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 온정면의 한 야산에서 산불이 이어지고 있지만 차량들이 위태롭게 이곳을 지나고 있다. 문석준 기자"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입니다"
5일 오후 경북 울진군 온정면의 한 야산.
2차선 도로 옆으로 수십 그루의 나무가 불타고 있었다. 불기둥 높이는 얼핏 보기에도 10m는 넘을 정도로 맹렬했다.
이곳 옆으로는 수백 미터 길이의 불 띠가 산에 깔린 나뭇잎을 태우며 계속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는 차량들은 혹시라도 화마로부터 해를 입지는 않을지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조금 더 올라가자 5~6대의 소방차가 주택과 공장 건물 등에 물을 뿌리며 불을 진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7번 국도를 타고 북면에 있는 한울원자력본부 인근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동해의 절경을 볼 수 있는 7번 국도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도로 인근 야산 곳곳에서는 불씨가 타오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표지판을 비롯한 교통시설은 모두 불에 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산불로 인해 불에 타버린 교통시설물 모습. 문석준 기자이틀째 이어지는 산불로 7번 국도의 시야는 50m가 채 되지 않았고, 동해의 푸른 바다도 연기에 가려져 시선에서 멀어졌다.
하늘은 자욱한 연기로 인해 진한 회색 물감을 뿌려 놓은 것처럼 변해 있었고, 도로에는 검은색 재가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뒤덮였다.
어렵게 도착한 한울원자력본부의 상황도 심상치 않았다.
한울본부 도로 건너편 야산은 이미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고, 본부 내의 나무와 잔디도 불에 탄 모습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또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외부로 보내는 시설인 송변전 시설에서는 작업자들이 피해를 입은 시설을 고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원전 인근 마을인 신화리 일대의 피해는 심각했다.
마을 곳곳에는 불에 탄 주택과 창고, 축사 등이 눈에 띄었다. 특히 한 창고는 철제벽과 기둥이 불에 녹아 엿가락처럼 늘어지면서 지붕이 아래로 완전히 내려 앉아 있었다.
불에 타 완전히 무너진 창고 모습. 문석준 기자현장을 조사하던 한 소방관은 "현재 정확한 피해 규모를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며 "아직도 불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현재는 기본적인 피해조사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이번 산불로 인한 영향구역은 울진 5570㏊를 비롯해 6066㏊에 달하고, 주택 116채가 소실되는 등 지금까지 158곳에서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35개 마을 주민 6126명이 대피했고, 673명은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마을회관 및 체육시설에 대피해 있다.
이틀째 이어지는 산불에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신화리에 사는 노성순(87)씨는 "지난 밤 급히 대피하느라 기본적인 가재도구는 물론, 지갑하나 꺼내지 못했다"며 "아직도 불길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며 눈시울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