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출장길에 오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설계 시장의 최강자인 영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ARM 인수전에 가세할까. 삼성전자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대형 M&A(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유럽 출장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10일 해외 IT(정보통신) 매체 등에 따르면 퀄컴과 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영국의 ARM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시도가 규제당국의 반대로 무산된 만큼 고객사로 꾸려진 컨소시엄이 새롭게 대안으로 부상했다.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우리는 투자에 관심이 있는 당사자"라며 "ARM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자 우리 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자산"이라고 말했다.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 퀄컴 제공.일본 소프트뱅크가 대주주인 ARM은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등이 개발·판매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반도체 설계 핵심 기술을 다수 보유한 기업이다. ARM이 설계자산(IP)을 전 세계 기업에 차별 없이 공급하면서 모바일 기기의 95%가 이 회사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2020년 9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ARM을 최대 400억달러(약 50조원)에 매각하려 했으나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각국 규제당국은 "경쟁 측면세서 심각한 우려가 있다"며 거래를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엔비디아는 올해 2월 ARM 인수를 포기했다. 엔비디아는 ARM 인수대금으로 자사 주식 215만주와 현금 120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해 인수금액은 한때 800억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지난 2016년 ARM을 320억달러에 인수했던 소프트뱅크는 매각 대신 ARM의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박정호 SK스퀘어·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SK스퀘어 제공.그럼에도 유력 반도체 기업들은 줄줄이 ARM 인수 의향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인텔의 팻 겔싱어 CEO는 가장 먼저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이 구성된다면 참여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고, SK하이닉스 박정호 부회장도 "전략적 투자자들과 함께 컨소시엄으로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방한해 삼성전자를 찾은 갤싱어 CEO가 이재용 부회장과 ARM 투자 방안을 논의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샘모바일은 "겔싱어 CEO는 퀄컴의 아몬보다 먼저 컨소시엄을 구성해 ARM을 인수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며 "거대 반도체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꾸리는 방안을 검토한다면 삼성전자는 이 논의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CRN도 "인텔의 겔싱어 CEO가 이 부회장을 만나 ARM 투자 등을 논의했다는 주장이 전혀 놀랍지 않으며 매우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는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인텔의 팻 겔싱어 CEO. 인텔 제공.삼성전자는 지난달 향후 5년간 총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고성능·저전력 AP 등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부문을 미래 먹거리로 콕 집어 지목했다. 삼성전자의 1분기 말 현금성 자산은 124조원에 달해 ARM 인수전에 뛰어들 실탄은 충분한 상태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진도 최근 M&A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종희 부회장(DX 부문장)은 지난달 31일 '1월에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었는데 M&A가 진행 중으로 보면 되느냐'는 질문에 "네, 그렇게 보면 된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7일 유럽 출장에 나선 이 부회장이 영국을 방문해 ARM 인수 의사를 전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오는 18일까지로 예정된 이번 출장에서 공개된 행선지는 네덜란드가 유일한 터라 이 부회장의 행보를 두고 다양한 해석과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부문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로 공격적인 투자가 필수적인 상황"이라며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꾸려 ARM 인수에 나선다면 삼성전자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