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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는 유화에 비해 흔히 주변적인 장르로 취급받곤 한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판화를 그렇게 다뤄서는 곤란하다. 그의 판화에서는 유화 못지않은 깊은 시선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화에 비해 훨씬 활달하고 자유로운 필치와 표정을 만나볼 수 있다.
렘브란트 이후 유럽 판화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는 미술사학자들의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특히 활달하고 자유로운 필치는 렘브란트의 인간성과 기질, 취향 따위를 매우 잘 드러내 주어 렘브란트의 판화가 예술가의 속마음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절절히 깨닫게 한다.
보면 볼수록 렘브란트라는 예술가의 본질과 사람살이의 진솔한 국면을 생생히 파악하고되 새김질하게 하는 작품이 판화인 것이다.
비록 뾰족한 도구로 판을 새기는 에칭을 주로 했으나 렘브란트는 날카롭고 차가운 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날카롭고 차가운 선을 선호하는 예술가들은 대체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경향이 있다. 정교한 표현을 선호하는 만큼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개성이 드러나는 것도 꺼린다.
그의 선은 수더분하고 포용성이 강하다. 우연적인 효과에 민감하고 감정표현을 중시한다. 그로 인해 그의 판화에서는 인간의 땀과 눈물이 생생히 느껴진다. 동료 인간의 희로애락에 쉽게, 그리고 깊이 몰입하는 성향을 보이는 선들이다.[BestNocut_R]
자신의 얼굴을 그린 판화 ''헝클어진 머리의 렘브란트''를 보면 헝클어진 머리만큼이나 분방한 선이 인상적이다. ''단정한 머리의 렘브란트''를 그리지 않은 게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자유자재로 휘날리는 선은 얼굴에도 자연스런 표정을 낳았다. 뭔가 슬픔에 차 있는 듯 혹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미간에 골이 패였다. 형상에 감정을 담고자 스스로 표정연기를 한 뒤 그린 그림이다.
이처럼 그는 형태 못지않게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인간은 감정과 이를 전달하는 표정을 가진 존재이고, 무엇보다 거기에 삶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고 그는 보았다.
눈을 휘둥그레 뜨거나 웃고 찡그리고 노려보는 등의 다양한 표정으로 그려진 자화상들은 누구보다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자 했던 그의 충심을 전해준다.
출처 ㅣ 이주헌의 아트 카페(생각의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