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 채선아>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문화평론가와 정치철학자의 시각으로 풀어보는 시간입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두 분 나오셨어요. 안녕하세요.
◆ 손희정, 김만권> 안녕하세요.
◇ 채선아> 최근 극장가에서 가장 주목받은 해외 영화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로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줄거리와 주요 인물 소개를 해주실까요?
◆ 손희정> 영화는 2개의 청문회를 교차 편집하면서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과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미국 정치 상황을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컬러와 흑백이 섞여 있는데요. 컬러로는 오펜하이머의 보안인가 청문회를 다룹니다. '니가 빨갱이냐 아니냐' 이걸 알아보려는 청문회인 거고요. 뛰어난 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가 미국의 핵폭탄 개발 사업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난 이후에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다가 '빨갱이'로 지목당하면서 그 영향력을 박탈당하는 과정이 한쪽에서 흘러가고요. 흑백 화면으로는 오펜하이머의 '빨갱이 사냥'을 주도했던 정치인인 루이스 스트로스의 상무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펼쳐지는데요. 매카시 광풍에 올라탔던 미국 정치의 저열함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 김만권> 손희정 선생님이 챗GPT보다 영화를 잘 요약해주셨네요 (웃음)
◆ 손희정> (웃음) 최고의 칭찬 아닌가요?

◇ 채선아> 주인공 오펜하이머가 물리학자다 보니까 좀 어려운 용어들도 나오긴 하거든요. 그래서 문과생들은 공부하고 가야 된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 손희정> 저 같은 경우는 영화 보기 전에 아무 정보를 안 보고 가는 편이라 일단 가서 한번 봤고요. 보고 와서 너무 충격에 빠져서 양자 역학에 관련된 유튜브를 막 수십 개를 찾아보고 (웃음) 그리고 다시 보러 가서 놀란 감독이 본인이 양자 역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철학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풀어냈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기보다는 영화학자로서 영화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양자 역학을 이해하는 건 아니고요. (웃음)
◆ 김만권> 사실 정치학에 이미 양자 역학이 들어와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요. 정치학에 시간 개념이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의 합법과 불법의 경계 같은 것들이 다 변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는 혁명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하거든요. 이걸 약간 양자역학 이론을 활용해서 설명하는 것들이 있어요. 또 법학 쪽에 들어가면 우리가 합법/불법 개념만 쓰잖아요. 그런데 혁명의 시간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초법적인 시간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 개념들 자체가 사실은 양자 역학을 활용한 거예요. 혁명의 순간은 혁명을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상사태이고, 새롭게 뭔가 갈아 엎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겐 혁명의 시간이거든요. 두 개의 다른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거죠. 같은 세계 속에 다른 시간과 공간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양자 역학을 활용하면 정치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게 되게 많아집니다.
◆ 손희정> 이 영화의 시간 자체가 지금 말씀하신 두 개의 시간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 채선아> 두 개의 청문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런 게 잘 보이죠. 또 이 작품에서 과학자들이 계속 고민하는 지점을 짚어보면, '과학으로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어도 되는가' 이 부분이거든요. 과학자가 그걸 왜 고민하냐, 그냥 만들고 무기를 쓰는 건 정치의 몫이라는 주장도 있고. 애초에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도 있거든요. 이 고민은 어떻게 보셨어요?
◆ 김만권> 우리가 그 당시에 핵무기 개발이 되는 맥락을 봐야 되잖아요. 2차 대전 중이었고, 나치라고 하는, 20세기에 소위 '절대악'이라는 개념이 다시 살아나는 일들이 벌어지던 시기였죠. 이 절대악을 어떻게 무너뜨릴까에 대한 요구가 있고, 거기서 과학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그런데 원자를 쪼개면 엄청난 폭발력이 생겨난다는 걸 모든 물리학자들이 다 알게 됐고, 그걸 또 제일 먼저 알아낸 사람들이 독일에 있는 사람들이고, 독일에서 핵무기를 먼저 개발하면 어떡하느냐, 라는 공포감이 있었고, (미국에선) 우리가 먼저 해야 된다는 주장이 나오죠.
