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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가습기 살균제' 유죄…'1심 무죄'는 왜 뒤집혔나



사건/사고

    서울고법, '가습기 살균제' 유죄…'1심 무죄'는 왜 뒤집혔나

    가습기살균제 판매 SK케미칼·애경 전 대표 '유죄'
    재판부 "주의의무 위반한 업무상과실 혐의 인정 돼"
    유공연구소 출시 전 "독성시험 해야한다" 경고
    서울대 독성시험보고서 받고도 판매중지 안해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과학적 의미 간과" 파기
    옥시와의 공동정범도 맞다고 판단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인근에서 열린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의 2심 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 유죄 선고를 호소하는 피해자·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인근에서 열린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의 2심 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해 사망자 등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에 대한 판결이 항소심 법원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두고 국민을 상대로 장기간 진행된 '흡입 독성시험'이라고 질타하며, 1심 무죄 판결을 파기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서승렬 부장판사)는 전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된 SK케미칼 홍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 전 대표에 대해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 SK케미칼 사업본부장을 지낸 한모씨와 전직 이마트 사업본부장 홍모씨는 각각 금고 4년형과 금고 3년형이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피고인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그 어떤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상품화 결정을 내려 대규모 인명 피해가 일어났다며, 이들의 업무상 과실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특히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생물공학 연구실을 통해 위험성을 파악하고 서울대 수의과대학에 실험을 의뢰했음에도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CMIT(메틸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 MIT(메틸이소치아졸리논)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가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된 것은 1994년 '유공 가습기메이트'가 그 시초이고 이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의 전신"이라며 "당시 유공은 그 안전성에 관해 고민했고, 유공 생물공학연구실에 살균력과 안전성을 충족시키는 적정 농도 등의  실험을 의뢰했다"라고 설명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당시 연구실은 '독성 시험을 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위험부담을 안고서도 반드시 상품화해야 할 정도로 시장성이 큰 품목인지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의견에 당시 유공은 출시 한 달 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 '마우스(쥐)를 이용한 가습기메이트 간이 흡입노출시험'을 의뢰하고서도 결과를 받기도 전에 유공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했다"라고 질타했다.

    심지어 유공이 제품을 출시한 후 1995년 7월경 서울대의 실험 결과 '백혈구 수치 감소 등의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 더 실험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음에도 유공이 가습기 살균제의 판매중지나 회수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재판부는 봤다.

    이후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등에서도 가습기살균제 판매가 이뤄졌고, 대규모 인명피해가 일어났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공 생물공학연구실에서 1994년에 제기한 의문은 2002년 10월 출시된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2006년 10월 출시된 '이마트 가습기살균제'의 판매에 관한 의사결정과정에서도 당연히 제기될 수 있었고, 제기되었어야 하는 질문이었다"라고 했다.

    특히 재판부는 서울대 실험보고서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간에 건네졌는데도 이를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서울대 실험보고서의 내용을 알았다면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했을까?'라는 질문에 '당연히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재판부 "살균제와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 신빙성 인정…공동정범 성립"


    앞서 1심은 "CMIT·MIT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생 혹은 악화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라는 이유로 SK케미칼 홍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 전 대표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 아래 피고인들이 주의의무를 위반했는지 등은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은 "전문가들의 연구를 고려하면 CMIT·MIT가 이 사건 폐질환 또는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은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며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등의 구체적 인과관계의 신빙성도 인정된다"라고 판단을 뒤집었다.

    이어 "원심의 판단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인 동물실험결과의 간접적·보충적 성격을 오해해 해당 실험을 수행하거나 검토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과학적 의미를 간과했다"라며 "실험실 환경과 실제 사용환경 간의 차이,실험대상이었던 쥐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종간 차이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위 각 실험의 계량적 평가수치에만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부는 2018년 1월 징역 6년이 확정된 옥시와 이들이 '공동정범'이라고도 판단했다. 피고 측 변호인은 옥시 사건과 이 사건의 가습기 살균제의 주원료는 물리화학적 특성이 서로 달라 공동정범을 확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량 생산·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는 복수의 제조업자가 동일한 유형의 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소비자가 시중에 유통되는 여러 종류의 제품들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히 예정돼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위 각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개발·제조·판매에 관여한 사람들 모두가 공동의 주의 의무와 인식 아래 업무상 과실로 결함이 있는 가습기 살균제를 각각 제조·판매한 것"이라며 "그 결함으로 그 중 두 종류 이상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에게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다면, 이들 중 특정 피해자가 중복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들의 제조·판매에 관해 업무상 과실이 있는 사람들 간에는 해당 피해자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한다"라고 설명했다.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내리긴 전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가습기 제품을 제조·판매할 당시에는 대규모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까지 예상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고, 긴 시간 동안 수사와 형사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많은 정신적 고통을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면서도 "이 사건으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지원 대상 피해자는 5691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126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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