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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말하는 사고 이후…복귀하니 사라진 '내 자리'



대전

    노동자들이 말하는 사고 이후…복귀하니 사라진 '내 자리'

    [나는 출근이 두렵다④]
    산재 이후 노동자들의 상황

    ※'2021년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 타이어 부문 13년 연속 1위, '2021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타이어 산업 부문 12년 연속 1위. 대전과 충남 금산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타이어의 수식어다. 하지만 한국타이어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13년 전 노동자 10여 명이 심장 질환과 암 등으로 잇따라 숨지며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기도 한 것. 당시 집단 역학조사가 이뤄졌지만, 다양한 암과 작업현장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1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치거나 죽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의 감독이 이뤄지고 수백 가지의 위반사항이 적발된다. 수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현장의 위험은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고,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위태롭다. 대전CBS는 한국타이어의 작업현장 실태와 노동부의 관리·감독 현황을 살펴보고, 멈추지 않는 사고의 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해 해결책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멈추지 않는 한국타이어 사고…기계에 머리 끼고 가스 흡입
    ②"이틀에 한 명씩 다쳐"…한국타이어 6년간 1190명 산재
    ③정부 감독 중에도 2.6일마다 사고…감독, 하나마나
    ④노동자들이 말하는 사고 이후…복귀하니 사라진 '내 자리'(계속)

    회사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병을 얻은 노동자들을 회사는 품지 않았다. 한국타이어에서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들은 이후 불이익을 받았다고 말한다. 한 노동자는 해고 통보를 받았고, 4년 넘게 일한 자리가 돌연 사라진 노동자도 있었다. 노동자들은 '산재 이후'와도 외롭게 싸워야 했다.

    ◇일하다 다친 건데…돌아온 건 '해고'와 '전환배치'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의 내부 모습. 독자 제공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가류과에서 근무하던 한모씨는 지난 2019년 8월 7일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했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진단명은 상세불명의 뇌경색증.

    산업재해 중 업무상 질병의 경우 질병과 작업환경 간 인과관계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게다가 사고성 산재와 달리 승인까지의 과정 역시 수개월이 소요된다. 지난해 업무상 질병 처리에 든 시간만 보더라도 근골격계질환 121일, 직업성 암 334일, 뇌심혈관계질환 132일 등으로 법적 기준인 7일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초반에는 1분의 면담조차 어려웠던 한씨는 서류작성에 어려움을 겪었고, 산재 신청 역시 늦어졌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사이 한씨에게 돌아온 것은 사측의 '해고통지서'였다.

    지난해 한씨의 해고 문제가 대두되자 한국타이어 측은 "2019년에도 전 공정에 냉온난방 개선을 위해 60억을 투자했으며, 근로기준법과 6개월간 휴직할 수 있다는 내용의 취업규칙에 따라 면직 처리가 이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당시 한 달간 정직을 한 뒤에 면직처리가 이뤄졌는데, 한씨로부터 정확한 피드백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는 지난해 2월 26일 대표이사에게 "현재 산재접수를 하고 산재진행 중에 있음에도 재해자에게 부당한 처우를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다시 한번 해고통지를 고려해 재해자가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업무상 질병의 가능성이 있고, 산업재해를 신청한 뒤 결과를 기다리던 노동자에게 회사는 취업규칙을 앞세운 것이다.

    한씨는 "20대부터 50대까지 일을 했는데 (해고통지서에) 배신감이 들었다"며 "가정이 있는 상황에서 몸은 안 움직이고 월급도 안 나오니 가장으로서 참 치욕스러웠던 시간이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다행히 한씨는 산재신청 8개월만인 지난해 6월 3일 근로복지공단 대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산재 인정 결정을 받았다. 업무상질평판정서에서는 1주 평균 근무시간이 37시간 33분으로 만성적 과중한 업무의 기준인 주당 60시간,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지만, 교대제 근무, 고온, 소음, 유해화학물질 등 복합적 요인을 고려할 때 업무와 한씨의 질병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봤다. 이후 사측은 해고 통보를 철회했다.

