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신혜림 PD, 조석영 PD
◇ 채선아> 좀 더 밀도 있게 알아볼 이슈 짚어보는 뉴스 탐구생활 시간입니다. 조석영 PD, 신혜림 PD 나와 계세요.
◆ 신혜림, 조석영> 안녕하세요.
◇ 채선아> 오늘은 혜림 PD가 준비를 해왔는데 또래를 살해한 정유정 관련된 소식 가지고 오셨네요.
◆ 신혜림> 정유정이 자폐가 의심된다는 보도가 이번 주 이어지면서 논란이 일어났는데, 관련 소식 가져왔습니다. 일단 정유정 사건 관련 뉴스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과외 앱에서 살인 대상으로 접촉한 인원이 총 54명이었다는 소식, 그러니까 범행에 용이한 대상을 접촉을 계속한 거죠. 혼자 사는 여성인지, 그리고 피해자의 집에서 과외 수업이 가능한지 그런 여부를 따졌다고 해요.

◇ 채선아> '혼자 사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 답변에 생사가 갈린 거잖아요. 그게 좀 소름 끼치더라고요.
◆ 조석영> 공책에 '안 죽이면 분이 안 풀린다'는 메모가 있다는 뉴스도 많이 나왔고요.
◆ 신혜림> 이런 뉴스가 나오는 와중에 자폐 논란이 있었어요. 시작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지난 주말, 17일 방송에서부터였습니다. 정유정 체포 후에 경찰이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해봤더니 높은 점수를 받았다, 28점이다. 이런 보도가 나왔잖아요. 방송에서 이 지점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해요. '정유정은 정말 사이코패스일까?'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28점이라는 높은 점수에 상당히 의문이 든다. 이 평가에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거예요. 생애 전반을 봐야 되는데, 청소년기에도 범죄가 문란한 성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고, 이런 게 평가 요소인데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정유정한테 그런 높은 점수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박지선 교수도 '일면식 없는 사람을 찾아가 죽이는 행동에 합리적인 설명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날 때부터 정유정은 사이코패스다. 이렇게 단정 지어야 두려움을 덜 느낀다'면서 정유정과 사이코패스를 연결 짓는데 브레이크를 건 거죠.

◇ 채선아> 정유정이 사이코패스여야만 우리가 좀 안정감을 갖는다는 거네요.
◆ 신혜림> 그래서 방송에서는 단순히 정유정이 사이코패스라고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나에 끝나지 않고, 대신 다른 원인을 찾아보려고 여러 시도를 합니다. 은둔형 외톨이를 찾아가기도 하는데, 후반부에 한 정신과 전문의가 나와서 자폐를 의심합니다.
◇ 채선아> 그 발언이 어마어마하게 주목을 받았어요. 근거가 있었나요?
◆ 신혜림> 고등학교 친구들의 증언을 보면 '정유정이 가지고 있는 성격의 밑바탕에 자폐적인 성향이 보인다', '모든 범행 과정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고 독특한 말투와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다', 이런 게 자폐적 특성과 일치해 보인다는 거죠.
◆ 조석영> 이런 사람들은 제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정확한 근거가 안 된다는 얘기죠.
◆ 신혜림> 그래서 확신을 경계하는 발언도 같이 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전체적으로 보면 결론부에 가서 자폐에 대해서 굉장히 강조하고 비주얼적으로도 좀 자세히 설명을 하죠. 그 결과 많은 매체들이 이 내용을 결론으로 따서 퍼다 실었어요.
◇ 채선아> 그래서 더 논란이 됐던 거죠.
◆ 신혜림> 그래서 보도 이후에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굉장히 분노를 했고 전국 장애인 부모연대에서 성명을 내기도 했고요. 의사들도 성명을 냈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 정신의학회에서 성명을 냈고요. '근거 없이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했다'고 강력하게 비판한 거죠.

◇ 채선아> 분노할 만했어요. 마치 자폐가 범죄의 동기이자 어떤 특성처럼 느껴지게 했다는 거죠.
◆ 신혜림> 일단 가장 문제가 뭐였냐면, 이 전문의는 정유정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직접 진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면 의사도 그 자격이 없는 거예요. 이런 빈약한 근거로 공적 발화를 할 자격이 없는 거죠. 장애인 부모연대 성명을 자문했던 김승섭 교수도 코멘트를 하는데 '한 인간이 어떤 정신적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언론을 통해 말하는 과정은 충분한 검토를 거치고 신중해야 한다' 이 의사도 비판하고 언론도 비판한 거죠.
