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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외출 금지에 '컨테이너 숙소' 갇힌 이주노동자들



사건/사고

    코로나 외출 금지에 '컨테이너 숙소' 갇힌 이주노동자들

    코로나 시국에 열악한 기숙사 갇힌 이주노동자들
    "밖 나가면 일 못 한다" 엄포 놓고, 노동자끼리 감시도
    "공장도 쉬는 명절에는 타향살이 고립감 더 커져"
    전문가들 "취약한 이주노동자들 관심 필요"

    공장 옆에 마련된 이주노동자 A씨의 컨테이너 숙소. 이주노조 섹알마문 부위원장 제공

     

    경기도 평택의 한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A(32)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사실상 기숙사 '외출 금지'를 당했다. 사장은 A씨에게 "기숙사 밖으로 나가면 앞으로 공장에서 일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을 가면 2주 동안 알아서 자가격리를 하고 들어오라"는 엄포도 함께였다. 사장은 평소 주말에는 찾아오지 않던 기숙사도 들러 노동자들이 밖을 나갔는지 점검도 했다.

    A씨가 휴식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기숙사는 공장 옆에 딸린 작은 컨테이너 간이 건물이다. 바람을 제대로 막아 주지 못해 늘 추운 데다가 좁고 열악하다. A씨는 일주일에 하루 받는 휴일마다 서울에 있는 문화예술센터를 찾아 각종 활동에 참여해왔다. 이때만큼은 기숙사를 벗어나 센터에 딸린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센터를 찾아가지 못한 지도 어느덧 6개월이 다 됐다.

    코로나19 상황 속 이주노동자의 고통이 심해지는 모양새다. 감염 위험을 이유로 기숙사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 자체를 금지하는 사업주들도 상당수다.

    경기도 광주의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B(28)씨도 마찬가지 신세다. A씨와 같은 센터에서 활동하는 B씨는 센터를 방문하지 못한 지 4개월째다. 활동가들과는 원격 화상프로그램 '줌(zoom)'이나 페이스북 메시지 등을 이용해 안부를 대신한다.

    이들을 지원하는 이주노조 섹알마문 부위원장은 "기숙사 외출 금지가 불의하다는 걸 노동자들도 알지만, 비자나 고용 문제가 걸려있다 보니 참을 수밖에 없다"며 "일부 고용주들은 국적이 다른 이주노동자들 보고 서로 나가는지 감시하게 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민사회단체 '이주민과 함께'가 지난해 7월부터 두 달 동안 실시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1051명(1060명 중 9명 무응답) 중 16.7%가 코로나19 감염 방지 명목으로 직장 기숙사 외출 금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설날을 앞두고는 고독감이 더해져 고충이 더욱 크다. 전국 각지의 농장과 공장 등에 흩어져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명절이 되면 서로 모여 외로움을 달래왔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명절'은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심해지면서 지난 추석에 이어 오는 설에도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 어려워졌다.

    "서울이나 다른 곳, 버스 타고 가다가 코로나 병 올 것 같아요. 동대문도 올해는 못 가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브미 네우바네(40)씨는 이렇게 말했다. 전국 각지의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동대문구 창신동 뒷골목의 '네팔타운'에 모여 명절을 함께 보내곤 했다. 네우바네씨는 "코로나가 끝나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숙사에 있다"며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묻는다"고 했다.

    또 다른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아미르(37)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아미르씨는 "밖에 제대로 나가지 않은 지 1년 정도 된 것 같다"며 "5분 거리에 있는 시장에만 자전거를 타고 빨리 다녀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의 정신건강에는 적색등이 켜지고 있다. '이주민과 함께'의 같은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1060명 중 지난 1년간 심한 불안이나 우울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응답자가 34.9%에 달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민주노총 정영섭 미조직전략국장은 "아무래도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내에서 힘든 조건에서 일하고, 적절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며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나마 제공되던 것들이 더더욱 축소되면서 외로움이 커지는 것 같다"고 봤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일주일에 하루 쉬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나마 동포를 만나는 날이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이었다"며 "그런 기회마저 없어지고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많이들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위기에서 내국인들도 고통을 분담하고 있지만 이역만리 외딴 곳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그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섹알마문 부위원장은 "한국 사람들도 코로나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다만 방역수칙을 지키며 모인다든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활동할 수는 있다"며 "비자나 고용문제가 걸려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을 이처럼 아예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시기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는지 등 방법을 습득시켜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영섭 국장은 "전국민적으로 당연히 코로나 예방을 위해 이동을 최소화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외출금지나, 출입통제는 기본적인 인권에 맞지도 않고 내·외국인에 대해 차별을 두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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