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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나오며 다시 찾은 건 마약"…'출소뽕'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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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구치소 나오며 다시 찾은 건 마약"…'출소뽕' 막아라

    마약사범이 들려주는 현실…'출소뽕' 막을 치료·보호 시설 태부족

    마약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재범률이 높은 편입니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1만 6153명으로 집계됐는데, 이중 이전 동종 입건 전력이 있는 경우가 5916명(36.6%)에 달했습니다. 이 같은 현실은 이른바 '출소뽕'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교정시설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마약사범들의 연령이 어려지고, 마약 유통 또한 온라인을 통해 쉽게 번져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병원과 같은 치료 시스템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입니다. 한때 잘못된 선택을 후회 중인 마약사범들은 '악마'의 손길로부터 자력으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며,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털어놨습니다.

    지난달 구치소 출소 당일 '필로폰' 재투약…20대 남성, 검찰 송치
    "절대 혼자선 조절할 수 없는 것"…"판매책 활동하면 경제적 기득권 못 내려놔"
    치료시스템 열악…전문 치료병원 21곳이지만 실질 운영은 2곳, 예산은 4억원 불과
    국가 주도 재활·회복 센터 구축에도 힘써야…민간 약물중독재활센터 운영 어려운 실정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이상한 아주머니가 자꾸 차 문을 잡고 흔든다. 조수석 뒷문을 열려고 한다"

    지난달 21일 인천 남동구 남동대로 일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20대 남성 A씨를 발견했다. 술에 취한 것은 아니지만 환각상태에 빠져있었다. 당시 A씨는 긴머리에 화장하고 본인을 여성으로 지칭했다. 팔에는 주사 자국이 여럿 있었다. 그는 전날 구치소에서 나온 자였다.

    "출소한 날 밤 다시 필로폰을 투약했습니다"

    지난달 20일 A씨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복역 후 출소한 상태였다. 구치소 복역을 마치고 나온 그날 밤, 그는 모텔에서 마약류의 하나인 '필로폰'을 투약했다. 동반 투약자도 있었다. 결국 A씨는 재구속돼 지난달 25일 검찰에 넘겨졌다.

    A씨와 같은 '회전문 재구속' 사례처럼 마약에 한 번 손을 대면 벗어나기 힘들다. 전문가들과 사약사범들은 "'출소뽕'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마약 사범의 재범률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속절없이 번지는 마약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마약사범의 검거만큼 치료와 재활이 중요하단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그 악순환의 굴레를 끊기 위한 치료 시스템이나 관련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마약 중독자들을 꾸준하게 치료해 사회로 돌려보낼 수 있는 재활·회복 시설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절할 수 있을 줄 알았다"…마약 사범 재범률 3명 중 1명 꼴

    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1만6153명(대검찰청 집계)이다. 이중 이전에도 마약범죄로 입건된 적 있는 이들은 36.6%(5916명)로 3명 중 1명 꼴로 수사기관에 덜미가 잡히고도 마약을 끊지 못했다.

    취재진이 만난 마약류 중독 경험자들은 약물로부터 자력으로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경험담을 들어봤다.

    "한 번 맛본 이후로 계속 여기 기억 세포에 남아서 계속 저를 괴롭혀요. 그냥 슬픈 일이 있거나 기쁜 일, 짜증 나는 일이 있거나 항상 약 생각이 그때마다 침투해요"

    필로폰 투약사범이던 20대 B씨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호기심에 약물에 손을 댔다. 약을 구하기 위해 해외 밀수도 시도했다. 결국 대만에서 적발돼 40일 징역까지 살았다. 마약에 사로잡혀 있었던 기간은 5년. 20대의 절반을 마약으로 허비했다.

    "취미 정도라고 여겼어요. '한 번 하고 두 달 석 달, 간헐적으로 조절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B씨는 마약을 '갈망'이라고 표현했다.

    현행법은 마약류를 마약과 향정신성의약품(항정), 대마 세 종류로 나눈다. 마약은 화학적으로 제조할 수 없는 헤로인, 모르핀 등을, 항정은 화학 제조가 가능한 필로폰과 프로포폴 등을 포함한다. B씨가 투약했던 '필로폰'은 중독성이 매우 강한 약물에 속한다.

    "병원에 있는 순간 빼고는 계속했던 것 같아요. 그냥 수십 수백 번 참지 않고"


    C씨는 마약에 중독된 1년 반 동안 병원에 입원했던 7개월을 제외하곤 약에서 깨어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약기운이 떨어져 조현증과 같은 중독증상이 발현되면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고, 깨선 다시 약을 찾는 생활을 반복했다.

