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한 정진석 국회 부의장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 부의장은 비대위원장을 맡기로 했다고 밝히며 "당을 하루속히 안정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이 새 비상대책위원장 인선을 두고 혼란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은 정진석 국회부의장이었다.
당초 비대위 출범의 배경으로 이준석 전 대표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간 헤게모니 다툼이 지목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새 비대위는 원인 해결의 의지 빈약과 함께 출발한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당의 대표 얼굴이 '대체' 혹은 '도로' 윤핵관이 되면서 윤핵관 2선 후퇴의 의미도 퇴색했다.
국민의힘은 7일 오후 의원총회를 통해 새 비대위원장으로 정 부의장을 추인했다. 정 부의장 본인의 거듭된 고사에도 불구하고 "당 원내대표를 역임했고, 의원들 신임을 받아 국회부의장도 하는데
당이 가장 어려울 때 도와야 한다. 책임을 져야 된다"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설득이 이같은 결론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정 부의장은 비대위원장 하마평 초기부터 입길에 오른 인물 중 하나지만, 국회 부의장이라는 직책의 무게와 본인의 당 대표 출마 계획 때문에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쳐졌었다. 게다가 정 부의장은 이 전 대표의 우크라이나 출국 등을 두고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인 '국민의힘 비상상황'의 플레이어라는 점에서,
비등점에 이른 당과 이 전 대표 간 갈등을 풀어내기엔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정 부의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입문 초반부터 지지를 공식화하면서 '윤핵관' 타이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우려 지점이다.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다선 의원 중에서 '굳이' 정 부의장을 지목한 배경을 두고 또 다시 '윤심(尹心)에 따른 결론'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애초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 내정설을 비롯해 비대위원장 논의 과정에서 "
'위원장은 반드시 윤 대통령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해야 한다'는 의지만 제대로 확인했다(국민의힘 관계자)"는 것이다. 실제로 새 비대위가 주호영 비대위원장 때처럼 이 전 대표의 가처분으로 언제 활동이 정지될 지 모르기 때문에
위원장 구인난이 심각했지만, 정작 당내 다선 의원 대부분은 정치 경력이 풍부함에도 권 원내대표의 러브콜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다선 의원은 "요청이 와도 고민을 했겠지만, 중진그룹에서 권 원내대표 퇴진 필요성 등을 주장해서 그런지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며 "
다선 중에 '확실한 친윤계'는 정 부의장밖에 없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다선 의원은 "
윤핵관 혹은 친윤으로만 위원장을 세우려니까 구인난인 것"이라며 "통합의 리더십을 하겠다는 시도라도 해야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당을 장악하려고만 하면 국민들이 어떻게 볼 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진석 부의장실을 방문한 뒤 의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 부의장실을 나온 권 원내대표는 정 부의장의 비대위원장 수락 관련 질문에 "의원님들께 먼저 보고드린 후에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윤창원 기자상황이 이렇다보니, 권 원내대표가 당 안팎의 사퇴 압박을 버티며 당내 유일한 법적 지위를 지킨 이유도 친윤계 위원장을 당 최고 자리에 앉히는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는 웃지 못할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 원내대표 본인이 굉장히 힘들어 하면서도 버틴 결과가 '도로 윤핵관'이냐"며 "
전면에 나설 대체 윤핵관을 구하고 2선 후퇴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조경태 의원은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
이게 무늬만 2선 후퇴지, 내부적으로는 또 그걸(윤핵관 중심 당 운영) 오히려 더 강화시키려고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많이 있다"고 비판했다.
정 부의장 입장에서는 본인의 표현대로 위원장 직이 '독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여야를 아울러야 하는 국회 부의장 자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부의장 사퇴 주장이 고개를 들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정 부의장의 고난은 곧 국민의힘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전 대표 측이 법원에 당헌 개정을 위한 전국위 개최를 금지해 달라며 낸 가처분 심문기일이 오는 14일이다.
이 전 대표는 새 비대위를 겨냥해 추가 가처분 신청을 검토 중이라, 정 부의장은 직무가 정지된 전임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국민의힘은 비대위가 연달아 좌초되는, 다음 카드를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법원의 결정이 정진석 비대위의 첫 관문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SNS 캡처한편
이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문장이 담긴 개 사진을 공유했다. 주호영 비대위원장이 자신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으로 직무가 정지됐음에도, 국민의힘이 또다시 새 비대위원장을 선출하는 것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