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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방송 공정성은 경영진의 독점권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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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방송 공정성은 경영진의 독점권한이 아니다

    • 2023-11-19 06:55
    핵심요약

    반대파 전임 집행부의 일 사과한 신임 사장 올바르지 않아
    석연찮은 선임과정 거친 사장의 평가, 공감받기 어려워
    법원 판결상 방송 자유와 공정성 의무는 노사 모두 공유
    공영방송사 일반기업과 다르다는 사실, 잊혀지면 사회적 불행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박민 사장 등 KBS 새 임원들이 지난 14일 그간의 불공정 방송에 대해 사과한다며 단상에 올라가 머리를 조아렸다. 박 사장은 이 자리에서 검언유착 사건 오보 등을 불공정 사례로 언급했다. 일부 진행자의 한쪽 진영 편들기와 편향된 패널 선정도 거론했다.

    자신들이 재임하는 동안의 공정 보도만 약속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정기적으로 그 약속 실행을 점검하고 책임지겠다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반대했던 전임 집행부 기간에 있던 일을 취임과 함께 불쑥 사과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주요 불공정 방송의 경위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 백서를 발간하겠다"라고도 밝혔는데 거꾸로 된 순서다. 과거의 잘못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좋지만 불공정을 먼저 선언한 뒤 그 판단에 맞춰 나중에 나온 백서는 공평하기 어렵다.

    공정은 사전적으로 올바르고 공평하다는 뜻이라는 점에서 이 사과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

    불공정 사례로 언급한 것들 모두가 현 정부여당에게 불리한 보도였다. 박 사장은 여권 성향 다수 이사만의 결의로, 그리고 석연치 않은 과정을 통해 선임됐다. 이들이 KBS 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도 석연치 않은 방법으로 다수를 차지한 여권 성향 방송통신위원들이 역시 석연치 않은 방법으로 전 이사들을 해임하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선임된 사장이 여권 관련 보도를 불공정하다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공정성을 공감받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취약한 정당성 탓에 한국 공영방송 사장은 보도 내용에 관해서는 함구하는 게 관례다.
    박민 KBS 사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박민 KBS 사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KBS 새 경영진의 이번 사과를 기화로 공정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펼쳐진다면 불행 중 다행이겠다. 이를 위해 KBS 제작 종사자와 시청자의 의견을 폭넓게 모으고, 이 시대의 공정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합의해 실제 제작 현장에서 내재화하는 게 중요하다.

    방송 공정성이란 매우 추상적이어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도 강조할 부분이 다를 수 있다. 지난 2015년에 만든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은 영국 BBC의 '적절한 불편부당성'(due impartiality) 개념을 원용해,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공정성을 정의하고 분야별로 구체적 실천 방안까지 제시한 바 있다.

    특히, "만약 한편을 조금이라도 더욱 배려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구절은 존 롤스의 정의론에 입각한 공영방송론으로 해석되는 품격있는 지침이다. 그러나 이 책자는 제작 현장에서 관행에 밀려 종사자들의 책상 서랍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확률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번처럼 경영진이 공정성의 개념과 실천을 독점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2012년 공정성 훼손에 저항한 언론노조 MBC 본부의 파업을 두고 소송 3건이 이뤄진 바 있다. 업무방해와 해고무효 등 모든 소송에서 노조가 이겼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노사 양측은 방송 자유와 공정성 의무를 공유한다. 즉, 방송편성의 자유는 경영자 측에만 있지 않고 제작 종사자(노동자)들에게도 있다.

    공정성 실천의 의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법원은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관점에 따라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참여하에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그 준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노사가 합의한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또는 방송법이 요구하고 있는 편성규약 등이다. 법원은 이런 논리로 당시 파업은 공정성이란 의무 실천의 근로조건인 단체협약 등을 사측이 준수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였으므로 정당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이번에 KBS 새 경영진들은 공정성의 정의를 독점하여 제작 종사자들과 상의도 없이, 그리고 당시 보도 주체들의 반론조차 들어보지도 않고 과거의 보도를 사과한 것이다. 당연히 크고 작은 잘못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 판결문대로, 관점에 따라 판단은 다를 수 있다. 제작 실무자들과 협의 없이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을 교체하고 특정 시사 프로그램도 폐지했다. 방송법에 따라 경영진과 제작 종사자들과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는 'KBS 편성규약'에 배치된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KBS 새 경영진은 과거보다 더 나은 공정성 개념을 도출하고 그것을 더 잘 실천하기를 바란다. 불공정성에는 오랜 과거부터 내려오는, 고쳐야 할 관행이 섞여 있다. 객관을 가장하여 자신의 주관을 설파하는 것, 근거 없는 추론을 사실인 양 보도하는 것, 미리 정한 논지에 맞춰 불충분한 사실과 얄팍한 논리를 교묘히 섞는 것 등 정파성과 무관한, 아니 정파성과 결합하면 더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고질병들이다.

    이것들을 고치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 경영진의 독단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공영방송사는 일반기업과 다르다는 사실, 민주적 기본 질서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인 올바른 여론형성을 위해 경영진과 제작 종사자가 자유와 의무를 분점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개인은 물론 공영방송 조직과 나아가 이 사회의 불행이 기다릴 뿐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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