◆ 조석영> 이걸 언론이 내보내기로 했다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다는 거죠.
◆ 신혜림> 적어도 방송에 나온 내용으로는 자폐적 성향이라고 할 근거가 안된다는 거죠. 이게 논란이 되면서 검찰도 자폐 관련 언급을 했는데 '정유정이 주의력 부족 같은 건 좀 보인다. 하지만 자폐 가능성은 적다'고 했고요. 김승섭 교수가 또 이렇게 말하거든요.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자폐증을 가진 이들은 범죄의 가해자이기보다는 피해자인 경우가 많고, 그들이 다른 이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폭력적이라는 근거는 없다'는 거예요.
◇ 채선아> 그 근거를 오히려 미디어에서 조장한 것일 수도 있죠.
◆ 신혜림> 그럴 수 있죠. 이런 면에서 이 보도가 문제적이었던 진짜 큰 이유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한 사람과, 특정한 하나의 증상을, 자칫 그 증상의 문제인 것처럼 낙인찍도록 직접 연결시켜버렸다는 점입니다.
◆ 조석영> 실제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저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논리가 통용된 거죠.
◆ 신혜림> 하나의 연구를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아까 말씀드린 박지선 교수가 진행한 연구에요. 2016년에 실험 참여자 363명에게 한 해 동안 8개 범죄, 살인, 강간, 방화, 폭행, 강도, 절도, 사기, 묻지마 범죄, 이런 걸 저지른 범죄자들 중에 정신질환자가 얼마나 될지 비율을 추정하게 하거든요. 참가자들은 정신질환자 비율이 26%에 달할 것으로 추정을 해요.
◇ 채선아>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 신혜림> 실제로는 어떠냐면, 가장 최신 정보인 2021년 경찰 통계 연보를 가져왔는데요. 총범죄자 중 정신장애를 가진 범죄자 비율은 전체의 0.7%고요. 강력범죄 범죄자는 2.4%입니다.

◆ 조석영> 정신장애를 가지지 않은 강력범죄자가 97.6%라는 거죠.
◇ 채선아> 저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 차별적 대우가 이렇게나 많구나 느꼈고,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달라진 건 별로 없네요.
◆ 신혜림> 자폐 스펙트럼으로 한정 짓는다면 특징에 폭력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 조석영> 드라마에도 주인공 우영우 외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캐릭터가 나왔죠.
◆ 신혜림> 그렇죠. 소리를 지르거나, 밀치기, 때리기, 밀기, 물기, 이런 경우가 있는데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고생을 하시지만, 그걸 저토록 저렇게 잔혹한 범죄와 직결시키기에는 너무 무리고, 통계적 근거가 일단 없다는 거예요. 이걸 범죄와 연결시키려면 정말 세밀한 근거를 가지고 해야되는 거고, 설령 그 범죄자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범죄 동기로 그 장애를 부각시켜서 보도하는 건 신중해야 되잖아요.
여기서 생각나는 게 안인득 진주 방화 살인 사건입니다.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한테 흉기를 휘둘러서 5명을 살해한 사건인데요. 그때 범인 안인득이 조현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병명 자체에 범죄 낙인이 찍힌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정말 그때 조현병 당사자랑 가족들이 굉장히 고통을 많이 받았어요.
◆ 조석영> 당시에 CBS 라디오 방송에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가 출연해서 '단순 조현병과 범죄 사이에는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고 강조를 했고요. 안인득 담당 프로파일러도 나와서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조현병 안에 위험한 조현병이 있고, 아닌 조현병이 있는데 대다수는 아닌 거죠.
◆ 신혜림> 그 뒤로 4년이 지났어요. 심층 보도가 이어졌고, 그동안 알려진 조현병에 대한 사실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를 해볼게요. 첫 번째, 국내 조현병의 유병률은 1% 정도 되는데 비해 전체 범죄 중 가해자가 조현병 환자인 사건 비율은 0.04%입니다. 두 번째, 치료를 받고 있으면 조현병은 안전합니다. 다만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고 관리가 전혀 안 되면 범죄 확률은 높아질 수 있다는 거예요. 세 번째,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장기간 방치됐을 때 중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공적 개입이 정말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해야 된다. 이 사건 이후에 경찰이나 국가의 방치 정황이 세부적으로 나오기도 했어요.
