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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말 없는 존속살해범…재판부 "선고 전까지 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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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말 없는 존속살해범…재판부 "선고 전까지 뭐라도"

    편집자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반성하고 있습니다. 선처해 주시길 바랍니다", "검사님 말씀 중에 억울한 부분이 있습니다"

    법정에서 많은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이처럼 자신과 의뢰인의 죄를 덜기 위해 노력합니다. 당시의 어쩔 수 없었던 처지를 강조하기도, 때론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피고인이 있습니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국선변호인의 조력도 거부한 채 말이죠.

    반삭 머리에 녹색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앉은 이 남성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11월부터 1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5일 그는 재판 내내 허공을 바라보거나 할 뿐 입은 굳게 닫았습니다.

    오늘 '법정 B컷'은 피고인이 체포되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난해 9월 25일 오후 1시 10분쯤 119로 한 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 옵니다. "어머니가 쓰러져 있습니다" 신고자는 피고인 A씨의 형이었습니다.

    범행 현장에 누워 있던 피고인 "아무 말 없었다"


    A씨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상가에 있는 주거지에서 70대 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피해자는 다발성 늑골골절에 의한 흉부손상 등으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사건 발생 후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피고인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숨져있음에도 A씨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어 의아했었다고 떠올렸습니다.
    2024.03.0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존속살해범 재판' 증인신문 中
    검사: 건물 3층에 있는 사건 현장에 들어갈 때부터 증인이 목격한 집안 모습이나 피고인, 피해자의 상태는 어땠는지 시간 순서대로 설명을 해주실 수 있나요.

    구급대원1: 계단을 올라갔을 때 피고인이 그냥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있었습니다. (중략) 어머님을 찾으려고 안에 문이 또 있어 열고 들어갔을 때 작은 공간 바닥에 엎드려 있는 상태로 발견됐었고, 확인했을 때는 이미 심정지 상태로 확인됐습니다. 얼굴 안면부 쪽에는 멍처럼 혈종같이 부어있는 모습이었고 주변에 혈흔이 발견됐습니다.

    검사: 누워서 자고 있었던 건가요? 누워만 있었던 건가요?

    구급대원1: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누워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대원이 피고인을 깨웠습니다.

    이날 법정에는 누워있던 A씨를 직접 깨웠다는 구급대원도 나와 비슷한 결의 증언을 했습니다.

    2024.03.0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존속살해범 재판' 증인신문 中
    검사: 증인께서 피고인을 깨웠나요?

    구급대원2: 119가 왔는데도 누워있는 게 통상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저는 처음에 머리가 기른 상태여서 딸이거나 한 줄로 알고, 가족이 쓰러져 있으니까 깨웠습니다.


    검사사: 깨웠다는 것은 말로만 깨웠나요, 어깨를 흔들거나 했나요.


    구급대원2: 그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금방 일어났던 걸로.

    검사: (피고인과) 대화를 나눈 사실이 있어요?


    구급대원2: 말한 사실은 없습니다.


    검찰은 피해자가 신고 나흘 전인 지난해 9월 21일에 이미 숨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급대원들의 증언을 따르면, A씨는 사건 당일에도 크게 놀라거나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2024.03.0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존속살해범 재판' 증인신문 中
    재판장: 구급대원이 있고 뭔가 소란스럽다고 하면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어머니가 사망했다고 하면 상태를 확인하러 당장 보고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런 행동을 했습니까?

    구급대원1: 현장에서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재판장: 이게 무슨 일이냐 물어보지도 않았습니까?

    구급대원1: 그것도 저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인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간 것까지 봤습니다.

    (중략)

    재판장: 증인이 사람이 사망했는데 가만히 누워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다고 했잖아요. 일어나라고 깨웠는데, 그리고 어딘가로 들어갔다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지금 무슨 일이냐", "어떻게 된 거냐" 전혀 안 물어봤습니까?

    구급대원2: 형이 계속 "네가 때렸니?" 물어봤는데 (피고인이)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재판장: 묵묵부답이었고, 구급대원에게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았고요?


    구급대원2: 피고인이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집을 찾았을 때도 A씨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기억했습니다. 다만 경찰이 A씨를 연행하는 장면은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수사 경찰은 A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수사 기관에 대한 불신을 보이며, 묵비권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2024.03.0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존속살해범 재판' 증인신문 中
    검사: 피고인이 '피해자가 싫다'고 대답하는 부분이 있어서 증인이 무엇이 싫은지 물어보니까 "평소 먹을 것도 안 주고 돈도 안 준다"는 취지로 답변한 사실이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물어봤나요?

