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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훈 "나는 왜 안중근에 50년을 매달렸나?"



문화 일반

    [인터뷰]김훈 "나는 왜 안중근에 50년을 매달렸나?"

    안중근 신문조서에서 빛나는 청춘 봤다
    무직·포수·담배팔이…등대처럼 소설 이끌어
    '이토 가슴 겨눴다'…젊음이기에 거침없어
    흔들린 총구는 '인간 안중근'의 증거
    작업실에 사형 직전 안중근 사진 두고 있어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훈 (작가)
     
    소설 칼의 노래로 이순신 장군의 비애를 풀어냈던 소설가 김훈 선생이 이번에는 청년 안중근의 치열한 마지막을 녹여낸 소설, 하얼빈으로 돌아왔습니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이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나는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 일을 잊어보려고 애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변명하자면 게으름을 부린 게 아니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뭉개고 있었다.' 작가의 말입니다.
    청년 김훈의 꿈이었던 청년 안중근 소설은 결국 작가 나이 일흔다섯이 돼서 세상에 나왔습니다. 오늘 김훈 선생과 함께 이야기 직접 나눠보죠. 선생님, 어서 오세요.
     
    ◆ 김훈> 네, 안녕하세요. 김훈입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러니까 써보고 싶다라고 생각하신 이후로 얼마나 걸려서 나온 겁니까?
     
    ◆ 김훈> 한 50년 걸린 것 같아요. 이건 내 자랑이 아니고 내가 너무 엄두가 안 나고 무섭고 힘들고 차일피일하고 게으름 부리다가 50년이 지난 것이죠.
     
    ◇ 김현정> 아니, 대소설가…
     
    ◆ 김훈> 그걸 잊어버린 적은 없었어요.
     
    ◇ 김현정> 써야겠다, 써야겠다, 이 생각이…
     ◆ 김훈>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었죠. 내가 젊었을 때 안중근 신문 조서를 읽었거든요. 안중근이 붙잡힌 다음에 검찰관 앞에서 받은 조서, 형사 기록이죠. 그 안에 정말 기막힌 한 세상이 전개되고 있더군요. 거기서 충격을 받았고 그거로 내가 뭔가를 해 보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어요. 그것이 50년 후에 겨우 쓴 겁니다.
     
    ◇ 김현정>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는 게 내 고단한 청춘의 꿈이었다라고 할 정도로 50년을 한순간도 생각 안 했던 적이 없을 정도로 안중근의 소위 꽂히게 되신 이유는 뭐예요?
     
    ◆ 김훈> 그건 내가 고단한 청춘이라고 그랬잖아요.
     
    ◇ 김현정> 네, 고단한 청춘.
     
    ◆ 김훈> 고단한, 정말로 그때는 고달픈 청춘이었어요. 제가 1974년에 신문사에 입사했는데 1973년 무렵에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어요. 나의 신문기자 시절은 유신과 더불어 내 청춘이 시작된 것이죠. 그런데 그때 다 아시겠지만 그때 언론의 상황은 매우 그렇게 억압적이었어요.
     
    ◇ 김현정> 그렇죠.
     
    ◆ 김훈> 운신을 할 수가 없는 그런 시대였죠. 그리고 매일매일 이런 고단하고, 바쁘고 그 시절에 안중근의 조서를 보니까 야, 정말 빛나는 청춘이 있구나, 그런 억압과 맞서서 약육강식의 제국과 맞서서 싸우는 청년의 삶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죠. 그때의 감격은 정말 놀라웠어요.
     
    ◇ 김현정> 놀라울 정도. 내 청춘의 모습과 비교가 되면서 더 빛났어요?
     
    ◆ 김훈> 비교도 되고 이런 청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 김현정> 그게 뭔지 궁금해요. 그러니까 보면 이렇게 쓰셨어요. 안중근 의사는 포수이자 무직이고 또 함께 공모했던 우덕순 의사는 담배팔이였는데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가 소설을 쓰는 내내 등대 역할을 했다, 그러셨던 말입니다.
     