이런 맥락으로 보면, 당시에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 자체를 막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세계가 적대적으로 나눠져 있었기 때문에 그 적대의 세계의 핵심은 서로를 제거하기 위해서 싸우는 거잖아요. 나도 만들 수 있는 무기를 상대방이 먼저 갖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생기면 이 경쟁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기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뭐라고 한다기보다는 그 무기를 사용한 방법과 시점이 문제였다는 생각은 들어요. 나치를 무찌르기 위해서 핵무기를 만들었는데 독일은 이미 패망했기 때문에 나치를 무찌르기 위해서 쓸 필요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걸 일본에 써야 되는데, 사실 일본도 결과적으로는 거의 패망의 끝에 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 손희정> 당시에 전 세계적으로 외교 정치적인 판단 안에서는 일본은 그냥 둬도 자체적으로 무너질 거라고 판단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펼쳐질 소련과의 경쟁 안에서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본에 2개의 핵폭탄을 떨어뜨림으로써 기선을 제압하려고 했었던 부분이 있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희생양으로서 일본이 걸려들었다고도 볼 수 있겠고요.
저는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면서는 그 인간적인 고뇌를 좀 봤었던 것 같아요. 과학자로서 내가 어떤 도구를 가지고 있을 때 그걸 어떻게 사용하도록 펼칠 수 있을까. 오펜하이머는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그래서 자신의 동족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됐다라고 하는 절체절명의 긴급함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이고, 킬리언 머피가 기가 막히게 연기를 해냈는데 오펜하이머는 여러 개의 이름이 있는 사람이었대요. 호사가, 바람둥이, 오만한 인간, 근데 동시에 학생들을 너무 잘 통솔하는 좋은 교수이면서 누구든지 설득 가능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정치력 때문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괄로 가게 되는 건데요.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증명하고 싶었을 때 굴러가는 욕망이 있는 거죠.
◇ 채선아> 저는 아직도 기억에 나는 장면이,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지고 나서 트루먼 대통령과 오펜하이머가 만나는 장면이잖아요. 오펜하이머가 이런 대사를 해요. "각하, 제 손에 피가 묻은 것 같습니다" 이 원자폭탄을 개발함으로써 자기가 원폭 희생자들을 죽인 것 같다는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두 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 김만권> 저는 거기서 트루먼이 받아친 대사가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누가 그거 만들었는지 아무도 상관 안 해. 그거 누가 떨어뜨리라고 지시했는지를 보지. 그리고 그거 내가 떨어뜨리라고 했거든. 피가 묻었으면 내 손에 묻었지, 네 손에 묻은 거 아니야. 여기 와서 징징대지 마' 하잖아요.
◆ 손희정> 정치인의 세계관과 과학자의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싶었어요. 루즈벨트 대통령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시킨 다음에 잠을 못 자고 복도를 돌아다녔대요. 그런데 트루먼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던 거죠. 또 오펜하이머는 자기 손에 피를 묻혔다고 생각하는 진보적인 과학자였기 때문에 그 이후에 수소폭탄 개발을 막기 위해 더 정치 활동을 활발하게 하게 되거든요. 오펜하이머가 꿈꿨던 세상은 루즈벨트가 고안했던, 유엔 체제 아래에서 핵폭탄을 미국이 가지면 전쟁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거죠.
◇ 채선아> 핵폭탄을 가지고만 있어도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이었죠.
◆ 손희정> 그런데 남은 것은 파멸의 연쇄작용. 더 큰 폭탄, 더 큰 폭탄이 돼버린 거죠.
◆ 김만권>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하고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결국은 연쇄작용이 시작된 것 같다고. 그 이후의 핵무기 경쟁이 과학과 정치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요. 많은 과학자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우리가 그걸 만드는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만든다고 하거든요.
