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룡 인천시 대변인. 연합뉴스"항해와 비슷했다. 어떤 선장은 폭풍우를 뚫고 목적지를 향해 나가지만 미리 기상상황을 확인해 폭풍우가 내리지 않는 날 출항하는 선장도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인천시의 입' 역할을 맡았던 고주룡(61) 인천시 대변인이 지난 30일 사임하면서 내놓은 소회(所懷)다.
앞서 그는 지난달 13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내년 4월 예정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천 남동을 선거구 출마하기 위해서다. 30년 가까이 'MBC맨'으로 살던 그가 행정가(대변인)로 변신한 지 1년 5개월 만에 새출발을 결심한 것.
고 대변인은 인하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경인일보, MBC 경제부장·베이징특파원·논설위원 등을 거쳤다. 또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 언론 특보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이후 유정복 인천시장이 지난해 7월 민선8기 인천시장으로 취임하자 4급 인천시 언론비서관으로 임용됐고, 올해 3월에는 3급 대변인으로 임용됐다.
고 대변인이 출마를 선언한 인천 남동을 선거구 현역 국회의원은 '돈봉투 사건'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윤관석(63·구속) 의원이다.
그는 지금 정치권이 과거와 분열이 가득하다고 진단하면서 "미래를 위한 화합, 오늘보다 나은 내일, 당대보다 자식들이 더 잘 사는 세상을 정치권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고 대변인과의 일문일답.
고주룡 인천시 대변인 제공인천시 대변인으로 지낸 1년 5개월간의 소회를 정리해달라
=. 평생 기자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대변인실이나 홍보실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다. 막상 와서 일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다른 부분이 많았다. 대변인으로 지내면서 두 가지를 중점에 두고 일했다. 첫째는 시민들에게 인천시의 정책을 많이 알리는 것이었고, 둘째는 인천시의 취재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민들이 알지 못하면 없는 정책과 같다. 좋은 정책들을 시민에게 알리고 지지를 받는 건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동력이 된다. 정책을 알리는 과정 안에 있는 언론의 취재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결국 시민들에게 인천시의 좋은 정책을 알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해당 언론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사실 기자들이 제기한 인천시의 문제들을 실무부서에 전달해 개선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대변인으로 지낸 시간을 되돌아 보면 마치 '항해'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항해하는 데 있어서 선장의 성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A지점에서 B지점으로 배를 몰고 가면서 비바람이나 큰 파도가 와도 그걸 뚫고 안전하게 항해하는 성향이 있고, 다른 하나는 기상 상황을 미리 확인해 태풍이나 큰 파도가 오지 않는 날에 출항해 목적지로 가는 성향이 있다. 어떤 선장이 더 뛰어난 선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건데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
중대 현안이 발생했을 때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고 인천시의 입장을 관철하기보다는 비판에 대한 속사정을 설명해 이해를 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일이 많았던 것도 그런 성향의 영향인 것 같다.
마침 유정복 인천시장도 언론의 비판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어떤 사안의 흐름이나 방향에 더 비중을 두고 움직이려 했던 것 같다. 대변인실의 역할에 신뢰를 보내줬다는 점에서 일하기 수월했다.
고주룡 인천시 대변인이 지난 30일 사임 전 동료들과 환송회를 하는 모습. 고주룡 인천시 대변인 제공민선8기 인천시의 남은 과제는 뭐라고 평가하나
=. 공감대 형성과 시의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치단체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항상 고민해야 한다. 임기 4년인 상황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건 선출직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차기 시장들이 정당을 뛰어넘어 큰 틀에서 인천의 미래상을 정하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인천 시민들이 공감대를 가질 수 있도록 충분히 알리고 각계각층에서도 동의해야 시장이 바뀌어도 꾸준히 추진될 수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가 미래만 보고 갈 수는 없다. 당장 인천시민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 해결하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시민들의 생각을 읽고 결핍을 잘 찾아 정책으로 화답하는 일도 놓쳐서는 안된다. 공직자는 시민이 있기에 존재하는 만큼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평소 존경하는 인물이 있는가
=. 존경하는 인물을 따로 정하지 않는다. 우상화를 경계하는 편이다. 닮고 싶은 사람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개인만 보기보단 사회나 국가를 생각하고, 약자를 보듬고,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삶을 충실히 살면서 주변을 위해 작은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기자 시절 기억을 더듬어보면 관료나 대기업의 임원, 다선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 사실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동료들과 역경을 헤치고 중견기업을 성장한 기업가나 직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줄 때 공감과 감동이 밀려올 때가 많았다.
