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저전동에 문을 연 재미난가게. 박사라 기자
"오늘도 고생했어요! 내일도 빛날 당신을 위해 멀리 칠곡군에서 방문한 이모가 한 잔 선물할게요! 파이팅!"
골목길을 지나가던 초등학생들이 "음료수 한 잔씩 마시고 가"라는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앞서 다녀간 손님이 학생들 주라며 음료수 5잔을 '달아' 놨기 때문이다.
도리어 학생들은 "요즘 대가 없이 그냥 주는 데가 어딨냐"고 되묻기까지 한다.
특별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음료수 한 잔 넉넉히 마시다 갈 수 있는 곳. 전남 순천의 원도심인 저전동에 문을 연 '재미난가게' 이야기다.
지난달 31일 문을 연 재미난가게 한쪽 벽면에는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다정한 응원' 공간이 있다. 손님들이 먼저 음료를 계산하고 쪽지를 남기면, 가게를 드나드는 청소년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문을 연지 일주일 밖에 안됐는데도 '재미난가게'에는 '순천시 청소년을 응원하며 음료 5잔 맡깁니다', '어떻게 하든 어른은 되더라. 초조하지 말고 힘내시게' 등 응원의 글들이 넘쳐난다.
다정한 응원 게시판. 재미난가게 제공 재미난가게가 있는 건물 2층에는 '재미난제과점'이 있다. 학교밖청소년 창업공간인 '재미난제과점'은 당초 빵을 만들고 판매까지 했지만, 2층의 한계 때문에 빵을 팔기가 힘들었다. 때마침 1층 자리가 비어 아래층에 빵을 파는 카페를 만들고, 2층 재미난제과점은 제빵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재미난가게는 재미난제과점에서 만든 빵을 '100원'에 판매하기도 한다.
이 가게에선 현금이나 카드는 물론 자체적으로 만든 '이로운 티켓'을 사용한다. 티켓 1장은 만 원이지만, 12000원 상당의 빵과 음료를 구매하거나, 이웃들로부터 다양한 '일일 클래스'를 배울 수 있다. 수업 내용은 비폭력대화법, 연찬, 삶을 정리하는 인터뷰, 천연제품 만들기, 이로운 밥상 만들기 등 다양하다. 수업은 재능기부로 참여한 시민들이 자신만의 주특기를 살려 진행하며, 수익금은 가게 운영비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쓰일 예정이다.
이로운 이용권. 재미난가게 제공 재미난가게는 재미난협동조합과 디딤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공간이다. 조합원 중에는 순천시 퇴직 공무원도 있고, 지인 손에 이끌려 온 전업 주부도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다. 몰랐던 사람을 서로 알게 되고 관계로부터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낸다는 취지다. 조합원들은 연결을 확장하기 위해 이웃 식당에서도 '이로운 티켓'을 활용할 수 있도록 사용처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임경환 재미난협동조합 이사장은 "재미난가게의 목표는 화폐가 아니라 사람들의 품과 품을 교환하는 '타임뱅크 하우스'가 되려고 한다"며 "특히 순천 지역 청소년들의 쉼터이자 무언가를 도모하고 싶을 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퇴직 후 재미난가게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찾았다는 위영애 운영자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마법 같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공간, 수다를 떨면서 고민과 문제를 해결해주는 공간으로 이로움을 선사했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