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해 12월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 됐다. 윤창원 기자
지난해 12월 통과된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 개정안'의 시행령이 수개월째 개정되지 못하면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업무가 마비될 위기에 놓였다. 시행령 개정 없이는 활동 연장에 따른 추가 예산도 편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사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은 물론, 다음 달 구성원들의 임금지급조차 어려운 사태를 맞이할 가능성도 있다.
◇사참위 시행령 개정안 두고, 수개월 지체…"업무 범위" 이견
2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사참위와 환경부는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 개정안'의 시행령안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달 30일 사참위 업무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한 고발·수사 요청, 과태료 부과, 감사원 감사 요구, 청문회 개최 권한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사참위 측에 송부했다.
그 전에는 "위원회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원인규명 업무를 더는 수행할 수 없으므로 피해자 구제 및 제도 개선에 관한 진상규명조사도 수행할 수 없다", "피해자 구제 및 제도개선과 관련해 필요한 자료는 협조 차원에서만 제공한다"는 내용을 보냈다.
환경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법 3장 1절에서 진상규명 조사를 규정하고 있는데, 진상규명이 제외됐으니 조사는 불가능하다"며 "조사라는 것은 (강제성을 띈) '권력적' 조사이고, 법에 근거가 없는 한 권력적 조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입장"이라고 밝혔다.
사참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사참위는 지난 1일 배포한 입장문에서 "지난해 12월 조정된 것은 법 제5조 상의 업무범위에 속하는 '원인규명' 업무에 국한된 것"이라며 "'업무수행방법'에 해당하는 조항은 개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구제를 위한 조사' 및 '제도개선을 위한 조사'는 여전히 위원회 고유의 독립적인 권한"이라며 "'고발 및 수사요청, 감사요구' 역시 조사활동이 아닌 결과의 처리방법"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사참위는 '협조' 방식으로 가습기살균제 자료 요청에 응하겠다는 환경부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황전원 지원소위원장은 "사참위법 40조에서 규정하는 국가기관의 협조 의무는 환경부뿐 아니라 모든 기관이 가지고 있다. 이는 일반론적인 협조를 말하는 것뿐"이라며 "환경부가 실질적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도 과연 다 내놓겠느냐"고 밝혔다.
이어 "협조를 거부했을 때 우리가 제재할 방법도 없다"며 "'조사'에는 응하지 않으면 상응하는 벌칙이 있다. 또 자료가 없다고 하면, 현장에 가서 확인해보는 '실지조사'도 할 수 있는데 환경부는 이 모든 것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번 갈등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한 안전사회국과 피해지원국의 업무 범위와 권한을 놓고 발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말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사참위의 활동도 내년 6월까지 연장됐다. 다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선 '피해자 구제 및 제도개선, 종합보고서 작성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에 한정해 수행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사참위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국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국 △안전사회국 △피해지원국 등 4개 국으로 구성돼있다. 법 개정으로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진상규명' 업무가 더 이상 수행이 어려워짐에 따라 직제에서도 사라질 예정이었다.
환경부는 "조사 업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취지지만, 사참위는 "모법이 분명히 양 참사에 관한 안전대책 마련과 제도 개선, 피해자 지원 등의 업무는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를 위한 조사는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한형 기자
◇사참위 업무 지장 크다…예산 떨어져 '임금 체불' 위기도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법이 통과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문제는 사참위의 업무가 큰 지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령에는 조사 활동의 강화를 위한 활동 범위와 조사 방법의 변경, 조직 구조 개편 등이 담겨야 한다.
사참위는 법 개정 취지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국을 없애고, (진상규명국 산하) 조사3과를 신설해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대응의 적정성을 조사한다는 계획이었다. 또 총원 28명의 조사관을 12명 정도 충원해 정원을 40여 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사참위는 아직 법 개정 이전의 '조직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예산 역시 추가로 편성되지 못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사참위의 활동기한은 지난 3월 10일을 기점으로 만료될 예정이었다. 때문에 예산 역시 지난 3월 10일까지만 편성되어있다는 게 사참위 측의 설명이다. 지금까지는 예비비와 잔여액 등을 이용해 버텨왔지만, 지금은 사실상 고갈상태다.
황전원 소위원장은 "이달 직원 월급까지는 겨우 가능하지만, 당장 다음달부터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며 "5월 초가 되면 출장비나 조사에 필요한 수용비, 업무추진비 모두 바닥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별정직 공무원이고,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데 국가에서 월급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되는 것이다. 지금 그게 눈앞의 현실로 왔다"라고 덧붙였다.
사참위는 최근 예산 고갈 문제와 관련해 내부 공고를 올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참위 활동 기한 연장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참위 박병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국장은 "세월호 관련해서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게 맞다"며 "선체 관련 조사를 하려면 연구 용역 등을 발주해야 하는데, 예산 확보가 안되다 보니 용역이 쌓여있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원래대로라면 조사관 증원을 위한 채용 공고도 3월에 나가는 게 맞다"며 "최소 한 달 반 이상이 지연되고 있고, 지금 현재도 조사는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소위원장은 "조사기관의 조사 대상인 환경부가 반대한다고 해서 조사기관의 조사권을 없애서 마비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시행령이 지금 당장 절차를 밟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치면 5월 초·중순에야 마련될 것이다. 5개월을 이렇게 낭비하게 한다는 것은 명백한 조사 방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유족들도 반발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사참위 시행령이 문제를 최악으로 만들고 있다"며 "시행령 제정으로 허비한 최소 5개월에 대해 정부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