◆ 손희정> 산이 있기 때문에 오르는 건가요? (웃음)
◆ 김만권> (웃음) 그런 거죠.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만든다는 말을 또 누가 했냐면 이번에 챗GPT를 만든 샘 알트만이 한 말이에요. 우리가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만드는 거다. 근데 이걸 어떻게 규제하고 통제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가 같이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 채선아> 그래서 샘 알트만을 두고 2020년대의 오펜하이머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인공지능 기술 자체도 핵무기처럼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규제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잖아요.
◆ 김만권> 샘 알트만이 2019년에 뉴욕타임즈랑 인터뷰를 할 때 자신의 인공지능 개발 과정이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맨해튼 프로젝트와 유사하다고 이야기해요. 또 핵무기가 인류의 기술 진보를 상징한다면 인공지능도 거의 동일 선상에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인공지능이 엄청나게 세상을 바꾸어 놓을 거라는 거에 대해서 스스로 인정하고, 우리가 이걸 어떻게 통제를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앞으로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오펜하이머와 좀 다른 건 뭐냐면 오펜하이머는 정말 위기 상황이었잖아요.
◇ 채선아> 오펜하이머는 나치가 세상을 파괴할 위험이 있었던 건데, 챗GPT는 그런 건 아니잖아요.
◆ 김만권> 그렇죠. 오펜하이머는 오히려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뭔가 만든다는 생각도 있었을텐데 샘 알트만은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일상의 차원이고, 현재 많은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 삶에 쓰이면서 우리의 직업을 가져가는 경우라든지 대체하는 경우라든지 패턴을 바꿔놓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할리우드 배우, 작가들이 다 인공지능 문제 때문에 파업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고요. 가장 걱정되는 게 뭐냐 하면 인공지능이 전투용 무기에 쓰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엄청난 재앙이 될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 채선아> 사람이 결정을 잘 못할 때, 혹은 죄책감을 가질 때 인공지능이 대신한다면?
◆ 김만권> 그렇죠. 결국은 그게 큰 학살 무기가 되고 인류를 파멸시킬 파괴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잘 써나갈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시점에 확실히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 손희정> 저는 샘 알트만이 사업가라는 점에서 좀 더 신뢰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적정 수준의 기술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능하면 핵도 무기나 발전소에 쓸 정도로 이렇게까지 고도화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챗GPT 같은 AI도 마찬가지인데 사업가의 손에 들어가버리면 윤리를 말하기 힘든 시대가 돼버렸기 때문에 연쇄작용이 시작돼버린 거죠.
◆ 김만권> 챗GPT를 만든 오픈AI도 처음에는 비영리단체였어요. 투자를 받고 더 개발하고 더 큰 투자가 필요하고, 이런 과정 속에서 처음에 비영리 단체로서 표방했던 이상에서 벗어나고 있죠.
◆ 손희정> 저는 테크놀로지의 비영리를 믿지 않습니다.
◇ 채선아> 여기서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 보면, 일본에서는 이 영화를 굉장히 불편해하고 아예 개봉도 안 했잖아요. 영화 개봉을 둘러싼 정치적 맥락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요.
◆ 손희정> 저는 이 영화에서 제일 싫었던 점은 8월 15일이라는 한국의 개봉 날짜였던 것 같아요. 보통은 미국과 동시 개봉하고, 특히나 크리스토퍼 놀란은 한국에서 제일 인기 많은 할리우드 감독이어서 이렇게 미룬다는 것도 약간 이상한 일이었을 수 있을 텐데 8월 15일을 기다린 거죠. 8월 15일이 휴일이기 때문에 마케팅적인 고려도 들어가서 선택한 날짜였을 텐데 염려되는 건 이런 거죠. '광복절이 핵폭탄 덕분에 가능했다라고 하는 생각을 국민들이 가지고 있을 거다, 그러니까 이 날에 맞춰서 개봉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애국심을 가지고 올 거야' 이런 식의 계산이었던 것이 아닐까.
