중요도'가 모처럼 정확히 일치한 경우를 목도하는 중이다. '셀럽(celebrity)'의 위력을 실감하는 한편, 씁쓸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은 이 이슈가 단순히 가십성으로 휘발되지 않길 바라는 소망 때문이다.
     
    성별을 떠나 결혼에 대한 주체적 선택의 의미를 강조한 '비혼'이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간 '결혼'이란 울타리 밖의 아이가 속한 가정은 오랫동안 '미(未)혼모', '편(偏)부모' 등의 단어로 표현돼왔다. 기혼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녀가 양친 슬하에 자라는 것을 표준으로 간주해온 이른바 '정상가족' 담론의 편린이다. 유교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에서 그만큼 결혼은 출산의 당연한 전제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 공고한 등식에도 금이 가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 등에 따르면, 요즘 20대에게 혼후(婚後) 출산은 더 이상 상식이 아니다. 20~29세 응답자 중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비율은 전체 42.8%에 이른 반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는 답변은 40%를 밑돌았다(39.7%). 정씨 득남 보도에 붙은 수식이 (싱글인 상태를 미완(未完)으로 보지 않는) '비혼'인 것은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는 지표인 셈이다.
     
    합계출산율 0.7명대의 '축소사회'에서는 인구 감소로 닥칠 전방위적 후폭풍을 대비하는 것 못지않게 인식의 변화를 담아낼 그릇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전통적 핵가족이 곧 '가족'을 대변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는 MZ세대가 유달리 이기적이거나 경박해서가 아니다. 일부 기성세대의 섣부른 손가락질은 가장 손쉬운 동시에 무책임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변수정 연구위원은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의 '2024 인구 보고서(부제: 인구소멸 위기, 그 해법을 찾아서)'에서 한국은 이제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전체 60% 이상인 사회가 되었다고 짚었다. 이 중 후자는 대체로 '딩크족'(無자녀 부부가구)과 한부모 가정으로 구성돼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또 기혼자로 이행하기 위한 제반요건의 허들이 높은 만큼 "결혼이 무거워지고 어려워졌기 때문에 비혼 동거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우성씨의 혼외자 출산 논란을 거론하며 우리나라도 프랑스식 '등록동거혼'(PACS)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우성씨의 혼외자 출산 논란을 거론하며 우리나라도 프랑스식 '등록동거혼'(PACS)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연합뉴스
    개중엔 물론 결혼을 원했으나 타의로 싱글맘 또는 싱글대디가 된 케이스도, 서로가 '한 집에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는 아니라는 합의 아래 헤어진 커플도 있을 것이다.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처럼 처음부터 본인이 의도한 비혼 출산도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가족의 한 형태다. 결혼 없이 아이와 가족을 이루게 된 배경은 너무도 개별적이고 다차원적이라, '당위'로 판단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씨가 문씨와 결혼을 맘먹지 않은 것이 누군가에게 '아쉬운' 선택일 수는 있어도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라 보긴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처자식이 없는 유명인이 마찬가지로 싱글인 상대와 합의 하 맺은 관계로 생긴 아들에 대해 "아버지로서 책임은 끝까지 다할 것"이라고 공언했다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비혼 출산이 연간 출생아의 약 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한국이 아니었다면 보기 힘든 연말 시상식 풍경이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더 선을 넘은 훈수는 시대착오적 월권이다.
     
    기자는 올해 저출생을 주제로 삼은 창사기획 취재차 국내·외를 넘나들며 다양한 가족을 만났다. 법률혼의 테두리를 벗어나 아이를 기르는 커플, 아버지가 다른 '이부(異父) 형제자매' 넷을 키우는 다둥이 싱글맘(이상 스웨덴), 20대 초반 사귄 남자와 낳은 아들을 '피붙이가 아닌 이'들과 공동육아한 '자발적 싱글맘'(일본) 등….

    결코 불행하지도, 비장하지도 않았던 이들을 보며 든 생각은 우리도 이제는 비혼출산의 '장르'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돌도 안 된 시기부터 엄마 외 낯선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가노 쓰치(<침몰가족> 저자)는 이 사회가 흔히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가족상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자각하게 했다. "초·중·고 때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 환경이 남들과는 많이 달랐구나'를 알게 됐지만 그로 인한 콤플렉스나 내게 결함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야단을 맞으면 항상 '도망 갈 곳'이 있었죠. '침몰가족' 안에서 즐거웠고 좋았다고 생각합니다."(※관련기사: "세상 별의별(いろいろ) 사람이 있구나" 가르쳐준 어른들)
     
    '혼외자'란 단어가 주는 축축한 어감과 텁텁한 뒷맛에는 '치정극 아니면 신파'였던 숱한 한국형 서사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 자녀가 선택할 수 없는 가정의 형태로 그의 불행을 예단하기보다는, 부모의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아이'가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법적·제도적 보호 기반을 만드는 게 어른들의 할 일 아닐까. 정씨의 책임 이행보다 세간의 관심이 쏠려야 할 곳은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어떤 면을 지원할 수 있을지 더 살펴보겠다"는 대통령실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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