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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터뷰]"페미 할머니 그리며…우린 매일매일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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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터뷰]"페미 할머니 그리며…우린 매일매일 질문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 감독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어느 날, 강유가람 감독은 옛 친구들이 떠올랐다. 1990년대 말 함께 페미니즘을 외쳤던, 이른바 '영페미니스트'였던 자신의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렇게 감독은 삶터, 일터, 가족 형태 모두 다른 친구들을 찾아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을 하나 던진다.
     
    그가 만난 다섯 명의 친구들이자 영페미니스트였던 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실천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여전히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었다. 감독은 서로 다른 다섯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이어져 오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 개봉을 앞둔 6월 어느 날, 서울 필운동 한 카페에서 강유 감독을 만나 다섯 친구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들어봤다.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 감독의 질문에서 시작해 친구들을 거쳐 관객의 힘으로 세상에 나온 영화
     
    ▷ 2014년 기획부터 2021년 극장 개봉까지 7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게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 사실은 코로나19 영향도 있고, 배급사가 중간에 바뀌기도 하고, 개봉 지원도 어려워서 정말 일반 관객들의 힘으로 개봉하게 되니 정말 감개가 무량합니다. 진짜 여러분들 도움이 없이는 개봉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매일 감사해요.
     
    ▷ '우리는 매일매일'은 띄엄띄엄, 따로따로 퍼져 있던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 연결한 느낌이었습니다. 어떻게 영페미니스트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모아 기록하게 됐는지, 이 영화의 시작점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 저는 사실 당시 페미니즘 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은 아니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동경하던 영페미니스트의 팬이었어요.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분들의 활약이 제게 많은 영향을 줬어요.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를 하는 사람이 되고 나서 그들이 활동했던 시기를 언젠가 영상으로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오래 전부터 주변에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도 많이 하고 다녔어요.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 '우리는 매일매일'이라는 제목을 정하면서 그 안에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 궁금합니다.
     
    - 사람들이 매일매일 달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해요. 매일매일 우리는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있죠.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말이에요. 그게 지금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거죠.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정체돼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사회 변화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긍정적인 의미에서 담고 싶었어요. 그리고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순간인 '매일매일', 이 시간을 나의 삶에 집중하자는 의미도 주고 싶었어요.
     
    ▷ 영화에는 감독과 가까운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이번 영화에서 그들을 기록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가운데 영화 속 다섯 출연자는 어떻게 선정한 건지 궁금합니다.
     
    - 원래는 통시적으로 당시 있었던 일들을 총망라하는 느낌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게, 내 고민에서 시작하는 방식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 기획이 한 번 바뀌었어요. 그러고 나자 출연자를 어떤 기준으로 섭외할 것이냐가 중요해졌죠. 제 주변 친구들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콘셉트를 잡으면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대신에 지금 여성운동 최전선에 있는 여성학자나 운동 판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실현하면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섭외하기로 결심했죠. 지역적인 부분도 안배하고요. 다른 방식으로 여성주의를 실천하며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길 원했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어요.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할 '우리는 매일매일'
     
    ▷ 감독의 고민과 질문에서 영화가 시작되는 까닭인지 다른 영화에서보다 관찰자이자 적극적인 화자로서 보다 깊숙이 영화 안으로 들어갔는데요. 다섯 명의 친구들과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됐나요?
     
    -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 같아요. 물론 영화를 보고 더 투쟁력을 다지는 분도 계시겠지만,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많은 여성이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길 선택하셨는데요. 생각보다 세상이 빨리 바뀌진 않아요. 백래시도 있고, 바뀐 것 같은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있거나 하는 걸 보면 사실 지치잖아요.
     
    그랬을 때 긴 호흡으로 봐야 하는 거 같더라고요. 자기 생에서도 그렇고, 사회 변화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말이죠. 자기를 너무 다그치지 않는 방향으로 길게 길게, 페미니스트 할머니로 나이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고, 이 영화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영화가 페미니즘이란 서로 다른 모습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환경문제, 동물권 문제 등 여러 사회적 문제와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연대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맞아요.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것, 그게 출연자들이 제게 보여준 모습이었고 그런 것들이 관객들에게 전달될 거 같아요. 저도 느꼈고, 배웠거든요.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컷. ㈜인디스토리 제공

    ▷ 물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질문을 던진다면, 감독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요?
     
    - 저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론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여성이라고 했을 때 생물학적 여성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모든 여성화된 존재, 그러니까 소수자로 취급되고 주변화 된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봐요. 자신이 처한 위치라든가,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성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사상인 거 같아요.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자기들 것만 챙기려 하고 이기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소수자들을 위한 지향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열심히 해서 엘리베이터가 생긴다면, 이것은 장애인만이 아니라 노약자 모두에게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게 되는 거죠.

    자세히 보면 페미니즘이란 건 그런 게 아니거든요. 유명한 책인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저자 벨 훅스)의 원제는 '페미니즘 이즈 포 에브리바디'(Feminism Is for Everybody)예요. 사실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것을 하나하나 보면 차별에 반대하고, 주변화된 존재들을 위하고, 사회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예요. 페미니스트는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 계속해서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계시는데요.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삶과 활동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 작업일까요?
     
    - 저도 여성으로 태어나긴 했지만, 제도권 교육에서 여성주의를 가르치는 건 아니다 보니 저는 시각 자체도 내면화돼 있는 건 가부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 스스로도 자기를 되게 많이 혐오하잖아요. 자기를 더 검열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는데, 거기서 여성주의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다른 방식의 기록물, 다른 방식의 역사 쓰기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되게 중요하다고 봐요.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강유가람 감독. ㈜인디스토리 제공

    ◇ '우리는 매일매일' 질문한다
     
    ▷ 영화에서는 페미니즘을 만난 후 세상이 더 또렷해졌다고 하거나 행복한 순간이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고 말하는데요. 페미니즘을 만난 후 달라진 것이 있었나요?
     
    - 저는 제가 느꼈던 불편함, 그런 것들의 언어가 생긴 게 너무 좋았어요. 몰랐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 즉 여성의 시각이 생긴 거죠. 성희롱적인 농담이나 그런 걸 봐도 정확히 언어화되어 있지 않으면 웃게 되는 것도 있어요. 그런 것들에 대한 불편함을 알게 돼서 저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저를 해방시키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편한 사람들, 편한 공간, 편한 직장을 더 적극적으로 찾게 되기도 하고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 '우리는 매일매일' 다음에 무언가를 덧붙여본다면 어떤 단어나 문장을 붙여보고 싶나요?
     
    - 안 그래도 저희가 스페셜 포스터로 이런 걸 하는데요. 저는 '질문한다'라고 썼어요. 저는 페미니스트가 지금 상황, 내가 처한 것에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기본자세가 아닐까 싶어요.
     
    ▷ 페미니즘과 그 실천 방식에 관해 고민하는 젊은 세대를 향해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요?
     
    - '시국페미' 인터뷰를 할 때,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조차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하시더라고요. 페미니스트 상이 정형화 돼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상은 존재하지 않고, 내가 만들어 가면 되는 거 아닐까 생각해요. 자투리가 '내가 잘 살면 내가 모델이 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죠. 어떤 하나의 주의나 주장 자체를 몸으로 매일매일 다 실천해야 한다면서 강압적으로 자신을 옭아맬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
     
    좀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봐요. 서구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긴 시간 엄청난 투쟁을 해왔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았다고 좌절할 일은 아니에요. 어떻게든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그냥 좀 쉬어도 돼요. 내가 잘 사는 것도 중요하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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