    ◆ 김훈> 그 단어가, 세 개의 글자가 멀리서 빛나는 등대처럼 나를 인도하더군요. 그런데 너 직업이 뭐냐 하고 물어보니까 나는 포수다, 진짜 사냥꾼이었거든요. 안중근은. 우덕순은 블라디보스톡 거리에서 담배를 팔던 사람이었어요. 담배팔이. 과장된 말이 아니죠. 이 말은 정말 청춘의 언어인 것이죠. 어떤 외부의 세력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정직한 모습을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분들은 신문 받는, 일관되게 신문 받는 내내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거예요. 거침없이.
     
    ◇ 김현정> 나는 무직이요, 나는 포수요, 나는 담배팔이요.
     
    ◆ 김훈> 나는 그런 독립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정당성을 끝까지 얘기를 하세요. 이런, 자기를 적나라하게 밝히는 그런 자세, 자기의 유리한 점을 절대 말 안 해요.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들이대는 거예요. 너는 어디를 겨누었느냐. 나는 가슴을 겨누었다 그래요.
     
    ◇ 김현정> 가슴을 겨누었다는 얘기는 바로 죽이려고 했다는 얘기고 재판에서 불리할 수도 있는데.
     
    ◆ 김훈> 결정적인 것이죠. 가슴을 겨누었다. 그러니까 우물우물하면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는 거예요. 우덕순이라는 분도 나 자유의지라고 한 것이다. 나는 안중근의 명령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로 한 것이다. 다만 같이 한 것이다 이러죠.
     
    ◇ 김현정> 나는 그냥 청춘이다.
     
    ◆ 김훈> 나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담배팔이다, 그런 거예요.
     
    ◇ 김현정> 그 두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자라고 그 결심까지도 너무 담백해요.
     
    ◆ 김훈> 그렇죠. 블라디보스톡 어느 거리에서 만나서 술집으로 가서 야, 이토가 온다는데 우리 죽이러 갈래? 그러는 거예요. 그래, 가자, 이렇게, 가자.
     
    ◇ 김현정> 이토가 온다는데 우리 죽이러 갈까, 그래, 가자.
     
    ◆ 김훈> 가자, 가자. 언제 가자. 며칠 있다가 가는 게 아니고 내일 가자, 내일. 다음 날 아침에 이 청년들이 블로디보스톡 역으로 가서.
     김훈 작가가 3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김훈 작가가 3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신작 '하얼빈' 출간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정> 진짜 가요.
     
    ◆ 김훈> 가서 열차표, 3등 열차표 타고 하얼빈으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는 정말 이 청춘들의 아름다운 순간이죠. 나는 이 블라디보스톡의 새벽을 늘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새벽에 열차를 타고 2박 3일인가 가야 되는데 그때 그 새벽을 생각하면 야, 참 이것은 빛나고 아름다운 시간이구나 새로운 시간이 인간의 생명으로 넘어들어오는 것 같은 환상을 느꼈어요.
     
    ◇ 김현정> 31살의 청춘. 청춘이니까. 우리가 볼 때는 사실 좀 무모할 수도 있는. 아니, 총을 쐈으면 어디로 도망갈지 경로도 생각하고 그다음에 지원은 어떻게 받을지 이거 하나도 없이.
     
    ◆ 김훈> 물어봐요. 검사가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총알이 한 발 남았어요, 거기에. 탄창에 7발 들어가는데.
     
    ◇ 김현정> 딱 7발 가져갔죠.
     
    ◆ 김훈> 6발 쐈는데 한 발 못 쏘고 잡힌 거죠. 너는 자살할 생각이었냐. 나는 자살할 생각이 아니다, 이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이토를 죽인 것만으로 내 사명을 다 한 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자살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요. 자기 유불리를 생각하지 않는, 이렇게 하면 내 형기가 늘어나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고 그냥 들이대는 거죠. 참 젊은이다운 거침없는 언어고 그것이 비록 형사적인 기록물이지만 거기에는 정말 문학작품을 능가하는 감동이 있더군요.
     
    ◇ 김현정> 저도 거기에서 울컥했어요. 그냥 가자, 갈래? 가자.. 그 뒤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 김훈> 그런 게 나중에 심문받는 과정에서도 드러나요.
     
    ◇ 김현정> 그렇죠.
     
    ◆ 김훈> 자기들은 이토를 쏜 대의명분, 이런 걸 논의하지 않았다는 거죠.
     
