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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실내극장'…인천 시민들이 애관극장 살리기에 나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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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 실내극장'…인천 시민들이 애관극장 살리기에 나선 이유는?

    경영악화에 매각설 '솔솔'…인천시‧시민 보존대책 맞손
    인천시, '애관극장' 매입 논의 중
    '한국영화사의 뿌리같은 존재' 역사성‧상징성‧자부심 등 작용한 듯

    지난 23일 인천 시민들로 구성된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인천시민모임'이 인천 중구 애관극장 앞에서 극장의 보존을 위한 대책을 촉구하는 모습.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인천시민모임 제공

     

    국내 최초 실내극장 격인 인천 '애관극장'을 보존하기 위해 인천시와 시민들이 뭉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여파로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매각설이 제기되자 애관극장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존속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 126년 역사 '애관극장' 경영 위기에 매각설까지

    28일 인천시와 중구,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인천시민모임 2기(이하 애사모)' 등에 따르면 애관극장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조만간 인천시와 인천시의회, 중구, 애사모 회원 등이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앞서 애사모는 지난 23일 애관극장 앞에서 집회를 열어 극장의 경영이 극도로 악화됐다며 보존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애사모에 따르면 애관극장은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면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고육지책으로 수개월째 5개관(860석)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1관(404석)의 문을 닫았지만 매달 2천~3천만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매각설도 나오고 있다.

    애사모는 126년 역사를 간직한 애관극장이 영화관이자 문화시설로 존속할 수 있도록 인천시가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천지역 문화계와 한국 영화계, 인천시가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애관극장의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호소에 인천시와 중구 등은 애관극장을 50년 이상 이어진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거나 매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박찬훈 인천시 문화관광국장은 "애관극장이 갖고 있는 국내 최초 실내극장이라는 역사성과 국내 영화 역사의 뿌리라는 상징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애관극장 보존 대책에 적극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 광복 직후 '국내 최고 영화도시'였다는 기억

    인천 시민들이 문화오락시설인 애관극장을 지키자고 목소리 높이는 건 인천이 한때 국내 최고의 영화도시였다는 자부심을 되찾고 국내 최초 실내극장인 애관극장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다.

    광복 직후 1940년대 말~1950년대 인천은 한 해에 영화가 10편 이상 제작될 정도로 우리 영화 역사 초기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영화 배급망이 구축된 현재와 달리 당시 영화는 제작사가 영화 상영까지 도맡았다. 당시의 극장은 단순히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제작과정의 모습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인천에는 애관극장을 비롯해 현대극장, 인천극장, 동방극장, 미림극장 등이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인천극장은 찜질방으로, 현대극장은 과일가게로 바뀌었다.

    특히 인천 최초의 영화제작자로 알려진 고(故) 최철(1919~1948)이 운영했던 '동방극장(1941년 준공)'의 철거(2015년)는 '한국 영화의 뿌리 도시'라는 자부심에 상처를 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최철은 인천 출신 원로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최철은 직접 제작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6살이었던 최불암은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이 극장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 맨 앞자리에서 영화를 봤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은 애관극장만이 아직까지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인천시민들에게 애관극장은 과거 국내 최고 영화 도시였던 인천을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이들에게는 최근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여우조연상 등 주요 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국내 영화사 초기 인천 영화인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봉준호 감독도 2017년 영화 '옥자' 개봉 관련 인터뷰 과정에서 "옥자 개봉에 선뜻 나서준 애관극장 등에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인천시립박물관 배성수 전시교육부장은 "애관극장 보존 운동은 한국 영화의 뿌리를 지키고 싶다는 지역 사회의 요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며 "단순히 건물이 오래됐다는 의미를 넘어 그 건물이 갖는 상징성에 주목하고 지역사회가 이를 어떻게 본연의 모습을 이어가게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게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애관극장의 과거 모습. 사진 연합뉴스

     

    ◇ "주차장으로, 아파트로"…'와르르' 헐린 근대 문화유산들에 대한 위기의식도

    애관극장 살리기 운동은 단순히 영화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최근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는 인천의 근무문화 유산들을 더 이상 놔둘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인천에서는 1880년대 개항기부터 1950년 사이 지어진 201여 개의 근대건축물들이 잇따라 헐리거나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이들 근대건축물이 민간 소유인데다, 소유자의 동의 없이는 '시 등록문화재' 지정도 하지 못해 보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 근대건축물의 철거는 더욱 가속화됐다. 지난해에는 고종 때 통상업무 등을 관장‧감독하던 행정기관인 인천감리서 옆 2층짜리 목조건축물이 철거됐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인천부립 직업소개소에서 운영한 공동숙박시설이었다. 취업알선과 주거지가 없는 구직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당시 하층민들의 주거형태와 삶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로 평가받았다.

    1912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애경 비누공장은 2017년 중구가 주차장을 만든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과거 이 건물은 인천지역 공단의 시초로 평가받았다.

    일제강점기 여공들의 애환이 서린 '오쿠다 정미소'도 지난해 철거됐다. 193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당시 여성 선미공들이 남녀 간 임금 차별에 반대하고 수유 시간 제공 등을 요구하며 노동운동을 펼친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철거된 이 건물터에서는 20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외에도 송주옥(1930년), 조일양조장(1939년) 등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들도 도시화와 사유재산 보호라는 명목으로 하나둘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

    시민들이 애관극장 살리기에 관심을 쏟는 건 이 극장이 사유재산이지만 소유자가 대를 이어 극장을 운영할 만큼 극장 보존에 힘쓰고 있고 등록문화재 지정 등에도 비교적 열린 자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국내 최초 실내극장' 애관극장은?

    애관극장의 전신은 1895년 인천 경동에 문을 연 '협률사'로 서울 협률사보다 7년 앞서 개관했다. 이곳에선 남사당패, 성주풀이 등 전통 악극을 공연했으며 1910년 '축항사'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1920년대부터 서양 영화 상영과 연극 공연도 함께하면서 '애관'이라 불렸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뒤 1960년 현재 모습으로 지어 애관극장으로 재개관했다. 현재 이 극장은 애관극장 창업주의 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겨나면서 주변 영화관들은 모두 문을 닫았지만 애관극장은 2004년 1관 옆 건물에 2~5관을 신축하면서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경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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