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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D 결핍에 청력 재검만 5년째…화재 나면 다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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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비타민D 결핍에 청력 재검만 5년째…화재 나면 다 죽어요"

    편집자 주

    2022년 여름, 서울에서 시간당 100mm가 넘는 물폭탄이 떨어졌을 때, 반지하에서 살다가 침수로 숨진 이들이 있었다. 사건 이후 해당 지자체는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주거 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였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의 인권은 지하로 가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이 필수 시설이자 주민 기피시설인 폐기물 처리장을 눈에 보이지 않는 '지상 아래 두기'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지하 폐기물 처리시설인 경기도 하남 유니온파크가 대표적이며, 전남 순천시도 이를 모델 삼아 폐기물 처리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남CBS는 지자체들이 열광하는 '지하화' 폐기물 처리시설'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화려한 지상 경관에 가려져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노동자들의 권리마저 지하화해선 안되는 이유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하로 간 노동자…폐기물 처리시설 '지하화'가 해법인가①]
    쓰레기 더미 속 컴컴한 지하서 12시간씩 노동
    시력 저하에 비타민D 결핍…청력 재검은 기본
    "화재 나면 뛰어내릴 곳도 없고 다 죽어요" 한 목소리
    "노동력이 곧 생명력…우리도 시민이에요"

    경기도 '하남 유니온파크' 전경. 하남시 제공 경기도 '하남 유니온파크' 전경. 하남시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5년째 비타민D 결핍에 청력 재검까지…화재 나면 다 죽어요"
    (계속)

    여기가 폐기물처리장? 전국 모델이 된 하남 유니온파크

    105m 높이의 35층 타워 전망대와 어린이 수영장, 테니스 코트와 무인 카페까지…
     
    화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외관만 보면 놀이공원 같지만, 음식물 처리장부터 소각장까지 갖춘 복합 환경기초시설 경기도 '하남 유니온파크'다.
     
    아파트와는 불과 35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이곳은, 각종 문화시설과 복합쇼핑몰을 갖춘 덕분에 주민과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시설이 됐다.
     
    정부는 지난해 7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2030년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를 법제화했다. 그 전까지 자체 소각장을 갖춰야 하는 지자체들은, 혐오 기피 시설이라는 낙인을 지우고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묘안으로 하남 유니온파크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전남 순천시가 2022년부터 1년여 동안 관내 주요단체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선진지 답사를 진행한 것도 이같은 취지다.
     
    하지만 화려한 도시 경관 이면에는 외면해선 안될 현실이 있다. 선진지 답사 때는 소개하지 않는 이야기다.
     하남 유니온파크 지하에 있는 재활용품 분류 파트에서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하남 유니온파크 지하에 있는 재활용품 분류 파트에서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햇빛이라도 볼 수 있다면…의자에 앉기도 바쁘다

    하남 유니온파크에서 6년째 일한 A(48)씨는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비타민 D 부족' 판정을 받았다. 벌써 5년째다. 이러한 형편에 A씨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억지로 1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비타민D 주사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결핍은 피해갈 수 없다.

    A씨는 "3인 1조로 하루 12시간씩 교대하는 근무 형태라서 겨울에는 하루 종일 햇빛도 못볼 때가 있다"며 "창문도 없는 작업 공간에서 일하는 건 정말 최악의 근무 여건"이라고 말했다.

    "지상이라면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고, 문을 열고 나가면 가볍게 바람이라도 쐴 수 있죠. 하지만 짧은 쉬는 시간에 지하 4층에서 오르내리는 시간조차 아까워 일하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쉬기 바쁘죠."

    지하 4층 음식물 폐기 시설에서 일한 지 7년째라는 노동자 B(48)씨는 1년 전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양쪽 1.5이던 시력이 점차 나빠지더니 1.0로 뚝 떨어졌다. 365일 중 300일 가까이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일한 탓이다.  

    B씨는 "매일 어두운 곳에서 일하다 보니까 시력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야간에는 뿌옇게 보여 운전이 어려울 정도"라며 "작업장 안전 기준에 따르면 이 작업장의 조도는 75럭스(lux) 이상은 돼야 하는데 30럭스 밖에 안 나온다"고 호소했다.

    한 노동자는 5년간 건강검진에서 '비타민 D 부족' 진단을 받았다. 2022년 건강검진 결과. 노동자 제공 한 노동자는 5년간 건강검진에서 '비타민 D 부족' 진단을 받았다. 2022년 건강검진 결과. 노동자 제공 
    2014년부터 '복합 환경기초시설'로 운영을 시작한 하남 유니온파크는 하루 최대 48톤까지 하남시 폐기물을 처리한다. 지하 1~4층, 25m의 깊이에 하수처리시설과 소각장, 음식물 자원화시설, 재활용품선별시설 등 4개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1년에 한 번 받는 건강 검진에서 재검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재활용품 선별 파트이다.
     