◆ 조석영> 그래서 안인득 사건의 피해자 유족 중 일부가 국가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죠. 그 소송에 대해 '우리가 이걸 이겨야 뭐라도 달라진다, 국가 책임이 인정이 된다'는 취지의 얘기를 하셨어요.
◆ 신혜림> 지역사회에 거주 중인 중증 정신질환자가 43만여 명 정도 된다고 하거든요. 추정인데, 그중 정신건강복지센터 같은 지역 정신보건 기관에 등록된 인원은 8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럼 19% 정도 되는 질환자들만 돌봄을 받고, 감시보호 체계에 있다는 거죠. 전반적으로는 방치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채선아> 통계를 쭉 듣다 보니 우리가 무슨 사건만 났다 그러면 '정신이 이상한 거 아니야?' 이렇게 쉽게 그냥 말을 하잖아요. 그거 자체를 하면 안 된다. 통계상으로 지금 확인을 했잖아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라는 거예요. 이게 믿기 어려울 수 있고, 더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게 팩트라는 거죠.
◆ 신혜림> 이쯤에서 하나 더 궁금해진 게 있었어요. 사이코패스라는 것도 사실 정신장애 일종이잖아요. 반사회적 성격 장애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사이코패스라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도 혹시 일종의 낙인일까?' 궁금했었는데 최근 경향신문 인터뷰가 있었어요. 국립법무병원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230건 이상의 형사 정신 감정을 진행했던 차승민 전문의에 의하면, 사이코패스의 경우 미국 같은 경우는 진단명을 아예 빼버리는 추세래요. 어차피 치료도 잘 안 되고, 또 훈육으로 충동을 누를 수도 있고,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통제가 가능하다는 거죠.
◇ 채선아> 제가 이 얘기를 들으면서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라는 책 생각이 났어요. 이 뇌과학자가 뇌 사진을 보다가 '어? 이거는 사이코패스가 분명한데' 했는데 그 뇌 사진이 자기 뇌였던 거예요. 알고 보니 내 뇌에서 사이코패스 특성을 발견한 거예요. 그럼 '나는 왜 사이코패스인데 범죄자가 안 되었나'라고 추적을 해봤더니, 결론만 얘기하면 어떻게 자라느냐, 사회적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책이었거든요. 어떤 집단을 범죄자로 낙인찍으면 안 되는 이유가 이 책에서도 보이는 거죠.
◆ 신혜림> 그래서 정리를 좀 해보면 발달장애인 자폐는 정신장애인 조현병에 비해서는 지금은 사회적 편견이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편견이 강화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게, 단호하게 사전 차단을 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서 표창원 전 교수 인터뷰가 이런 멘트로 끝나거든요. "정유정은 섣불리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다.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런 괴물이 됐는가. 그 과정 중에 우리 사회가 발견하거나 막을 수 있는 여지는 없었나 생각해야 된다." 되게 좋은 말이잖아요. 사이코패스라고 판단을 내리기까지 과정이 섣불러서 안 되는 것도 확실하고. 그 과정에서의 사회적 배경을 얘기하는 것도 너무 필요한 일인데, 그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기 위해서 오히려 자폐와 연결시키는, 더더욱 섣부른 낙인을 만들어버린 안타까운 사례였던 거죠.
이 정유정이라는 사람이 상식과 너무 벗어나는 잔혹한 행동을 했다 보니까, 이 사람이 대체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보도가 계속 이루어지고, 우리도 사실 관심을 많이 갖고 있잖아요. 이런 가해자 서사를 추적하는 일은 굉장히 필요하다고 보지만 어디까지나 재발 방지를 위해서인 거고, 또 다른 정유정이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사회가 어떤 돌봄 감시 역할을 해야 되기 때문에 추적을 하는 거잖아요. 거기에서 특정 집단을 낙인찍는 결론은 굉장히 위험하고 조심을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채선아> 이번 방송 관련해서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당사자분들을 직접 만나서 소명할 거다' 이렇게 입장을 밝힌 상태이기는 하거든요. '자폐와 범죄를 연결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라고 제작진이 의도를 설명하긴 했습니다.
◆ 조석영> 소명을 하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뭔가 또 논란에 이어 얘기가 진행되고, 이 기회에 또 앞으로 이런 일이 안 벌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 채선아> 네.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신혜림 PD, 조석영 PD 고맙습니다.
◆ 신혜림, 조석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