언론인으로 30년 넘게 살았다. 기자 고주룡은 어떤 사람이었나
=. 굉장히 꼼꼼했던 기자였다. 사실을 확인하는 일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기사를 내보낸 뒤 내용을 수정하거나 내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1990년대 중반 MBC 뉴스데스크에 '카메라 출동'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이 코너에서 많은 리포트를 만들었다. 리포트가 나갈 때보다 리포트 여파로 정책이 바뀌었다는 단신 보도가 나올 때 보람이 더 컸다.
기사 여파로 애꿎은 사람들까지 경찰 수사를 받는 다거나 하는 상황을 보면서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시사프로그램 카피 문구 가운데 '사실 너머에 있는 진실'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기자는 운명적으로 그런 부분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자 생활을 돌아보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믿는 신념에 대해 타협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신념이라는 표현이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옳은 일'이 아닌 것에 타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기사에 개인감정을 담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주장이 맞다면 충실히 담았고, 평소 좋아했던 사람이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는 가감없이 지적했다.
고주룡 인천시 대변인 제공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계기가 있었나
=. 예전에는 정치보다 경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정치가 뭐가 중요하냐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를 흔드는 그 뿌리가 정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게 정치였다.
들여다보니 우리가 정치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시절은 정치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늘었다면 그건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반증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정치세력간 다툼의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여야 대치가 '그들 간의 패권 경쟁'에 그쳤다. 그들의 다툼이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정치세력간 다툼과 그 부담이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이런 정치는 옳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가 올바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옳은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생각과 모습에 국민들이 동의한다면 지지를 보내준다.
내가 믿고, 가야한다고 여기는 인천의 미래가 있다. 이 모습이 정치인으로서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면 그걸 한 번 펼쳐보이고 싶다. 그런 생각에서 출마를 결심했다. 사실 굉장이 어려운 결정이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라고 하지 않나.
왜 인천에서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건 일종의 운명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천에서 대학을 나왔고 3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하다가 인천시의 대변인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계획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고향이 인천은 아니었지만 인천과 인연을 맺고 인천에서 쌓은 신뢰와 자산들을 펼칠 기회를 얻고 싶다.
좋은 정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정치는 큰 틀에서 언제나 통합을 얘기한다. 과거의 정치에는 찬성과 반대를 아우르는 합(合)의 개념들이 존재했다. 여야가 충돌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합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여야대결이 배제와 분열로 이어진다. 마이너스 정치다. 과거에는 동업자 혹은 경쟁자였는데 지금은 아군과 적군의 개념이 강하다.
또 과거가 쌓여 현재를 만든다. 현재의 선택은 미래를 결정한다. 그래서 과거를 얘기하는 건 좋은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서 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과거를 들춰내는 모습이다. 미래를 향한 이정표와 방향성을 잃었다. 정치는 통합과 미래를 얘기해야 한다.
국민들은 집권세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어느 정당이냐를 먼저 보기보다 누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정책과 미래를 제시하느냐를 본다. 과거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데 집중하기 보다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정치와 사회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정치를 잘하고 싶다.
내가 만난 세상보다 내 자녀들은 더 행복한 세상을 살길 바라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정치는 그런 자세로 해야 한다. 예전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1순위였지만 절대적 빈곤 문제가 해결된 지금은 행복을 이야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