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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10주기는 보냈지만…"그날의 봄을 기억해주세요"



사건/사고

    [르포]10주기는 보냈지만…"그날의 봄을 기억해주세요"

    세월호 10주기 맹골수도선상추모식 이어 '세월호 선체' 앞에서 추모 문화제
    9년간 차마 사고 해역 오지도 못했던 아버지는 어떤 심정으로 이곳에서 딸을 찾을까
    10주기는 지나고 우리는 일상으로 나아가지만
    "딸을 혼자 남겨둘 수 없는 저는 늘 봄입니다…모두 그날의 봄을 기억해주세요"

    딸 고(故) 배향매 양의 이름을 외치며 국화를 던지고 있는 배희춘씨. 박인 기자딸 고(故) 배향매 양의 이름을 외치며 국화를 던지고 있는 배희춘씨. 박인 기자
    "향매야. 제발 아빠 소리 좀 들어다오. 아빠가 헌화하러 왔다"

    배희춘(66)씨는 오랫동안 살던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을 5년 전 떠나야만 했다. 아니, 어쩔 수 없이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다. 집 근처 버스정류장 때문이었다.

    "그 버스 정류장만 가면 진짜 미치겠어. 내가 (향매를) 따라갈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거야"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9반 고(故) 배향매양. 배씨가 야근하는 날이면 버스정류장에 서서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리던 딸. 일이 끝난 아빠에게 달려와 누가 봐도 신경쓰지 않고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리던 늦둥이 딸. 매일 저녁마다 버스정류장은 그대로인데, 내 자식은 다시 볼 수 없는 이 세상은 배씨를 미치도록 괴롭힌다.

    10년이 지난들 아버지가 딸을 잃은 슬픔에 익숙할까. 하지만 지난 16일. 배씨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길을 나섰다.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이 잠든 '그 바다'를 찾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2015년 이후 차마 참사 해역을 찾아가지 못했던 배씨에게는 큰 결심이었다.

    배양이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다던 그 무렵, 이 기사를 쓰는 나는 중학생이었다. 10년이 지난 세월호 참사는 어느새 낯설기만 한 이야기였다. 수습기자 꼬리표를 뗀 지 고작 열흘도 되지 않은 채 세월호 참사 선상추모식을 취재하러 가면서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유가족을 만나본 적도, 참사에 대한 기억도 없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6일 안산온마음센터에서 나눠준 노란색 손수건.박인 기자16일 안산온마음센터에서 나눠준 노란색 손수건.박인 기자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았던 지난 16일, 유가족 등을 태우고 목포항으로 향할 전세버스 3대가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보슬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유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이던 새벽 2시쯤부터는 돌연 빗줄기가 거세졌다.

    "가서 마음껏 울고 오세요"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 등을 돕고 있는 시민단체 안산온마음센터 관계자가 유가족들을 배웅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시민단체 4·16재단 관계자들은 버스에 탑승한 사람마다 '노란 손수건'을 하나씩 건넸다. 이들과 달리 나에게는 이 손수건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겸연쩍기도 했다.

    오전 7시쯤 도착한 전남 목포시 목포항에서 세월호 유가족 37명은 덤덤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잠든 진도 맹골수도를 찾기 위해 배 위에 올라탔다. 뜻하지 않게 10년의 긴 세월을 함께 보내야만 했던 유가족들은 "00아빠는 왜 안왔냐"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들은 혹시나 어디가 아픈건 아닌지, 병원에 간 건 아니냐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파도를 뚫고 88km를 세 시간 동안 달리던 배가 멈추자 '세월'이라고 적힌 녹슨 노란 부표가 눈에 띄었다. 진도 맹골수도 참사 해역에 도착하자 배 난간 위는 벌써부터 기자들의 카메라로 가득 찼다.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유족들은 원망스러우리만큼 잔잔한 물결 위에 떠있는 부표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16일 고(故) 김빛나라 양 아버지 김병권씨가 세월호 10주기 선상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박인 기자16일 고(故) 김빛나라 양 아버지 김병권씨가 세월호 10주기 선상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박인 기자
    단원고 2학년 8반 고(故) 이호진군의 아버지 이용기씨의 인사말에 이어 2학년 3반 고(故) 김빛나라양의 아버지 김병권씨의 추도사가 시작되자 유가족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새어나오고, 가슴에서는 통곡소리가 터져나왔다.

