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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와 카밀라 그리고 다이애나…새 英왕실의 역사



유럽/러시아

    찰스와 카밀라 그리고 다이애나…새 英왕실의 역사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찰스 3세 즉위…부인 카밀라 왕비
    국민 사랑받은 다이애나 이혼 후 사망…찰스 '불륜' 도마
    1993년 은밀한 대화 녹취록 공개…매일 장미꽃 선물도
    "카밀라, 엄격한 왕실의 의무와 교육에서 찰스의 탈출구"
    비판 앞장선 타블로이드도 칭찬으로 바뀌어…여론은 '글쎄'

    찰스 3세. 연합뉴스찰스 3세.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별세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면서 아들 찰스 3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의 두 번째 부인 카밀라는 왕비가 됐다.
     
    하지만,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다이애나비가 자동차 사고로 숨졌을 당시, 카밀라는 영국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여성이자 찰스 3세와 결혼조차 할 수 없을 것이란 분위기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75세가 된 카밀라 왕비는 여전히 찰스 3세 왕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다이애나와 비교 대상이다.
     
    찰스와 다이애나는 1992년 별거를 시작해 1996년 이혼했다. 다이애나는 카밀라가 결혼을 망쳤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찰스와 카밀라는 2005년 결혼했다. 여전히 일부는 못마땅해했지만, 이때부터 카밀라는 공식 왕실 가족의 핵심으로 인정받았다.
     
    찰스 3세 부부. 연합뉴스찰스 3세 부부. 연합뉴스
    카밀라는 1993년 공개된 찰스와의 통화에서 "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받겠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위에 오른 지 70주년이 된 지난 2월 "진심으로 바란 일"이라며 카밀라에게 '왕비 칭호'를 내렸다. 이로써 오랫동안 계속된 카밀라의 지위에 대한 의심이 사라졌다.
     
    찰스는 당시 "우리는 함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 노력해왔다"면서 "사랑하는 아내는 항상 내 지지자였다"고 말했다.
     
    카밀라는 1947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육군 소령이자 귀족과 결혼한 와인 상인이었다. 그는 영지에서 자랐고 스위스와 프랑스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런던에서 공부했다.
     
    그는 사교계에 활동했고, 1970년대 초 폴로 경기장에서 찰스를 만났다. 찰스는 당시 결혼을 생각했지만, 동시에 인생의 중대한 단계인 결혼을 하기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가 해군에 복무하는 동안 카밀라는 기병대에서 근무하던 앤드류 파커 볼스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두 자녀를 낳았고, 1995년 이혼했다.
     
    찰스는 1981년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20살의 다이애나와 결혼했다. 윌리엄과 해리를 낳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몇 년 뒤 틀어졌다. 그리고 찰스는 카밀라와의 로맨스에 불을 붙였다.
     
    영국 왕위에 오른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전 부인인 故 다이애나가 함께 찍은 사진. 연합뉴스영국 왕위에 오른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전 부인인 故 다이애나가 함께 찍은 사진. 연합뉴스
    두 사람의 깊은 관계가 밝혀진 것은 1993년이다. 찰스와 카밀라의 비밀 대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다. 찰스가 카밀라의 바지 속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은밀한 대화가 언론에 폭로됐다.
     
    이듬해 찰스는 TV인터뷰에서 다이애나와 결혼한 지 6년도 채 되기 전부터 불륜을 시작했다고 인정했지만, 결혼 생활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이후였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카밀라를 '로트와일러'라고 부르며 이별의 책임을 돌렸다. 다이애나는 1995년 TV인터뷰에서 "세 사람이 결혼한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은 다이애나에 보낸 편지에서 "찰스는 카밀라와 함께하기 위해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리는 바보"라며 "제정신인 사람이 당신을 떠나 카밀라에게 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찰스와 가까운 사람들은 카밀라가 그 누구도 해주지 못한 것을 찰스에게 줬다고 설명했다. 카밀라가 엄격한 왕실의 의무와 교육에서 찰스를 탈출시켰다는 것이다. 찰스는 다이애나와 이혼한 이후, 다이아몬드 반지와 말을 건넸고 매일 붉은 장미 다발을 보냈다.
     
    다이애나비. 연합뉴스다이애나비. 연합뉴스
    다이애나의 사망 이후 왕실은 수년 동안 불륜에 대한 기사로 타격을 입은 명성을 재건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또 카밀라가 더 대중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작업을 시작했다.
     
    찰스와 카밀라는 1999년 런던 리츠 호텔에서 열린 카밀라의 동생 생일에 함께 참석하면서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섰다. 이후 2005년 결혼했다.
     
    카밀라는 2013년 의회 개원식에 왕비 왕관을 쓰고 찰스와 함께 갔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 공 옆에 앉았다.
     
    한때 매우 비판적이었던 타블로이드 언론들도 이제는 카밀라를 아낌없이 칭찬한다. 데일리메일은 지난 2월 "다이애나 이후 콘웰 공작부인(카밀라)이 쉬운 자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지만, 조용한 위엄과 편안한 농담, 눈에 띄는 연민으로 도전을 이겨냈다"면서 "카밀라는 한마디로 찰스의 든든한 지원자"라고 전했다.
     
    하지만 카밀라는 대중의 사랑을 완전히 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 조사기관 유고브(YouGov)의 5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20%는 카밀라가 왕비가 돼야 한다고 답한 반면, 39%는 (찰스) 왕자의 부인이라는 칭호를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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