당연히 8월 15일이 핵폭탄 덕분에 해방일 수도 있지만, 핵폭탄이 떨어지고 난 다음에 이후까지 포함해서 약 20만 명의 사람이 죽었고 그 희생자 안에는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적 차원에서나 역사적으로나 8월 15일에 기분 좋게 '오펜하이머'를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저는 생각하고요.
핵폭탄이 터지고 난 다음에 미국 중심의 전후 체제가 열렸다고 할 때, 그 전후 체제에서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건 역시 한미일 공조였을 텐데 딱 오펜하이머 개봉하던 즈음이 한미일 공조 체제 안에서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는 것이 확정되는 그 시기였잖아요. 이게 진짜 딜레마이기도 하고, 올해 8월 15일에 대통령 축사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란 듣도 보도 못한 얘기가 나왔는데 이건 '빨갱이 사냥'의 수사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빨갱이 사냥'에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오펜하이머'를 보면서는 여러 가지 마음이 좀 복잡했습니다.

◆ 김만권> 또 한편으로는 '오펜하이머'가 이념이 과학을 어떻게 망치는가를 보여주고 있잖아요. 아주 심하게 이념이 개입해 들어오게 되면 이 세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누군가를 사냥하고, 누군가를 갖다가 몰아붙이는 그런 세계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들을 영화 자체가 보여주고 있어서 이념에 경도된 세계가 무엇을 만드는가, 핵폭탄만큼 무서운 세계를 만든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우리가 거기서 배우는 것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를 어떻게든 공산주의자로, 소련의 첩자로 만들어서 바깥으로 몰아내는 작업들이 이어지는데요. 이념이 강조되면 현실이 이념에 끼워 맞춰져야 돼요. 그래서 현실이 현실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영화 속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는 자기가 겪었던, 진짜 일어났던 일들을 다 설명하는데 질문하는 사람은 계속 그 사람을 이념의 세계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 질문하고 그 대답을 모두 이념의 틀 안에 넣어서 해석하고 맞추는 일들이 일어나거든요. 그러면 이념이 현실을 왜곡시켜버려요. 진짜 있었던 일, 우리가 경험했던 삶의 경험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고, 이념의 렌즈로 다 굴절시켜서 이념을 말하는 사람들 마음대로 해석해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지는 거죠. 이런 부분들 자체가 상당히 문제가 된다는 걸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만큼 잘못된 세상이 없어요.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모든 것이 논리적 추론으로 만들어지는 세계라는 뜻이거든요. 그 말 자체는 우리가 이 세계에서 발을 떼고 산다라는 의미예요. 그래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은 사실은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라고 말씀드립니다.
◇ 채선아> 어떻게든 끼워 맞추면 다 끼워 맞출 수 있는 것 같고,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흉상이 육사 밖으로 사라졌잖아요.
◆ 손희정> 누가 도대체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라는 말도 안되는 단어를 조합해서 대통령에게 알려드렸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지난번에 잼버리 사태 관련해서 이번 정부가 전두환 정부의 재탕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제 이명박 정부의 재탕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조진웅 배우가 홍범도 흉상에 대해 이런 식의 얘기를 해야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처참하다"고 말한 인터뷰가 나왔어요. 왜 연예인들까지 정치적 발언을 이렇게 많은 걸 걸고 책임지고 해야 되는가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 김만권> 이념이 지배하면 이런 발언을 하기가 되게 힘들어져요. 이념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 사람이 말하는 진심을 왜곡하게 되니까요.
◆ 손희정> 진짜 걱정이 되는 건 유인촌 전 장관이 다시 문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는데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 때 유인촌 장관이 들어서면서 '한국 영화는 좌파'라는 식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왔거든요. 이러다 이념의 바탕에서 영화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거 아닐까 하는 고민들도 하게 됩니다.
