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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르포]"놀고 앉았네"…죄 없는 자처럼 돌 던지는 당신들

    [이태원 참사 '진실버스' 동행기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1일 부산시민공원에서 인쇄물을 배포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가족들. 박희영 기자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1일 부산시민공원에서 인쇄물을 배포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가족들. 박희영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진실버스 오른 이태원 참사 유족들…전국 순례하며 독립조사 촉구
    ②"지금쯤 여행을 갔겠죠"…유가족은 왜 '진실버스'에 올랐나?
    ③[르포]"유가족도 모이면 가끔 웃어요"…연대·치유의 '분향소'
    ④[르포]"네가 살아야 자식 한 푼다"…단장지애 헤아린 '오월의 어머니'들
    ⑤[르포]"놀고 앉았네"…죄 없는 자처럼 돌 던지는 당신들

    "난 피케팅 태어나서 처음 하는 거예요. 진실버스 타면서. 처음에는 안 받고 그냥 가면 화도 나고 그랬는데 하루 지나니까 (화도 안 나요). 전에는 나도 그랬는데 뭘 탓하겠어요. 내가 이렇게 안 하면 누가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계속해야죠. 나중에 지민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려면…"

    벚꽃비 내리던 날, 지민 아빠는 풀숲 뒤로 숨었다. 연둣빛 나뭇잎이 봄바람에 살랑이고 남강을 흐르는 물결에 햇빛이 반사돼 반짝였다. 전국 순회에 나선 지 7일째 되던 지난 2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태운 진실버스는 경남 진주 남강변에 도착했다. 이 곳은 오후 3시 무렵 화창한 봄날을 즐기러 온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붐비고 있었다.

    지민 아빠는 봄나들이를 즐기러 남강변을 찾은 시민들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가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 10문 10답'이 적힌 인쇄물을 내밀었다. 받아주는 시민도 많았지만, 한 50대 후반 남성이 "됐어"라며 뿌리쳤다. 재차 용기를 내 한 20대 남성에게 다가갔지만 "놀고 앉았네"라고 툭 내뱉은 그의 말이 지민 아빠의 가슴을 찔렀다. 인천·청주·전주·광주·창원·부산 등 6개 도시를 거치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간담회에서도 발언자로 나서며 어느새 '단단해졌다'는 칭찬 아닌 칭찬까지 받던 지민 아빠였지만, 일부 시민들의 가시 돋친 반응에는 여전히 속수무책이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2일 경남 진주 남강변에서 시민들에게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인쇄물을 건네다 시민들의 '독설'에 풀숲으로 숨은 지민 아빠. 박희영 기자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2일 경남 진주 남강변에서 시민들에게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인쇄물을 건네다 시민들의 '독설'에 풀숲으로 숨은 지민 아빠. 박희영 기자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산하 엄마도 전날인 지난 1일, 부산시민공원 앞에서 서명운동하다가 한바탕 소란을 겪고 위경련이 오는 바람에 이날은 오후 일정부터 참여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왔던 한 중년 여성이 유가족을 향해 "이태원 그만해라, 이게 나라냐"며 경찰의 만류에도 고래고래 악을 써댔기 때문이다. 산하 엄마는 "길이 갈라진 것도 아니고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길 가다 죽어 이렇게 억울한데 왜 나한테 손가락질하냐고"고 울부짖다 주저앉았다.

    이 광경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한 80대 여성은 괜스레 눈시울을 붉혔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말을 걸자, 경북의 한 시골마을에서 친구를 만나러 부산시민공원을 찾았다고 한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1일 부산시민공원에서 서명운동을 하다 행인의 폭언에 울부짖는 산하 엄마. 박희영 기자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1일 부산시민공원에서 서명운동을 하다 행인의 폭언에 울부짖는 산하 엄마. 박희영 기자
    "자기가 안 당해보니께 그러는 거잖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래도 '마, 이래 와가지고 욕본다'고 그렇게 말해야지. 어느 당(黨)이든 간에 당을 떠나서 얼마나 안타깝노. 아까운 생명들을 그래가지고…"

    유가족이 내미는 인쇄물을 거절하고 지나가던 부산시민 이모(67)씨는 "자기네들이 놀러 가서 (사망) 했는데 무슨 정부 탓하느냐"며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갔는데 참사라고 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부산시민공원도 진주 남강변처럼 주말을 맞아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봄나들이 나온 20~30대 청년이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이들은 유가족이 건네는 인쇄물을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서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이들은 적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2일 경남 진주 남강변에서 시민에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인쇄물을 건네는 지민 아빠. 박희영 기자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2일 경남 진주 남강변에서 시민에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인쇄물을 건네는 지민 아빠. 박희영 기자
    연인과 함께 공원을 찾은 20대 여성 최모씨는 유가족이 건네는 인쇄물을 받았지만 서명하지 않았다. 최씨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 깊이 인지하지 못해서 의사 결정하기가 힘들다"고 서명을 거부한 이유를 답했다.

