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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갑질' 컨트롤 안 되면…백약이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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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학부모 갑질' 컨트롤 안 되면…백약이 무효

    핵심요약

    학부모가 통학버스·교실까지 들어와 제지하자 "빨갱이"
    25년차 베테랑 교사마저 '악성 민원'에 병가·휴직까지
    전문가 "교원지위법 근거해 법적 대응 강하게 해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황진환 기자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황진환 기자
    "아이 등교할 때 학부모가 함께 가겠다며 통학 버스를 탔다. 안 된다고 해도 '우리 아이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며 막무가내였다. 학교에 와서도 아이와 함께 교실에 들어오다가, 안 된다고 하니 복도에서 창문으로 쳐다보고 있더라."
     
    경력 10년 차인 교사 이모씨는 악성 학부모 민원이 남 일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더구나 이씨는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덜한 시골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맡고 있다.
     
    이씨는 "학부모를 제지하니 '왜 함부로 하느냐'며 교사들을 '빨갱이 집단'이라고 지칭했다"며 "이후로도 1~2일에 한 번씩 학교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이러한 악성 민원 학부모가 있어도 대응할 수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학교에서 나가 달라고 말하는데 '학생들의 안전 보호' 말고는 다른 근거가 없더라. 만약 학부모가 신분을 드러내고 오겠다고 하면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가운데, 교사들은 그동안 겪은 '학부모 갑질'과 이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사 생존권 위한 전국 교사 집회' 에 참석한 교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사 생존권 위한 전국 교사 집회' 에 참석한 교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
    25일 교사노동조합연맹 경기교사노조가 개설한 홈페이지인 '교육을 죽이는 악성민원, 교사에게 족쇄를 채우는 아동학대 무고. 이제 이야기 해주세요!'에는 현직 교사들의 다양한 악성 민원 경험 사례들이 올라왔다.
     
    악성 민원은 경력 25년 차 베테랑 교사 A씨도 병가와 휴직을 쓰도록 떠밀었다. A씨는 지난해 하반기 학년 진급 때 사이가 안 좋은 한 학생을 다른 학급에 배정해 달라는 학부모의 요청을 잊고 같은 반에 배정했다.
     
    이후 A씨는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민원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학부모는 수업을 녹취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내용을 담아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A씨는 "수업 중 발언, 알림장 기재 내용, 학급소통창구 내용 등을 문제 삼아 하루에 한 번씩 지속적인 민원을 교육청에 넣는 것은 물론, '자질이 부족하다'는 민원을 넣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결국 7주 동안 병가를 사용하고 복귀하려던 A씨는 또다시 민원 폭탄을 받았고, 견디다 못해 현재 휴직 중이다. A씨는 "25년 차인 나도 버티기 어려웠던 상황을 2년 차 교사가 어찌 버틸 수 있었겠느냐"고 썼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고인을 추모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져 있다. 박종민 기자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고인을 추모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져 있다. 박종민 기자
    전문가들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막기 위해서는 법적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주교대 교육학과 박남기 교수는 "현재는 어떤 부당한 행위를 해도 학교와 교사가 참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점점 과도한 민원이랄지 과도한 행동들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원지위법에 근거해서 학교에서는 법적인 대응을 강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민원인들이 교사를 직접 만나지 못하도록, 공공기관에 민원을 제기할 때처럼 학교에서도 민원 창구를 따로 만들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학부모 갑질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학교로 거는 전화는 모두 녹음이 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 교수는 "그러면 학부모들도 말을 조금 가려서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윤미숙 전국초등교사노조 정책실장은 지난 2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교실로 전화했을 때 '지금 이 사람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와 같은 통화연결음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시교육청에서 열린 시교육청-교직 3단체 긴급 공동 기자회견에서 최근 발생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과를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시교육청에서 열린 시교육청-교직 3단체 긴급 공동 기자회견에서 최근 발생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과를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교육부는 이달 12일부터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통화연결음 문구 공모전'을 벌이고 있으며 조만간 제작할 예정이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24일 서울 교원단체총연합회, 서울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등 3개 교직 단체와 연 기자회견에서 녹음 전화기 보급 사업의 지속 확대 및 학교 기관 전화 시 갑질 근절에 대한 안내 설명 송출 등을 이들 단체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천창수 울산시교육감도 같은날 정책회의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의견을 나누는 '원탁토론회' 준비,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긴급 실태조사, 악성 민원 방지를 위한 자동녹음 전화기 일선 보급 등도 지시했다.
     
    학부모회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한국교원대 김성천 교수는 "갑질하는 학부모가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다른 학부모들이 견제하고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건강한 학부모들이 일부 갑질 학부모를 통제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생의 인권과 교권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숙명여대 교육학부 송기창 명예교수는 "교사의 교권과 학생들의 인권이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며 "다만 학생 인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교권이 소홀히 된 측면이 있다. 이제 양쪽의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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