    배에 탈 때, 버스를 탈 때, 기자가 되기 전 사진과 방송으로 볼 때, 거리에서 지나칠 때… 내 눈에는 덤덤하게만 보였던 이들의 표정은 10년이 지나도 쉬지 않고 흐르는 슬픔이었다. 하루 아침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바다에 다시 찾아와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10년 전 이날처럼 여전히 쓰러져 우는 것 뿐이었다.
     
    "무심히 지나온 세월을 거슬러 그 시간을 되돌아간다면 너희들을 그 배에 태우지 않았을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정부는) 언제까지 죄 많은 부모로 만드려고 합니까. 더 이상 참사 속에 내 자식을 떠나보내고 눈물 속에 살아가게 하지 마십시오"

     16일 진도 맹골수도에서 바다를 향해 손을 뻗어 인사하는 유가족의 모습. 박인 기자16일 진도 맹골수도에서 바다를 향해 손을 뻗어 인사하는 유가족의 모습. 박인 기자
    유가족 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물을 보였던 배씨는 추도사가 끝날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동안 찾아오지 못해 더 한스러웠을까. 헌화가 시작되자 배씨는 가장 먼저 달려나가 국화를 바다에 던지며 울부짖었다.

    "공부도 잘하고 애교도 많은 딸" 앞에 아버지는 언제나 약자였다. "제일 사랑했던 우리 향매가 해달라는 건 안해줄 수가 없었다"는 배씨가 이제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남았을까. '보상 때문에 시체팔이한다'는 세상의 야유와 조롱 앞에 진상 규명을 목놓아 외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목이 메어 더는 내 앞에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는 배씨는 힘없이 가족휴게실로 들어갔다. 9년 만에 찾아온 딸과의 재회는 너무나 짧았다.

    유가족들의 헌화가 모두 끝난 후, 나는 짧은 기도와 함께 국화 한 송이를 바다에 흘려보냈다. 나에게도 노란 손수건이 필요했다.

    16일 목포신항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헌화를 하고 있는 유가족들의 모습. 왼쪽부터 고(故) 정다혜양 어머니 김인숙씨, 고(故) 배향매양 아버지 배희춘씨, 고(故) 김빛나라양 아버지 김병권씨. 박인 기자16일 목포신항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헌화를 하고 있는 유가족들의 모습. 왼쪽부터 고(故) 정다혜양 어머니 김인숙씨, 고(故) 배향매양 아버지 배희춘씨, 고(故) 김빛나라양 아버지 김병권씨. 박인 기자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미수습자 총 304명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고, 참사 해역을 돌아본 뒤 돌아온 목포신항에서는 오후 2시 30분부터 추모 문화제가 시작됐다.

    세월호 선체 앞에서 고(故) 정다혜양 어머니 김인숙씨가 어렵게 입을 뗐다.

    "제가 두려운 것은 희생자들이 세상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모두 그날의 봄을 기억해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다시 가족을 잃는 일이었다. 세상의 기억에서 내 가족이 잊혀질까 겁을 냈다. 바다에서 잃은 내 가족을 기억에서도 다시 잃고 말까. 그래서 다시 자신들처럼 참사로 가족을 잃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 아픔은 언제쯤 그칠 수 있을까.

    "또 봄이 찾아왔습니다. 딸을 혼자 남겨둘 수 없는 저는 늘 봄입니다. 앞으로 10년이 흘러도 저는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16일을 밀어내고 기어코 찾아온 4월 17일. 나는 새로운 취재를 준비하고, 우리는 일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누군가는 10년째 10년 전의 그날 그 바다에 아직 멈춰서 있다. 누군가는 10년이 지나서야 바다로 돌아왔고, 누군가는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어떤 세월이 흘러도 이 바다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나도 이제 이 바다를 남겨두고 돌아설 수 없을 것 같고, 노란 손수건을 놓을 수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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