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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 노인도 불행한 '인구 디스토피아'



사회 일반

    청년도 노인도 불행한 '인구 디스토피아'

    [인구위기와 공존①]

    청년과 노인이 극명하게 갈린
    10여년 후 대한민국의 자화상

    월급날도 우울한 5년차 직장인
    부모세대 부양에 홀쭉해진 통장

    마트 문닫아 끼니 걱정인 노인
    텅빈 마을에 가로등 불도 꺼져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 2035년 X월 XX일. 터벅터벅 무거운 걸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들 H씨를 어머니는 애써 반갑게 맞는다. 입사지원서를 수십통 넣고 어렵사리 중견기업에 입사한 아들이지만, 요즘 아들을 보면 마냥 안쓰럽다.
     
    H씨는 가볍게 눈인사만 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월급날이 며칠 전인데 벌써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세금에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준조세를 떼가니 월급날도 통장은 홀쭉하다. 당장은 힘들어도 미래가 나아진다면 그런 대로 버틸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뻔한 사실이 H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입사 5년 차이지만 딱히 모아둔 돈도 없고,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노후를 보장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연금 부담액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지만, 회사를 그만둔 후 자신의 몫이 남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부 안에서도 국민연금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들이 심상치 않게 나온다.
     
    태어나서 한번도 경기가 좋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나라 전체가 인구절벽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이다. 일할 젊은층이 감소하니 경기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H씨는 책상에 앉아 그동안 확인하지 않은 문자를 살펴본다. 계속 무시했던 '청년이익 수호당'의 당원 모집 문자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요즘 TV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신생정당이다. "노인들의 복지와 치료를 중단하라"는 과격한 구호가 꺼림칙해 외면했었지만, 청년들이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요양병원에 계신 어버지를 떠올리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감정이 복잡해진다. 가뜩이나 면회를 가면 '내가 죽어야 되는데…' 하면서 한숨짓는 아버지다.
     
    어머니가 살갑게 대해주는 것도 이제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어머니 역시 자식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청년층과 노인층으로 확연히 갈라졌다. H의 집안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으며 대화가 부쩍 줄었다.
     
    요즘은 예산 편성을 놓고도 시끄럽다. 병력을 뽑기 어려워지니 첨단 무기로 대체하느라 국방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첨단 무기로 무장하는 건 좋은데 노인 복지예산을 깎아야 한다는 주장도 스스럼없이 나온다.
     
    H씨는 생각한다. 젊을 때 열심히 부모 세대를 위해 세금을 내고 연금을 납부하다 보면, '가난한 노인'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자신이 늙었을 땐 지금같은 복지도 불가능해질 테니까.
     
    '젠장.'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인 두 마디와 함께 한숨을 내쉰다. 차라리 군대에 한번 더 갈까. 집안이 넉넉하지 않은 친구들은 많이들 직업 군인이 됐다.
     

    # 영남 지역 군 단위 마을에 사는 70대 Y씨. 집에서 200m 남짓한 곳에 있던 마트가 문을 닫으면서 요즘 들어 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읍내에 있는 규모가 더 큰 마트에서는 배달을 해주긴 하지만, 외딴 곳이라며 배달비를 곱절로 달라고 한다.
     
    혼자 살다보니 배달량이 많지 않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기초연금도 첫해 받던 것보다 15%나 줄었다. 식재료도 턱없이 올라 가끔은 굶는 게 마음 편할 때도 있다.
     
    오랜만에 온 손자를 통해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뭐가 뭔지 헷갈려서 통 이용할 수가 없다.
     
    가끔 찾아와 안부를 묻고 말벗이 됐던 공무원도 지난해부터 발길이 끊겼다. 군에서 공무원을 감축하면서 일을 그만뒀다는 걸 한참 후에 알게 됐다.
     
    Y씨는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이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 남은 음식을 나눌 사람도 없다. 주변에 빈집은 을씨년스럽고, 전구가 나가 켜지지 않은 가로등이 몇 달째 방치돼 있다.
     
    수십 년을 살던 동네지만 요즘처럼 낯설고 무섭게 느껴진 때가 없다.
     
    작년에는 주유소가 없어지더니 병원마저도 문을 닫을 형편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사라지고 젊은이들이 사라지더니 이제는 노인들마저 마을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고 있다.
     
    삶의 뿌리였던 동네가 사람없는 '유령 마을'처럼 변하는 과정을 Y씨는 홀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인구위기와 공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그려봤다. 일부 현상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한 일본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일부는 한국에서도 감지되는 현상이다. 인구 관련 서적들과 전문가 분석을 참고했고, 여기에 기자의 상상력을 더했다.
     
    꼭 이처럼 우리 미래가 암울하기만 할지, 이보다는 나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적에 가까운 극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이상 장밋빛 미래가 쉽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심각한 인구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심도 있게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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