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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응급환자 불가" "내일부터 진료 안돼" 전국 의료현장 '멘붕'(종합)



사건/사고

    [르포]"응급환자 불가" "내일부터 진료 안돼" 전국 의료현장 '멘붕'(종합)

    "폐암 걸린 노모 입원 예정이었는데 오지말라고 전화가 왔다"
    만삭의 30대 임산부, 진료 어렵다는 얘기에 부랴부랴 대체 병원 알아봐
    퇴원 서류도 못 떼…"진료 날짜 물어보니 '알아서 생각하라'고 얘기"
    의료 열악한 지방은 더욱 고통…응급센터 지키는 의사는 단 1명

    20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 모습. 연합뉴스20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 모습. 연합뉴스
    이른바 서울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를 비롯해 전국 곳곳의 전공의들이 일제 사직을 시작한 20일 오전. 일선 의료 현장은 의사 없이 북적대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안과 초조, 걱정으로 달아올랐다.

    의사들의 빈자리가 곧 환자의 생사에 직결되는 응급의학과의 대기실은 걱정을 넘어 '공포감'으로 휩싸였다. 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는 '현재 응급실 병상이 포화 상태로 진료 불가합니다. 신속한 진료를 위해 인근 병원 응급실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안내 팻말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심지어 신속한 진료를 받으라고 안내해놓은 '인근 병원' 중에 마찬가지로 전공의 사직행렬에 동참한 삼성서울병원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인천에서 온 50대 임모씨는 "원래 어제(19일) 폐암에 걸린 70대 노모가 입원 예정이었는데, 아침에 오지 말라고 (아산병원에서) 전화가 왔었다"며 "(전공의 사직 여파로) '상황을 좀 정리해보고 다시 연락 준다'더니 1~2시간 후 다행히 다시 오라고 하더라. 지금은 수술실에 들어간 상태"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뉴스를 보시면서 어머니께서 말씀은 안 하셨지만, 저희도 눈치도 보고 가슴을 많이 졸였다"면서도 "'청천벽력'이었다가 '운이 좋은(lucky)' 상황이 된 건데, 일정이 연기·취소된 다른 분들도 있을 테니 기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착잡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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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품은 채 출산할 날만 기다리던 산모들 역시 기약없이 병원을 돌고 도는 실정이다.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임산부 이미연(33)씨는 4월 초가 출산 예정일이다. 당초 오는 21일 아산병원 산부인과 진료를 예약했다가 '의사 파업으로 진료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다른 병원을 알아보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씨는 "원래 (살고 있는) 경기도에서 산부인과를 다니다가 (의료진이) 대학병원 진료를 보면 좋겠다고 해서 왔다. 출산할 때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되는데, 다른 환자들은 저보다 더 급한 분들도 많지 않겠나"라며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주변 환자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을 더 불안하게 하는 문제는 이번 의료 공백 사태가 대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경남 창원에서 상경해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송모씨는 퇴원을 위해 짐을 싸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의료진들이 없어 퇴원 관련 증빙 서류조차 떼지 못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어서다.

    송씨는 "(병원 측에서) 방송을 보고 진료 날짜를 '알아서' 생각하라는 식으로 얘기하니… 좀 그렇다"며 "지방에 살다 보니 KTX 등도 예약해야 되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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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마티스내과 진료를 위해 내원한 안성덕(30)씨도 "여기 다니는 사람들은 일반 약국에 없는 (처방)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병원과 처방전을 어떻게 받을지 등을 조율해야 하는데, 일정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일단 불안하다"고 염려했다.

    현재 빅5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총 2700여 명으로 전임의(펠로)와 교수 등을 합친 전체 의사인력(7042명)의 39%에 달한다. 전날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의 '블랙아웃'을 시작으로 전공의들이 현장을 빠져나간 5대 병원은 환자의 중증·응급도를 기준으로 수술 연기 및 진료일정 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무색한 'Respect for Life'…열악한 지방의료는 '멘붕'

    전북대병원 본관. 김대한 기자전북대병원 본관. 김대한 기자
    전북대학교병원 본관에는 파란 글씨로 'Respect for Life'란 간판이 달려 있다. '생명존중'의 영어 표현이다.

    "의사 선생님 한 분…시간 오래 걸려요."

    전북대병원 관계자의 안내다. 환자를 돌볼 의사가 없다는 얘기다.

    전북대병원 앞에 전공의 사직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전북대병원 앞에 전공의 사직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이날 오전 찾은 전북대병원 응급센터에서는 단 한 명의 의사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번호표에는 대기 인원 15명이 적시됐다. 진료를 기다리던 B씨는 "호흡기 문제로 이곳에 왔고, 그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며 "뉴스처럼 진료가 늦어질지 걱정된다"고 마스크를 고쳐 맸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 아침 정형외과 선생님이 파업하셨어요. 다른 병원 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제주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안내문구. 고상현 기자제주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안내문구. 고상현 기자
    이날 제주 유일의 국립대학병원인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간호사가 휠체어를 타고 기다리던 장덕보(85) 할아버지와 보호자들 한 안내의 말이다. 29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장 할아버지는 요양원에서 낙상으로 크게 다쳐 수술을 받기 위해 내원한 참이었다.

    부모를 모시고 온 아들 장태훈(52)씨는 "의료 파업으로 오늘 아버지께서 진료 받으실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병원에 왔다. 수술이 안 된다고 해서 당황스럽다. 아버지께서 이 병원에서 30년간 치료받으셔서 진료 기록이 다 있다. 다른 병원 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CBS노컷뉴스 기자들은 대전에서도, 경남에서도 수술 연기를 통보 받거나 의료 공백 사태를 걱정하는 환자·보호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박모(48)씨는 피부암으로 번질 우려가 있는 이형성 모반을 제거하기 위해 다음 달 7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수술 날짜를 6주 뒤로 미뤄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낙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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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양산부산대병원 산부인과를 찾은 임신 5개월차 30대 여성은 "출산을 앞둔 분들은 걱정도 클 듯하다. 소중한 생명이 건강하게 세상에 나올 수 있게 의료진 배려와 책임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19일 오후 11시 기준 주요 수련병원 100곳을 점검한 결과, 전체 전공의의 55% 가량인 6415명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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