    경기도 남양주의 약물중독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 임민정 기자경기도 남양주의 약물중독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 임민정 기자
    "일상생활과 마약을 동시에 병행할 수 있을 거란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죠" C씨는 약 기운에 경찰에 자수를 했고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의 약물중독재활센터 '경기도 다르크'에서 생활하고 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처음 마약을 접한 D씨는 한국으로 넘어와 본격 판매책으로 활동했다. 그는 마약 판매로 얻는 경제적 기득권을 내려놓기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가격은 평균 1g에 70만원 정도 하는데 금요일, 토요일은 상담 문자가 50개, 100개씩 와요. 텔레그램을 한 계정만 파는 게 아니고 5개 정도 열어놓고 광고를 계속하는 거죠. 당시 목표는 단골 5명~10명만 만들자. 그럼 고정 수입만 한 달에 월 1500 정도 나와요"

    마약을 시작한 지 4년 반쯤 지났을까. D씨는 옆집 소리인 줄만 알았던 말소리가 '환청'이란 걸 깨닫고 '중독'을 인지했다. 그러고도 1년 반이 더 지나 6년째가 됐을 때 약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콜학과 교수는 "마약사범들이 교도소에서 죽어도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출소해도 판매자 측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이 와 공짜 마약을 준다고 유혹한다"며 "집행유예나 징역을 받고 석방된 후에도 지속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D씨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구치소 4개월을 살고 나오니 알게 된 상선(딜러) 번호만 50개가 넘었어요. 그리고 그중에서 제 번호를 넘겨준 4명에게서 그대로 연락이 왔죠" 마약 근절을 위해선 마약사범의 적발과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더 이상 자력에 의해 중독에서 벗어나길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구조다.

    전문치료병원은 '태부족'…재활·회복 센터까지 예산 못미처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그러나 '중독의 고리'를 끊어줄 치료시스템은 열악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실이 보건복지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마약류 중독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해줄 전문 치료병원은 전국에 21개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지난해 164명을 치료한 인천참사랑병원과 107명의 환자가 거쳐 간 국립부곡병원 두 곳뿐이었다.

    서울특별시립은평병원을 포함해 6개 병원은 치료실적이 있다고 했지만, 1년간 1~2명의 환자를 치료한 게 고작이었다. 마약류중독자 치료보호병원 13개 시설은 마약류 중독자를 치료하지 않았다. 지난 3년간 단 한 번이라도 치료를 진행한 병원은 21개 시설 중 11개에 불과했다.

    또한 지난해 치료보호기관에서 치료받은 환자는 280명으로 2019년 175명, 2020년 250명보다 조금 늘어났다. 그러나 지난해 집계된 마약류사범이 1만 6천여 명이고 암수 범죄까지 고려하면 그 수가 10배는 족히 넘는다고 보는 현실에 비춰보면 극히 적은 수치다.

    21개 마약 중독 전문 치료 병원에 투여되는 예산은 고작 4억 1600만 원이다. 지난해엔 2억 6천만원, 2019년과 2020년엔 각각 1억 7천만 원, 2억 5천만 원이 투입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마약 중독은 강력범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다수 있는만큼 범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치료와 재활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이범진 연구소장은 "마약 후 환각 상태에서 사고를 내 타인이 죽거나 다치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며 "마약류 사범 단속에 그치지 않고 재범률을 낮출 수 있는 치료 혹은 사회 복귀를 돕는 정책과 예산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서울 구로구 길거리에서 일면식이 없던 60대 남성을 무차별 폭행, 숨지게 해 충격을 줬던 사건의 범인도 범행 당시 필로폰에 취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사회적 비용 중에 치명적인 범죄 행위도 물론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마약중독을 일종의 '만성질환'으로 여기고 재활과 회복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박진실 마약 전문 변호사는 "마약류 중독자를 위한 국가 주도의 회복센터가 거의 없다"며 "마약퇴치운동본부에 재활 센터가 있지만 중독자가 찾아가 상담받는 정도다. 전문적으로 치료해주는 기관은 병원뿐이지만 이조차도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기관에서 적극적으로 재활·센터를 만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민간에 위탁하고 지원이라도 해야 하는데 현재는 (센터들이) 개별 민간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며 "대기업도 도박·알코올 중독은 후원해도 마약 중독에 대해 후원을 하는 건 꺼린다. 인식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답했다.

    약물중독재활센터를 운영하는 '경기도 다르크' 임상헌 센터장은 "식약처를 통해 마약퇴치본부에 연간 33억 원의 국가재정이 나오는데 그 돈으론 마약 예방과 홍보, 조건부 기소유예 교육만 하는데도 벅차다"며 "이런 센터까지 예산이 내려오기란 어렵다"고 털어놨다.

    센터에서 재활을 하고 있는 E씨는 "단순히 약을 끊는 단약(斷藥)이 아닌 내 삶이 더 이상 약을 추구하지 않도록 하는 태도와 관점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회복'이 돼야 약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약 중독 경험을 털어놓은 인물들 중 C씨는 혹여라도 약물에 손대려 하는 이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경고하고 싶어요. 약물로 쾌락과 도취감을 느끼고 행복한 건 거짓과 환상일뿐 마약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요. 마약의 본 모습은 정말로 무기력하고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 가족 금전 명예 건강 등 다 잃고 주저앉아서 다시 일어날 힘조차 없는 것이라고. 그 누구도 좋게 봐주지 않고 환자인데 아프다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그런 일련의 최악의 상황들이 그게 본마약의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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