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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이란 무엇인가?



미국/중남미

    워터게이트 사건이란 무엇인가?

    • 2005-06-01 09:21

    (Watergate Affair)

    닉슨 전 대통령,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끝내 물러났다.(ap=연합)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대선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 선거전에서 공화당은 기록적인 6,00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모아 선거 후에 4백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남겼다.

    이에 대한 의혹에서 시작하여 1973년에서 1974년에 걸쳐 모금된 자금출처와 사용된 근거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의혹이 증폭됨으로써 대통령의 첫 임기 시절까지 되짚으면서 엄청난 `백악관 공포들`이 속속 폭로되었다.

    1. 워터게이트 사건의 시작

    `백악관 공포들`이라는 말은 닉슨의 전 법률 사무소 동료이자 선거책임자였으며 미 법무장관을 지낸 존 미첼이 만든 것이다. 그는 이 스캔들로 인해 후에 기소되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란 말은 민주당 본부가 입주해 있던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72년 6월 17일 밤, 5명의 괴한들이 민주당 본부 사무실에서 체포되었는데, 그들은 전화도청 장치와 스파이용 카메라 시설장치를 갖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전 중앙정보부 요원이며 크맆 조직의 초고 보안 책임자인 제임스 맥코드 주니어로 판명되었다. 당시 크맆 조직의 의장이었던 미첼은 그의 조직이 그 절도행위와 관계된 사실을 극구 부인하였다.

    백악관 대변인은 그것을 `3류급 절도 미수`라 불렀다. 5일 후인 6월 22일 닉슨은 기자회견에서 `백악관은 그 일에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러한 백악관 측의 부인에 대해 민주당은 그 절도사건이 사소한 정치적 장난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여론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8월 워싱턴의 신문들이 닉슨의 선거비용 중 114,000달러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의 은행 구좌에 예치되었다는 것을 보도했음에도 국민들은 무관심했다. 그리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8월 29일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 사건에 대한 조사가 현재 고용된 백악관 직원이나 행정부 직원 중 그 어느 누구도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판명해 줄 것이라고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2주일이 지난 후 5명의 절도범들은 해직된 닉슨 캠페인 재정위원회 변호사 고던 리디와 전 백악관 고문이자 전 중앙정보부 비밀요원이었던 하워드 헌트와 함께 기소되었다.

    기소된 일곱 사람은 모두 묵비권을 행사했다.

    미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

    워터게이트 사건은 단순히 닉슨 대통령측의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어 체포된 사건이 아니라 미국 정치사와 헌정사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닉슨 정권의 선거 방해, 부정 등의 여러 가지 치부가 들어났으며 결국 대통령 탄핵이 소추되어 가결됨에 따라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 사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미국 정치사의 부끄러운 일로만 치부하여서는 안된다. 임기 도중에 대통령이 사임한 것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며, 미국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하지만 의회와 최고재판소에서 그 직책을 완수하여 민주주의의 정신이 지켜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이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이 대통령을 용서치 않고 저항과 압력을 가함으로써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여론도 정부의 숱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본분인 사실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킬 수가 있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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