    친구들과 돗자리를 깔고 앉아 봄나들이를 즐기던 20대 남성 한모씨는 "군대에 있을 때 이태원 참사를 봤는데 핼러윈 때 사람들끼리 모여서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난 건데 책임지라고 비난할 곳이 그냥 정부라는 생각이 든다"며 "진상규명 요구하는 거, 그쪽에서 사고 난 건 어쩔 수 없는 건데 정부 탓해버리면 정부 입장에서 좀 난처한 게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유가족이 요구하는) 진상규명 자체가 결국 '그때 대처를 왜 못 했는가?' 그리고 '준비를 왜 못 했는가?'인데. 인원은 한정적이고 경찰도 힘들어하고 서로 힘들어하는 상태에서 막 이렇게 인원 분할(인파 관리)까지 하라고 하면 솔직히 서로 난처한 상황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2일 경남 진주 경상대학교 앞에서 경상대 학생들이 유가족들의 서명운동을 직접 나서서 돕고 있다. 박희영 기자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2일 경남 진주 경상대학교 앞에서 경상대 학생들이 유가족들의 서명운동을 직접 나서서 돕고 있다. 박희영 기자
    다만 서명에는 참여하지 못하겠다던 한씨도 재발방지책 마련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고 답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죠. 만약 재발할 때 그때 대처 못 한다면 그거는 (정부)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일어난 일은 조심해야 하는데 조심 못 한 것은 솔직히 (정부) 잘못이니까요"
     
    따듯한 봄 날씨 아래 냉담한 시민들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유가족들을 따뜻하게 격려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진주의 경상대학교 앞에서 직접 인쇄물을 건네고 시민들을 설득하며 서명운동을 도운 경상대 경제학과 2학년 김우주(20)씨는 "저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태원 참사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유가족 말을 듣고 보니 내 일이 될 수 있고 (독립조사기구를 통한 진상 규명이)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하기 위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서명을 거절하는 진주시민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언론에서 ('놀러 가서 마약을 하다 죽었다'는 등)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다 보니까 진실은 찾아보려고 하지 않고 무작정 믿는 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서명운동에 선뜻 나서 돕게 된 계기에 대해 경상대 사회학과 4학년 이수민(27)씨는 "지금 대학생들은 청소년기에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고 성인이 돼 다시 겪은 게 이태원 참사"라며 "또래를 잃게 돼 마음이 아팠다"고 답했다.

    또 이씨는 "진주에서는 많은 분이 (이태원 참사) 이걸 잘 모르시는 것 같다"며 "(이태원 참사는) 밝혀진 게 없고 유가족들이 계속 싸우고 계신다는 걸 (주변에) 알려야겠다"고 말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1일 부산시민공원에서 인쇄물을 배포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가족들. 박희영 기자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진실버스' 일정 중, 지난 1일 부산시민공원에서 인쇄물을 배포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가족들. 박희영 기자
    부산시민공원에서 만났던 박선미(25)씨도 "압사가 일어나기 전부터 (참사 현장) 그쪽에 있는 사람들이 신고를 아무리 해도 경찰이 오지 않았던 걸로 안다"며 "사람들이 많이 몰렸는데 (인파) 관리를 못 한 (정부) 잘못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옆에 있던 조성현(27)씨도 "왜곡된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서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친구와 공원을 찾았던 정은화(21)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비난하는 주장 중에) 해외에서 열리는 핼러윈 축제인데 그런데 가서 사고당한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많으신데 그렇게 치면 크리스마스 때도 (놀러 갔다가 사고당하면 비난받아야 하나)"라며 "솔직히 왜 그렇게 안 좋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사고인데 너무 안타깝게 생각해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유가족들은 본인들에게 씌워진 '반정부 세력'이란 '프레임'에 가장 분노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다.

    창원과 부산·진주를 오가며 3일간 진실버스에 올랐던 부산시민 산하 엄마는 "(자녀가 도심 한복판에서 압사 사고로 죽어서) 억울한 시민을 왜 반정부 세력으로 만드나"라며 "정부에서 손잡아줬다면 (유가족 지원하는) 시민대책회의 이런 거 생길 필요도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서울에서부터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 중인 유진 아빠도 "우리(유가족)는 한 번도 '(윤석열 대통령) 퇴진이 추모다'라는 구호를 말한 적이 없다"며 "야3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입법을 촉구할 예정이기 때문에 정쟁에 휘말리기보다는 입법 촉구 활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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