    ◇ 김현정>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낯선 인간 안중근의 모습이 소설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어떤 거냐면 예를 들어서 이런 대목이에요. 거사를 치르기 바로 전 날 밤, 총구를 쥔 자가 인간이기 때문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그것을 보면서 내가 과연 이걸 흔들리지 않고 잘 맞출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또 쏘고 나서도 환희가 아닌 혼란을 느껴요. 이건 뭘 그리고 싶으신 건가요.
     
    ◆ 김훈> 총구가 흔들린다는 것은 자기 몸이 살아있다는 증거거든요. 이게 총구를 고정시키는 건 진짜 불가능해요. 이게 항상 조금씩 미세하게 움직이는 거예요. 특히 권총은. 이게 조금씩 흔들리니까. 호흡에 따라서 흔들리고. 그런데 이게 흔들리면 안 맞잖아요. 자기의 몸으로 이토의 몸과 맞서야 되겠다는, 몸 대 몸의 대결이 그런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죠. 그리고 이토를 죽이는 대목도 자기는 이토를 쏴서 죽이겠다는 그 사명이 있었는데 보다 큰 사명은 자기가 말을 하는 거예요. 이토한테 내가 왜 널 죽여야 되는지를 알아듣게끔 말 해야 되는데 지금은 말해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 김현정> 죽여놓으면.
     
    ◆ 김훈> 저걸 어떻게 해야 되냐 하는 갈등을 묘사하려고 했죠. 그런 갈등은 나중에 재판과정에서 그걸 짐작할 수가 있어요. 이 거사의 클라이막스는 하얼빈 역의 타격이 아니고 재판 과정에서, 총에서 말로 전환하는 것이죠.
     
    ◇ 김현정> 또 굉장히 흥미로웠던 포인트는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의 어떤 내적인 이야기, 하얼빈으로 오는 여정, 이것도 큰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더라고요. 왜 거기에 더 주목하셨어요?
     
    ◆ 김훈> 거기 철도가 세 갈래가 나와요. 첫째는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으로 안중근, 우덕순이 타고 가는 노선이 있죠. 그와 같은 시간에 이토는 대련에서 그쪽으로 정복자의 위세를 과시하면서 하얼빈으로 오는 거예요.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간에 안중근 부인 김아려는 두 아이를 데리고 황해도에서 기차를 타고 자기 남편을 만나러 하얼빈으로 오는 거예요. 세 갈래가 하얼빈에서 모이는 것이죠. 그런데 이토라는 인물은 자기 조국 일본을 봉건에서 근대로 전환시킨 그런 거대한 사업을 추진한 엘리트 집단의 최선봉에 있던 사람이에요.
     
    ◇ 김현정> 엘리트 중에 엘리트죠.
     
    ◆ 김훈> 최선방에 있던.
     
    ◇ 김현정> 문명화, 근대화, 서구화를 이끈 사람.
     
    ◆ 김훈> 그가 설정한 문명개화는 결국은 약육강식과 같은 틀이었어요. 약육강식. 문명개화와 약육강식이 합치면 제국주의가 완성이 되는 것이고 그걸 실천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복잡한 운명을 가진 사람이에요. 문명 개화라는 대의와 약육강식이라는 야만성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는 거예요. 그것이 갖고 있는 야만성을 반성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죠. 두 사람의 운명은 결국 하얼빈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죠. 폭발한 거예요. 하얼빈에서. 그런데 그 하얼빈은 여기 그런 역사적인 운명과 상징성을 가진 비극의 정거장인 거예요, 거기가.
     
    ◇ 김현정> 그러니까 하얼빈이라는 제목. 저는 왜 하얼빈이라고 쓰셨을까. 안중근도 아니고 어떤 다른 추상적인 것도 아니고 왜 장소를 택하셨을까 했는데 하얼빈이라는 장소가 의미가 있는 거네요.
     
    ◆ 김훈> 그 제목은 아주 내가 정한 게 아니고 편집자가 정한 거예요.
     
    ◇ 김현정> 그렇습니까?
     
    ◆ 김훈> 내가 먼저 정한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어요.
     
    ◇ 김현정> 하얼빈에서 만나자.
     
