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박수정 PD, 조석영 PD
◇ 채선아> 지금 이 순간 핫한 해외 뉴스, 중간 유통 과정 싹 빼고 산지 직송으로 전해드립니다. 여행은 걸어서, 외신은 앉아서. '앉아서 세계 속으로' 시간입니다. 박수정 PD, 조석영 PD, 나와 계세요.
◆ 박수정, 조석영> 안녕하세요.
◇ 채선아> 뉴욕타임스에서 가수 인순이 씨를 집중 조명했다고요?

◆ 박수정> 그렇습니다. 요즘 혼혈인 아이돌 그룹 멤버 정말 많죠. 그런데 40년 전부터 이미 한국 가요계에서 혼혈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가수 인순이 씨입니다. 뉴욕타임스에 토요일마다 하는 인터뷰 코너가 있어요.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혹은 주목할 만한 인물들을 심층 취재하는 코너인데요. 지난주 이 인터뷰의 주인공이 한국 가수 인순이였습니다.
헤드라인을 보시면 인순이 씨를 어떤 시선으로 분석을 했는지 보실 수 있어요. 혼혈아에 대한 오래된 차별 속에서 인기 대열에 오른 개척자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사랑받는 혼혈 가수로서 인순이의 삶을 깊게 다뤘어요. 그녀의 삶, 그리고 40년이 넘는 가수 생활, 연예계 생활을 통해서 그 사이에 한국 사회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특히 한국이 단일민족 국가에서 다문화 국가로 빠르게 변화 중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 조석영> 인순이 씨 하면 '거위의 꿈'이라거나 '밤이면 밤마다', '아버지' 이런 노래들이 굉장히 유명하죠.
◆ 박수정> 맞아요. 인순이 씨의 삶을 좀 들여다보면요. 본명 김인순, 1957년생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흑인 주한미군이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어요. 인순이 씨가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때는 대한민국 사회의 혼혈 그리고 특히나 이 아프리카계 흑인 미국인과 한국인 혼혈 아이에 대한 차별이 아주 극심한 시절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인순이 씨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대요. 인순이 씨를 낳기 전에 미국으로 아버지가 떠나버려서 미혼모의 딸이기까지 했던 거예요. 그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주변의 차별적인 시선이 어땠을지 짐작되는 부분인데 제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 입학하면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라는 걸 교과서로 배우거든요. 그때 대한민국은 단일민족 국가라고 배웠던 게 기억이 나요.

◇ 채선아> 그 점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도록 교육이 이뤄졌죠.
◆ 박수정> 뉴욕타임스 기사의 표현에 의하면 '한국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인종적인 순수성 그러니까 단일 민족이라는 동일성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교육하는 나라'였다고 하거든요. 그런 나라에서 인순이 씨가 혼혈 아이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외면당하고 소외당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본인은 혼혈 아인데 학교에 가면 우리는 단일민족 국가라고 자랑스러워야 한다고 교육을 받으니까요.
항상 아이들에게 받는 놀림과 더불어서 자신은 이 나라에 속하지 않는 것인가 생각했고 이 때문에 자신의 인종적인 정체성을 늘 감추려고 했대요. 누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그냥 한국인이라고 얘기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 채선아> 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아요.
◆ 박수정> 그렇죠. 그랬던 어린 인순이가 유일하게 좀 아이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던 때가 학교에서 장기 자랑을 할 때였다고 합니다. 춤과 노래를 보여줄 때는 숨지 않고 아이들 앞에 자랑스럽게 나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가수의 길을 가게 됐다고 해요.
근데 그녀가 극복해야 할 차별은 가수 데뷔 후 본격적으로 맞닥뜨리게 되거든요. 원래 인순이 씨가 걸그룹 출신입니다. 1979년도에 3인조 걸그룹 희자매로 데뷔했어요. 그런데 항상 모자를 활동할 때 썼다고 해요.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곱슬머리 있잖아요. 그 자연 곱슬머리가 당시에 지상파 방송에선 방송 불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방송사의 지침에 따라 음악 방송 PD가 두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나오라고 해서 모자를 쓰고 나왔다고 하거든요.

◆ 조석영> 얼마나 차별이 심했던 시기인가 싶네요.
◆ 박수정> 차별이 심했던 1978년부터 가수로 활동을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 46년 동안 가수 활동을 했는데요. 그 사이에 인순이 씨는 한국의 명실상부한 국민 가수가 됐잖아요. 그럼 이제 그런 혼혈아에 대한 차별이 다 없어졌을까요? 그 질문에 뉴욕 타임스의 대답은 'NO'인 것 같습니다. 기사에서는 '그녀가 활동하는 40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급격하게 다민족 사회로 다문화 사회로 변화를 했지만 혼혈아를 향한 차별적인 시선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합니다.
또 오늘날 한국에 다문화가정이 많다고 하거든요. 2022년 기준으로 결혼한 신혼부부 10쌍 중에 1쌍이 다문화 부부였다고 합니다. 한국의 남성들이 우리나라보다 가난한 아시아 나라의 여성들과 결혼하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그런 다문화 결혼뿐만 아니라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 작은 농장이나 공장들에는 해외 이주 노동자들 없이는 지금 운영될 수 없을 정도로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죠.
뉴욕타임스에선 '한국은 지금 인구 구조의 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기대야만 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만 그들을 보호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 조석영> 우리나라 농촌이나 건설현장은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돌아가질 않아요.
◆ 박수정>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필리핀, 방글라데시에서 오는 노동자들을 윤석열 정부에서 더 많이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죠. 이런 외국인 노동자 수가 최근에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대요. 실제로 비자를 받고 안에 들어와서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만 30만 명이고요. 그러니까 비자를 안 받고 있는 분들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숫자인 거죠. 근데 이분들이 극심한 차별을 아직도 겪고 있는 게 현실이고요.
그래서 인순이 씨가 혼혈아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고 하거든요. 기사에서는 인순이가 한 사람의 신화 같은 존재 그리고 한국 연예계의 혼혈 개척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혼혈아가 한국에는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차별에서 벗어나 사회에서나 연예계, 가요계 등 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건강한 다문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조석영> 이런 차별을 경험한 데서 비롯한 문화 콘텐츠도 많아요. 특히 미국 시장에서는 이민자 서사가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어요.
◆ 박수정> 요즘 미국 콘텐츠 계에서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주인공으로 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영화 '미나리', '패스트 라이브즈'도 동양계 이민 2세 3세들의 이야기들을 다룬 영화잖아요. 앞으로는 우리나라에도 한국에 정착한 이민자의 이야기, 그들의 2세 3세를 다룬 그런 이야기들이 콘텐츠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보게 됩니다.
◇ 채선아> 부디 그 콘텐츠에 등장하는 우리가 어떻게 그려질지…. 좋게 그려졌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되긴 하네요. 우선 주변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열린 마음이 정말 필요할 것 같네요. 여기까지, 박수정 PD, 조석영 PD와 함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박수정, 조석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