    경찰: 자세한 부분을 물어보면 함구를 하니까요. 구체적으로 물어봐도 답변은 "몰라요"나 구체적인 상황까지는.

    검사: 증인이 피고인에게 "뭐로 (피해자를) 때렸나요"라고 질문하자 피고인이 "밀치고 발로 차고 그렇죠"라고 답한 사실이 있죠?


    경찰: 네

    검사: 핵심적인 답변인 것 같은데 피고인에게 집안 어디 쪽에서 때린 것인지도 물어봤나요? 어디서 때렸다고 했나요.


    경찰: 그런 부분은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검사: 피고인은 피의자 1회 조사에 따른 피의자 신문 조서 열람과 서명 날인을 거부했죠? 거부한 이유는 뭐라고 하던가요?


    경찰: 불신이죠. 경찰들 못 믿겠다, 약간 좀 귀찮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중략)

    재판장: 혐의를 부인하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모르겠다'라거나 '나는 안 했다' 나아가 '저 사람이 했다'는 경우가 있잖아요. 피고인을 조사할 때 "나는 안 했다. 형이 했다"든지 "나도 왔는데 죽어있었다" 그런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까?

    경찰: 전혀 없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의중'을 밝히지 않는 피고인을 대신해 증인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A씨의 긴급체포 당시 서류를 추가로 확인하기도 했죠. 긴급체포서에는 '경찰관이 체포하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A씨가 먼저 손을 내밀고 수갑을 채워달라 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사는 무기징역 구형…피고인은 최후진술도 "없습니다"


    수사기관과 법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듯한 A씨의 태도는 오래전부터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변호인의 조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다면,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고 규정합니다. A씨 옆에 국선 변호인이 앉아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날 최후변론에 나선 A씨의 국선 변호인 얼굴에는 복잡한 심경이 스쳤습니다. 
    2024.03.0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존속살해범 재판' 최후변론 中
    변호인: 이번이 마지막 공판기일이 될 것으로 예상해 지난 기일 이후로 두 차례 피고인과 접견을 했고 절차 진행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피고인이 변호인의 조력을 거부하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결국, 변호인은 피고인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적극적인 변론은 하는 것이 (피고인의) 의사에 반한다고 생각해 구체적인 의견서 제출이나 구두 진술을 하지 않겠습니다.


    재판부께서 피고인 주장과 제출된 증거를 통해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적극적인 변호가 오히려 A씨의 의사에 반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밝힌 변호인은 이날 증인에 대한 반대 신문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재판부의 고심도 깊어 보였습니다.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최후진술 기회도 부여했지만, 피고인은 짧게 답할 뿐이었죠. 

    2024.03.0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존속살해범 재판' 中
    재판부: 선고까지 시간이 있으니 그 사이라도 양형이라도 제출할 것이 있으면 제출하면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보겠습니다.

    피고인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면 해보세요.

    피고인: (피고인석에서 일어나서) 아…없습니다.

    재판부: 제가 지금 쭉 재판하는데 피고인은 일단 누군지 모른다. 돌아가신 분이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입장을 하시는데, 재판에서 본 걸로는 피고인이 충분히 의사소통도 가능하시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냥 모른다고 일관하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충분히 피고인의 입장이 있고 반론하실 게 있으면 기회를 충분히 드린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자신 스스로가 그런 입장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이제 선고기일을 지정하고 재판은 일단 마무리가 됐고요. 그 안에라도 제출하시거나 주장할 것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해도 되고 국선 변호인이 있으니 통해서라도 제출하시면 보겠습니다.

    선고 기일 지정합니다. 4월 5일 10시에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피고인은 출석하셔야 합니다.


    검찰은 A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구형했습니다. 부착 명령 20년, 보호관찰 명령 5년도 함께 요청했습니다.

    검찰은 "사안이 매우 중하고 그 범행 방법도 매우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수사 및 재판에 임하는 태도도 매우 불량해 개선의 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부장판사는 이처럼 피고인이 재판 내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일은 흔치 않다고 전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이 '말 없는 피고인'은 어떤 형을 선고받을까요.

    재판이 끝난 후 A씨의 국선 변호인은 선고일 전까지 계속해서 피고인 면담 신청을 하겠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선고는 닷새 뒤인 다음 달 5일에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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