◆ 김만권>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상징적인 사건인데요. 홍범도 장군을 이렇게 내몰 수 있다면 저는 뭐라도 내몰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채선아> 독립운동가가 육사 바깥으로 나가버렸으니까요.
◆ 김만권> 심지어 홍범도 장군 같은 경우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건국 훈장을 준 사람이에요. 보수의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건국 훈장을 준 사람도 건드릴 수 있다는 건 누구라도 건드릴 수 있다는 거죠.
◆ 손희정> 굉장히 기이한 게, 사실은 기준 없이 공격이 펼쳐지고 있는데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은 '문재인 정권이 한 건 다 싫어'거든요. 문재인 정권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 모셔오고 흉상을 육사에 세웠잖아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뭘 했건 상관없는 거죠.
◇ 채선아> 이념 얘기를 하다 보니 정치 얘기까지 하게 됐는데 오펜하이머와 관련된 여성 과학자들 얘기도 준비해오셨다고요.
◆ 손희정> 저는 영화를 굉장히 흥미롭게 봤지만 이 영화에서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행된 로스 앨러모스 기지에서 활동한 여성 노동자들과 여성 과학자를 지우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게 오펜하이머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여러 저널에서 다루었던 문제점이기도 한데요. 로스 앨러모스 전 직원의 11% 정도였었던 640명이 여성이었고 그 절반이 과학자였다고 하거든요. 그 중에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던 마리아 괴퍼트메이어라는 과학자가 있어요. 오펜하이머가 존경하는 과학자였다고 하고요.
수학자인 나오미 리브세이라는 사람이 계산 전문가로 활약을 했는데 이 시기가 다 손으로 계산하던 때였잖아요. 근데 기계식 계산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남성들이 그걸 잘 활용을 못했었대요. 그래서 컴퓨터(computer/계산하는 사람)도 사람 컴퓨터는 여성들이었고, 그게 기계 컴퓨터로 바뀌었을 때도 여성 컴퓨터들이 많았거든요. 그게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에 나오기도 합니다.
또 재밌는 건 과학자는 아니지만 폭발물 전문가인 여성이 있었다고 해요. 프랜시스 던이라는 사람인데 1940년대 미국에서 여성들이 군수공장에 취직해서 엄청나게 위험한 일들을 되게 많이 했던 시기이기도 하거든요.
◆ 김만권> 그 시기에 남성들이 전쟁터에 가 있어가지고 여성들이 군수공장에서 엄청나게 많이 일을 했어요.
◆ 손희정> 1920-30년대에 여성 참정권과 교육권을 쟁취했던 여성들이 40년대에 국가적인 필요와 자본의 요구에 의해서 이 두 욕망이 만나면서 엄청나게 취직을 해요. 그리고 전쟁 딱 끝나고 다 해고가 되기는 했는데요.
◆ 김만권> 45년 이후에 미국이 가장 열심히 했던 게 그 전쟁 기간에 바깥으로 나왔던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거였거든요.
◆ 손희정> 근데 프랜시스 던이라고 하는 여성은 기계를 굉장히 잘 만들어서 로스 앨러모스에서도 일하고 나중에는 FBI로 갔다고 해요. 그래서 영화 '오펜하이머'가 왜 이렇게까지 여성 과학자를 지워야 했을까 의문이 들어요. 여성 캐릭터들은 다 오펜하이머의 애인이거나 아내거나 그런 사람들로 나오잖아요. 왜 그렇게까지 축소해야 했을까는 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채선아> 지금 a** 님이 '와이파이를 발명한 게 할리우드 여자 배우다'라고 댓글 주셨네요.
◆ 손희정> 헤디 라머라는 배우인데 '밤쉘'이라는 영화에 그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 김만권> 너무 감사합니다. 와이파이 발명해 주셔서 진짜 (웃음)
◆ 손희정> (웃음) 저는 와이파이는 적정 기술인 것 같아요.
◇ 채선아> 오늘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다가 드는 생각들, 그리고 현실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들을 짚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 손희정, 김만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