    한씨와 같이 해고통보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한국타이어에서 산업재해를 당한 다른 노동자들도 복귀했을 때 원래 일하던 곳이 아닌 새로운 조에 배정되거나 다른 업무를 맡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타이어 노동자 정모씨는 팔꿈치를 다쳐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뒤 자신의 자리가 바뀌었다고 했다. 설비를 만지며 기계를 운전하는 메인 작업자였지만, 산재 이후 보조 업무를 하게 됐다. 정씨는 "당초 원직 복직을 말하던 회사는 복귀 후 '비어있는 곳이 여기뿐'이라며 다른 곳으로 배치했다"며 "산재를 당하기 전에도 손목은 사용했지만, 산재 이후 더욱더 손과 팔, 허리, 어깨를 쓰는 곳으로 옮겨져 또다시 손목 부위에 문제가 생겨 산재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노동자 정모씨가 손으로 작성한 작업일지. 시간대별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 언제 쉬었는지 등이 적혀있다. 정씨 제공

     

    그러면서 "(업무가 바뀌면) 사람을 새로 사귀고 일도 새로 배워야 한다. 또 비선호 부서로 보내기 때문에 (산재신청을) 겁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씨는 "당시 손으로 작업일지 쓰는 게 없어졌지만, 나만 시간대별로 뭐를 했는지 일거수일투족 다 적으라고 했다"며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년간 가류공정에서 틀에 타이어를 집어넣는 업무를 하다가 어깨를 다친 오모씨. 오씨도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요양 후 복직해보니 업무가 견인차 '운반'으로 바뀌었다. 오씨는 "운전도 할 줄 모르는데 운반 업무를 하라길래 관리자에게 항의했더니 집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결국 팀장에게 이야기했고 원래 업무로 복직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허리와 손목 문제로 산재를 당한 뒤 더 무리가 더 가는 보직으로 변경이 되거나 2년 사이 두 번이나 전환배치된 사례 등을 노동자들은 호소했다.

    노동·산재전문 손익찬 변호사는 "이런 점에서 아프면 업무상 사유인지 여부를 묻지 않고 쉴 수 있는 상병수당과 휴가가 도입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산재 보험법에도 산재급여 신청 등을 이유로 해당 노동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있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산재 은폐 시 처벌 강화와 불이익 처우에 대한 근로감독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망사고 후 780억 투자했다지만…체감은 '미미'

    산재 이후 회사 측이 내놓는 개선안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은 현장의 변화를 느끼긴 어렵다고 말한다. '회사의 개선안'과 '노동자가 바라는 개선안' 사이의 거리도 멀다.

    지난 2017년 금산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뒤 한국타이어는 안전관리 조직개편, 낡은 시설 개선 등 안전 분야에 780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타이어 측은 대전CBS에도 "2019년부터 2026년까지 총 3100억원을 투자해 대전공장과 금산공장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안전, 환경, 에너지, 물류, 작업·생산관리, 품질관리 등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타이어의 투자 진행현황을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한국타이어는 2017년 95억 8천만원, 2018년 286억 8천만원, 2019년 178억, 2020년 227억 4천만 원을 투자했다.

    2019년 대전공장의 투자 세부 리스트를 보면 △노후 차량 교체 △바닥철판시공 △냉난방용 냉온수 탱크 노후교체 △디젤 지게차 및 노후 차량 교체 △온열개선 냉방투자 △탈크 자동 공급 시스템 확산 △물류창고 주행레인 노후 교체 △지붕방수 누수 개선 △고소 작업대 구입 등에 쓰였다.

    이 같은 사측의 투자에 대해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는 "노동자들의 체감 효과가 미미하고 마땅히 해야 하는 개선까지 투자로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두억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장은 "세부 항목 중 직접적인 환경 개선이 아니라 설비 라인업이나 정기 검사까지 들어가 있고, 대부분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상당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꼬집었다.

    특히 노동자들이 지속해서 요구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지회장은 "노동자가 원하는 부분은 다량의 분진이 발생하는 정련공장과 고열에 노출돼 근무하는 가류공정의 개선이지만 이 부분은 개선 계획에서 미흡하게 다뤄졌다"고 했다. "정련은 부분 부분이 아닌 전체 라인에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 약품 가루가 날리는 것을 막아줘야 하고, 가류공정의 경우 온도 저감을 위해 차단막 설치를 해놨지만 작업자가 일할 때는 기계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여전히 고온 작업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의당 남가현 대전시당위원장은 "사측은 작년까지 788억을 투자했다 자랑하지만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원래 사측이 공장 가동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도 다수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설비 위주 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현장이 변했고, 안전해졌다고 느끼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2인 1조 근무가 보장받는 상황이 돼야 한다"며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점심시간 등에는 혼자서 작업 설비를 가동해야 하고, 그러면서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런 것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더 핵심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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