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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신군부는 41년째 '발포 모르쇠'…장·사병은 '양심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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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5·18 신군부는 41년째 '발포 모르쇠'…장·사병은 '양심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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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진상조사위 "피해자 만나 사죄하고 싶단 분 꽤 있어"
    송선태 위원장 "의사 밝힌 지 두달…사망자 아직 특정 못해"

    지난 6일 오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에서 노먼 소프 5·18 기록사진 기증자료 특별전 언론공개행사가 열렸다. 전시는 노먼 소프가 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 서울지국 소속 기자로 1980년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광주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 당시 출입증과 카메라 등을 공개한다. 사진은 노먼 소프가 기록한 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모습. 연합뉴스
    "사실 이 부분(5·18 당시 집단발포 명령)은 저희 위원회가 마지막까지 해결해야 할 핵심과제고, 최종 결론은 위원회 활동이 끝나는 시점에 결정돼야 할 걸로 판단해요. 당시 (계엄)군의 지휘체계가 형식적 지휘체계, 실질적 지휘체계로 이원화돼 있었다는 가설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발포와 관련된 그 많은 문건에도 명시적 발포나 명령을 유추해낼 수 있는 물적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휘부에 있었던 군인들, 상층부의 양심고백, 거의 '스모킹 건'에 가까운 증언이 있지 않고서는 많은 부분을 추론을 통해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최용주 조사1과장)

    "약 1400명 정도 되는 계엄군을 대상으로 전수조사 중인데 자신들이 부당한 명령으로 (광주에) 투입됐다고 하지만, 41년 지난 시점에 자신들이 했던 행위를 고백도 하고 피해자들을 만나 사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허연식 조사2과장)

    지난해 말 출범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가 조사를 개시한 지 12일로 벌써 1년이 흘렀다. 그간의 조사성과와 향후 조사방향 등을 알리고자 열린 진상조사위의 기자간담회에서는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들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나왔다.

    신군부를 이끈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론 당시 광주 진압작전을 주도한 장성급 인사들 사이에선 발포명령 등에 대한 증언이 전무하다. 반면 현장에 투입된 계엄군 장·사병들 중 '양심 선언'을 하며 참회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온 이들은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진상조사위 송선태 위원장은 "사죄의 뜻을 밝혀와 거의 (준비가) 완료된 사죄 프로젝트는 2개"라며 "과거 7공수여단의 병사처럼 '민간인을 이렇게 죽이고 도저히 괴로워서 안되겠다. 진실을 토로하고 용서받고 싶다'고 하는 경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로선 (5·18 당시) 11공수여단이었단 점만 말씀드린다. 사죄의 뜻은 우리가 강요할 수도 없고, 너무나 조심스럽다"며 "유족들이 과연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기 때문인데, 이분들은 사죄 뜻을 (진상조사위에) 밝힌 지 두 달이 됐지만 아직 사망자를 특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위가 '상향식'의 포괄적 조사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당시 신군부 상층부의 '모르쇠'와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 위원장은 "저희가 조사방식을 왜 '바텀업'(Bottom-up)으로 했는가 하면 핵심 관련자들은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다 한마디의 진실고백도, 사죄도 없기 때문"이라며 "그럼 그분들의 의도와 지시가 현장에서 어떻게 전개됐는지 실제 투입된 군의 증언을 통해 확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1년간 '광주 봉쇄작전' 등에 투입된 장·사병 중 522명을 만나 'M60 또는 M1 소총을 이용해 시민군을 사격했다' 등 58명으로부터 가해사실을 시인하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향후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2만 353명의 계엄군 중 10%인 2천명 이상으로부터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세우고 있다.

    진상조사위 허연식 조사2과장은 "피해당사자를 특정하는 일이 여러 가지 여건상 쉽지 않아 특정되는 사안 중심으로 (계엄군의 사죄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조만간 연계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전원위원회 의결을 거친 후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자료사진
    광주 시민군에 의해 피격된 사병들을 치료한 병원들의 미담 사례도 일부 공개됐다.

    허 과장은 "(1980년) 5월 21일 아침에 발생한 (시민군의) 20사단 차량 탈취사건 현장에서 당시 계엄군이 많은 부상을 입었다. 광주 시민 입장에서 보면 전날 야간에 이뤄진 발포로 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가장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무렵 20사단 사병들이 차량을 갖고 들어오다 시위대에 의해 많은 공격을 당했다. 부상당한 이들을 직접 피신시켜주고 치료해 안전히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준 병원이 3곳 있다"며 "조만간 이 역시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3월 16일 진상조사위를 통해 5·18 유족에게 "40여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계엄군 최초로 사죄한 사례가 나왔다. 1980년 당시 7공수여단 소속 계엄군이었던 A씨는 민간인 희생자인 고(故) 박병현씨의 형 박종수(73)씨 등 유가족을 만나 직접 사죄했다.

    A씨는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며 "유가족 앞에 서면 또다시 상처를 줄까 봐 41년 동안 찾지 못했다"고 큰절을 올리며 흐느꼈다. 그는 사고 당일인 1980년 5월 23일을 들어 "당시 부대원들이 '도망가면 쏜다'고 했지만 박씨 등이 겁에 질려 도주하던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며 구체적인 상황을 진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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