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 ''훼스탈''로 잘 알려진 한독약품은 지난해 창사 50돌을 맞은 국내 몇 안되는 장수기업이다.
47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흑자를 달성해 주주들에게 배당해온 ''알토란 기업''이다.
서울 역삼동에 자리잡은 한독약품 본사와 충북 음성의 생산공장.
이 두 곳의 입구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맨 처음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다. 1층 현광 벽면에 걸린 570명 전사원의 얼굴이 빼곡히 들어간 사진이다. 그만큼 노사화합을 강조한다는 뜻이다.
한독약품이 자랑하는 노사간 신뢰는 가족적인 기업문화에서 싹튼 것이다. 1975년 당시 외국 선진기업과의 합작으로 기업경영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던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먼저 노조설립을 권유했다.
사용자 측에서 권유해 만든 노동조합이니만큼 운영 역시 다른 회사와는 달랐다. 주5일근무제, 퇴직금누진제, 생리휴가, 연월차 수당지급 등 큰 회사에서나 시행될 수 있는 복지정책을 받아들였다. 특히 얼마 전부터 다른 회사에서 도입한 주5일근무제를 한독약품은 무려 20년 전부터 앞서 시행했다.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낸 문영일(현 제일약품 공장장)씨는 ''''한독약품에서 ''''컴퍼니 커플(CC)''''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대학가 캠퍼스 커플처럼 사내 결혼이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결혼을 하면 여직원들이 으레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였지만, 한독약품은 달랐다. 출산휴가가 엄격히 지켜지는 것은 물론 퇴사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일체 없었기 때문이다.
노조 역시 회사의 배려에 화답했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2003년 말 상여금 및 임금, 복리후생 일체를 회사에 일임한 것이다. 현태영 노조위원장은 ''''생산적인 노사 관계는 서로 주고 받는 것에서 싹 튼다''''며 ''''지난 50년간 서로 존중하고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이를 ''''투명경영''''과 ''''현장경영''''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다. 한독약품 김영진 부회장은 매주 음성공장을 찾는다. 현장 직원들의 애로사항과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10여년 전부터 분기별로 노조를 상대로 경영설명회를 개최하고, 부서별 CEO 간담회와 호프데이, 노사 워크숍, 사내 인트라넷 등을 통해 갈등의 불씨가 될 요소들을 미리 해소한다.
또, 제약업계에서는 최초로 ERP 시스템을 도입해 1998년 물류, 회계, 영업, 생산, 품질보증, 관리 부문에 SAP의 R/3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이를 통해 단일 환경기반에서 회사의 모든 정보가 전 직원에게 오픈된다.
침체기, 제품 절반으로 줄이며 돌파한독약품은 1980년대의 침체기도 혁신경영으로 돌파했다.
당시 제약사들은 제약사 간의 과다한 가격경쟁과 금융비용의 중가, 우수한 인재의 고갈로 불황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한독약품 역시 위기를 맞았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6년 동안 매출액은 고작 100억원밖에 늘지 않았지만, 부채는 200억원으로 급증했다. 기업 위상도 제약업계 랭킹 6위(1980년)에서 12위(1985년), 14위(1990년)로 하락을 거듭했다.
이때 한독약품은 지금의 김영진 부회장을 중심으로 구조개혁에 나섰다.
김 부회장은 ''''우선 100여개의 제품 수를 절반 수준인 50여개로 줄여 회사 역량을 핵심 제품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고 말했다. 매출 감소를 각오한 결정이었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간관리자인 과장급에게까지 일부 전결권을 넘기는 등 경영시스템도 대폭 손질했다. 이 같은 경영혁신은 1990년대 재성장의 발판이 됐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때 찾아온 어려움은 더 혹독했다.
본사 사옥 이전과 공장 신축, 최첨단 생산시설을 구축하는데 많은 자금을 쏟아부은 탓이다. 위기 때마다 회사 살리기에 앞장 선 노조는 이 때 더 큰 빛을 냈다. 생산직과 관리, 영업 부문 할 것 없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그해 연말 상여금과 이듬해 급여를 회사에 맡기로 경비절감에 나섰다. 정리해고를 막는 대신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다. 사원들의 희생에 회사는 ''''인위적인 인력감축 없는 위기 극복''''을 다짐하는 편지를 직원들 집집마다 보내 가족들을 다독인 일화는 두고두고 나오는 이야기 거리다.
이런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한독약품은 ''''인간존중''''의 가치를 실천해내고 있다. 북한 용천 참사 때는 약품보내기 운동에 앞장서고, 훼스탈 판매금액 중 일부는 해마다 소외 이웃에게 전달하는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도 앞장선다.
공장 역시 일반인들에게 활짝 열려있다. 공원처럼 꾸며진 공장 한 가운데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박물관실인 ''''의약사료실''''이 자리잡고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 초간본 등 보물 6점을 비롯해 희귀한 의약자료가 7천점이 넘는다. 지난해 1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공장은 관광 명소가 됐다.
해외 우수기술·자본력 도입...''1백년 기업''을 꿈 꾼다
1954년 설립된 한독약품은 한국과 독일 기업간의 첫 합작 회사다. 1957년 독일 훽스트(현 사노피-아벤티스)와 기술제휴로 협력관계를 맺은 뒤 64년 합작 회사로 전환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이합집산으로 경영 주체가 여러 차례 바뀐 것과 달리 이 회사는 지금까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독약품은 일찍부터 선진 제약기업의 기술가 자본을 받아들여 국내 기술로 자본으로 환원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김 부회장은 ''''그 동안 선진 경영기법과 마케팅전략을 도입해 다른 회사의 모범이 됐다''''며 ''''앞으로도 앞선 기술을 적극 도입해 국내 제약업계의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덕넷 문정선 기자 jsmoon@hellodd.com/노컷뉴스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