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노동자 감원이 추진되는 가운데, 감원에 반대하는 입주민 모임과 '대전 아파트 경비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이 19일 오후 해당 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정남 기자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고용과 노동환경이 공론화됐지만 '상생'과 '효율성' 사이에서 여전히 위태롭게 일하는 경비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최근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비원 절반 이상을 감원하기로 하면서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는 지난달 경비노동자 감원 결정을 내렸다. 두 달 뒤인 10월까지 56명의 경비노동자를 26명으로, 30명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입주민 투표를 통해 80% 이상이 경비노동자 감원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일부 주민들이 감원이 타당한지와 함께 절차적 문제를 제기한 상태다.
경비원 감원 여부를 주민들에게 직접 물은 것이 아닌, 40페이지에 달하는 관리규약 개정안 안에 경비원 감원 내용이 정확히 명시되지 않은 채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 이들 주민들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주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투표 결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한 입주민 모임과 대전지역 15개 단체와 진보정당이 모인 '대전 아파트 경비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은 19일 오후 해당 아파트 앞에서 경비노동자 감원 여부에 대한 투표를 다시 진행해달라는 주민 서명 결과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체들에 따르면, 일주일 만에 해당 아파트 주민의 4분의 1 정도가 서명에 참여했다. 해당 아파트의 공동주택관리규약과 대전시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상 전체 입주자의 10분의 1 이상의 제안이 있을 경우 규약 개정을 위한 투표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돼있다고 했다.
해당 아파트 주민 선광수씨는 "지난해 12월에는 4명 감축하는 것조차 부결이 됐었는데 불과 7개월 만에 이번에는 관리규약 안에 슬쩍 집어넣는 방식으로 꼼수까지 쓰면서 왜 이렇게 집요하고 무리하게 경비원 감원을 추진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장소 앞을 지나던 한 입주민 역시 "경비원을 줄이는 투표인지 모르고 찬성을 했었다"고 황당해하며 "이번 주민 서명에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경비노동자 입장에서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경비노동자 감원이 주민들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 결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비노동자 감원에 따른 입주민 안전사고와 환경관리 및 방범보안 부실, 두세 배로 강화된 노동 강도에 따른 경비노동자 산업재해 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전 아파트 경비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은 분석 결과 대전지역 300세대 이상 아파트 344곳에서 일하던 경비노동자 수가 지난해 6월 3100여 명에서, 1년 새 300명 정도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업단의 심유리 단장은 "경비노동자 감원 문제는 이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귀 기울여 듣고 세심히 들여다봐야 할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관리비 절감 측면만 본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경비노동자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며 입주민들이 서명운동에 나서주셨고 비용 감축을 위해 경비노동자에게 과도한 업무량을 강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여기저기서 이뤄지는 경비원 감원에도 경종을 울려주셨다"고 말했다.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1~3개월 단위의 초단기 계약 실태 등이 알려지면서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효율성' 등과 부딪치고 있다. 최근 서울과 부산 등지의 아파트 단지에서도 대규모 경비노동자 인원 감축이 추진됐고 반발이 일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도적 뒷받침과 지자체·기관의 실질적인 역할도 강조된다. 심유리 단장은 "대전 서구청과 대전시 등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며 "잠들어있는 현 경비노동자 지원 조례를 깨워 경비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대전고용노동청 역시 경비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노동권 보호를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해당 아파트 경비원들은 탄원서를 통해 "56명 중에 절반이 넘는 30명 감원 명단에 누가 들어갈지 서로 불안해하고 있고, 남겨지더라도 2배 이상의 업무량을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해내지 못하면 감당해야 할 압박에 숨이 턱턱 막혀온다"며 "최근 높은 물가와 팍팍한 생활로 입주민분들께서도 경제적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감원 결정을 재고해 달라. 더욱 마음을 내어 성실히 일하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