    ◆ 김훈> 편집자가 만나자를 빼고 하얼빈으로 하자고 해서 나는 이게 좋다, 하얼빈이.
     
    ◇ 김현정> 그러셨어요.
     
    ◆ 김훈> 이 하얼빈이라는 제목은 굉장히 무정하고 불친절한 제목이에요. 그 무정한 언어에 비극성이 있는 거예요. 하얼빈은 지명의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는 것이죠. 아까 말한 세 갈래의 기차. 김아려가 우는 노선은 정말 슬프죠.
     
    ◇ 김현정> 아내가 우는, 남편 만나러 애 둘 데리고.
     
    ◆ 김훈> 그런데 안중근이 26일날 총을 쐈잖아요. 그런데 김아려는 27일날 하얼빈에 도착했어요. 자기 남편 만나려고 애를 데리고 갔는데 그 전날 남편이 그걸 저지른 거예요.
     
    ◇ 김현정> 약간 소름이 쫙 끼쳤어요. 그 세 갈래 기차가 마주치는 그곳이 하얼빈이자 말하자면 동양 평화를 얘기하는 안중근과 서구화, 문명화, 야만성을 상징하는 동양 패권을 이야기하는 이토의 충돌이기도 하고. 기차의 충돌이기도 하고, 운명의 충돌이기도 하고. 그런 안중근의 이야기. 영웅 안중근이 아니라 인간 안중근의 이야기를 그리신 거예요. 안중근 하면 어린시절부터 쭉 일대기, 전기, 이런 걸 생각하는데 굉장히 압축적으로 거사도 여러분, 이게 지금 보니까 300페이지짜리인데 한 세 페이지 그정도밖에 안 그리셨어요.
     
    ◆ 김훈> 그 총 쏘는 대목은, 나는 거기가 클라이막스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죽음을 임하는 태도, 그런 것들이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설화 속의 인물. 그런 설화 속에서는 총 쏘는 대목이 클라이막스가 되는 것이죠.
     사형 집행 전 (좌). 의거 직후 호송 전 안중근 의사 (우). 연합뉴스사형 집행 전 (좌). 의거 직후 호송 전 안중근 의사 (우). 연합뉴스◇ 김현정> 작가님 작업실에 가면 흰 명주옷을 입은 안중근 의사 사진이 놓여 있다고 제가 들었어요. 그런 사진 놓고 작업하시는 스타일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 김훈> 그게 안중근 의사 사진이 여러 점 남아 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사진은 사형집행 당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에요. 고향에서 온 두루마기하고 바지를 입고. 두루마기는 흰색이고 바지는 까만색이에요. 흑백의 대조가 선명하게 보여요. 죽음을 앞둔 사람인데. 마치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인간처럼 고향에서 어머니가 해 주신 건데 이거 입고 죽어라. 근데 그 표정을 보면 아주 편안해요. 자기가 할 일을 다하고 가는 사람의 그 편안한, 평화로운 표정이 있어요. 처음에 총 쏘고 나서 잡혔을 때 찍은 사진 있잖아요. 그걸 일본 헌병대에서 찍은 거죠.
     
    ◇ 김현정> 저희가 지금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 김훈> 그 사진은 불안해 하는 표정이고.
     
    ◇ 김현정> 혼란 이런 것들이 있는.
     
    ◆ 김훈> 저게 왜 불안할까 싶어서 생각을 했더니 이런 것 같아요. 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이게 도대체.
     
    ◇ 김현정> 내가 잘한 건가.
     
    ◆ 김훈> 잘 한건가, 제대로 맞았나 죽었나 살았나. 아니면 맞았는데 또 살아날 수도 있잖아요.
     
    ◇ 김현정> 그럴 수도 있으니까. 내가 죽을까봐의 불안은 아니고.
     
    ◆ 김훈> 그렇죠. 내가 잘 됐나.
     
    ◇ 김현정> 저 사람을 잘 죽였는가에 대한 불안함.
     
    ◆ 김훈> 잘 들어갔나.
     
    ◇ 김현정> 편안함은요?
     