    특히 청력 검사에서 '재검'이 나온다. 쉴 새 없이 재활용품이 분류되는 컨베이어 벨트 소리, 폐기물 압축 기계의 폭발음 소리까지 소음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밖으로 통하는 창문 하나가 없기 때문에 모든 소음은 지하 내부에 갇혀 울린다.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몫이다.

    전국환경노동조합 측으로부터 입수한 하남 유니온파크 지하 노동자들의 건강검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재활용품 선별 파트에서 7명이 청력 재검 판정을 받았다.
     
    5년 차 노동자 B(52)씨는 "소음에 대비할 수 있는 건 학생들이 공부할 때 사용하는 귀막이"라며 "하루 종일 기계음 속에서 귀막이를 착용하면 얼마나 정신이 멍해지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사고 위험이 크다"며 "이전에 지상 폐기물시설에서 이직을 했는데 이렇게까지 지하 노동 환경이 열악할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다른 직능보다 소음, 분진 등에 노출돼있는 재활용품 선별 파트는 신입 사원을 뽑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이곳 노동자들은 연령대가 높다고 설명했다.
     
    어두컴컴한 하남 유니온파크 지하 시설. 박사라 기자어두컴컴한 하남 유니온파크 지하 시설. 박사라 기자

    어두컴컴한 지하, 환기도 취약…부탄가스 압축하다 화재 빈번

    "기자님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하남 유니온파크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갑작스런 질문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주변은 어두컴컴한 공간일 뿐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눈 앞이 캄캄했다.
     
    시력, 청력, 비타민D 결핍을 호소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죽음 앞에 사는 사람들"이라 입을 모았다. 지하 4층에서 불이라도 나면 도망도 못 가고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거다.
     
    재활용품 선별 파트는 화재에 가장 취약한 곳이다. 소각로가 있기도 하지만 버려진 부탄가스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폭발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부탄가스 압축 과정에서 3번이나 불이 날 뻔했다.
     
    환경기초시설은 고용노동부 분류상 위생시설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위생시설에서 일어난 화재는 678건에 달한다. 이 중 폐기물처리시설은 251건, 폐기물재활용시설은 298건이었다. 이 역시 소방청에 정식 접수된 집계일 뿐, 신고되지 않은 화재 건수를 포함하면 화재 발생은 일상적이다.
     지하 폐기물 처리시설 재활용 선별 시설에서 화재가 난 현장. 전국환경노동조합 제공 지하 폐기물 처리시설 재활용 선별 시설에서 화재가 난 현장. 전국환경노동조합 제공 
    지하 폐기물처리시설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화재가 나 노동자들이 소화기로 진압하고 있다. 전국환경노동조합 제공 지하 폐기물처리시설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화재가 나 노동자들이 소화기로 진압하고 있다. 전국환경노동조합 제공 
    ​​​​"만약 지상 2층에서 일하는데 불이 난다면 2층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안 돼요"
     
    한 노동자는 "화재 나면 죽는다고 생각해야 된다"고 말했다.
     
    기계 소리에 파묻힌 어두운 공간에서 만약 노동자 한 명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안에서 큰 소리를 외쳐도 바깥에선 들리지 않는다. 실제 서울 마포 폐기물 처리시설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아침에 쓰러진 노동자를 6시간 만에 발견해, 결국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지하시설은 화재에 이어 환기도 취약하다.

    하남 유니온파크는 악취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내부에 꽁꽁 싸매는 식이다. 주민 민원을 막기 위해서다. 환기시설은 있지만 악취와 유해 물질은 내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몸 속으로 체화된다. 창문을 개방할 수 있는 지상 시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급배기 시설도 있지만 건물 층고 자체가 높은 데다 시설 규모가 커서 무용지물이라는 게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이 모든 것을 마스크 1장으로 버텨야 하는데 실내 온도가 40~43도 가량 되는 여름에는 안전모에 마스크까지 써야 한다.

    직능별로 일하는 4개 시설 모두 공간마다 냄새가 확연히 달랐다. 그만큼 환기는 물론 순환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그런 냄새마저 익숙해 하는 것 같았다.
     
    "노동자니까 노동력이 곧 생명력이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는 그 생명력을 팔아서 지금 먹고 사는 품팔이를 하는 거고요. 좋은 환경에서 내 노동력을, 생명력을 갉아먹으면서 일하기도 힘든데 그런 환경을 개선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요. 악취, 소음, 분진 등 다른 현장에 비해서 10배, 20배 힘든 조건에서 일한단 말이에요. 어르신들이 골병 든다고 하잖아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골병 들으면서 일하는 것뿐이에요. 100여 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면서 주민을 생각할 것인지… 노동자도 시민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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