    ◆ 김훈> 편안함은 이제 나 할일을 다 했구나. 할 말을 법정에서 다 했고. 총도 제대로 잘 맞췄고. 내가 내 할 말 다 했다는 그 편안함. 표정이 편안해요. 신부님하고도 화해를 했잖아요. 고해성사도 받고. 영적으로나 자기의 사업의 목표로 보나 이렇게 할 일을 다 한 분의 편안함이 있더라고요.
     
    ◇ 김현정> 어머니가 보내주신 옷인데 어머님도 대단한 분이죠.
     
    ◆ 김훈> 고향에서 왔다고 하는데 명주옷이에요. 보드랍고. 실크니까 편안하고 아늑하잖아요.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아주 편안한 옷이죠.
     
    ◇ 김현정> 이 작품을 머릿 속에 두신지, 가슴에 품으신 지 50년 만에 완성하고 나서, 김훈 선생님 오늘 표정도 편안하세요.
     
    ◆ 김훈> 그럴 리가 있나요.(웃음)
     
    ◇ 김현정> 그럴 리가 있나. 안 편안하세요?(웃음)
     
    ◆ 김훈> 너무 모자란 점이 많아서 좀…
     
    ◇ 김현정> 무슨 말씀을.(웃음)
     
    ◆ 김훈>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아니, 하고 나서 항상 좀 작품에 대해서 독자들은 그렇게 좋아하는데도 작가는 좀 부족함이 느껴집니까?
     
    ◆ 김훈> 빠뜨린 점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그걸 보완해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김현정> 어느 부분이 그렇게 아쉬우세요?
     
    ◆ 김훈> 부인 김아려 여사님이 소설 앞에 나타나 있지 않고 멀리 뒤에 처져 있어요. 잘 안 보여요.
     
    ◇ 김현정> 그게 아쉬우세요?
     
    ◆ 김훈> 그런 점이 아쉽고. 안중근의 족적을 따라가지 못했거든요. 금년 초에 한번 가보려고 했더니 내 건강에 자신이 없었고 또 코로나가 번져서 결국 못 갔어요. 준비를 다 했는데 결국 못 갔습니다. 결국 끝나고 나니까 한으로 남는 군요.
     
    ◇ 김현정> 그게 또 한으로 남는.
     
    ◆ 김훈> 가봤으면 좀 더 좋은 문장을 썼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 김현정> 이런 부분이 있어요. 작가의 말 중에 이 같은 토털 픽처. 큰 그림을 만드는 일은 글 쓰는 자의 즐거움일 테지만 즐거움은 잠깐 뿐이고 연필을 쥐고 책상에 앉으면 말을 듣지 않는 말을 부려서 목표를 향해 끌고 나가는 노동의 날들이 계속되지만 이런 수고로움을 길게 말하는 일은 너절하다 하면서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 김훈> 그걸 말을 하면.. 너절하죠.(웃음)
     
    ◇ 김현정> 죄송한 말씀인데 이제 막 책을 끝내신 분한테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죄송한데. 다음 작품, 또 그 고된 노동의 다음 작품도 구상하고 계십니까?
     
    ◆ 김훈> 나는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작품 하나를 끝내놓으면 다시는 안 하려고 해요. 다시는 안 하려고. 이제 그만해야지, 제발 그만 해야지, 그러고 있다가 몇 달 지나면 또 해요. 또 하게 돼요. 이번에도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또 하게 되면 뭘 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어요.(웃음)
     
    ◇ 김현정> 아직 모르시는, 이거는 50년 동안 마음에 품고 계셨던 건데 그런 비슷한 주제나 소재 같은 게 또 없으셨는지 혹시 모르겠습니다.
     
    ◆ 김훈> 그런 걸 다 말하면 영업 비밀에 속하는 것이고 이런 데에서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웃음)
     
    ◇ 김현정> 김훈 선생님, 또 이야기해 보면 굉장히 유머러스 하세요. 재미있으세요.
     
    ◆ 김훈> 심각하게 말하는 거예요.
     
    ◇ 김현정> 하얼빈으로 돌아왔습니다. 50년 만에 산고 끝에 낸 귀한 책. 오늘 작가의 귀한 설명을 직접 듣고 나니까 더 좋습니다. 인간 안중근, 영웅이 아닌 인간 안중근, 청춘 안중근을 만날 수 있는 시간, 뜻 깊었던 것 같고요. 김 선생님,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김훈>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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