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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수사' 의혹 경찰, 학대피해 영아 숨진 뒤에야 '결론 뒤집기'



사건/사고

    '부실수사' 의혹 경찰, 학대피해 영아 숨진 뒤에야 '결론 뒤집기'

    아이 사망 1개월 만에 아동학대치사·방임 등 혐의 확인
    경찰 "아이 부모, 장기간에 걸쳐 방임·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피해 아동, 입양 한달 후부터 학대피해 당한 것으로 조사돼
    앞선 3차례 신고에선 규명 못 해…'부실 수사' 의혹 확산
    방임 등 혐의 판단 실마리, 과거 신고 건들 '역주행'해 찾아
    '멍 자국 발견' 첫 학대 의심신고는 부모 혐의사실에서 빠져
    전문가들 "부실한 아동보호 체계, 총체적으로 뜯어고쳐야"

    '16개월 입양아 학대치사' 엄마 장모씨가 19일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입양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16개월 영아 아동학대 사망' 의혹과 관련해 경찰 수사는 크게 두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피해 아동인 A양 부모의 '아동 학대' 혐의 △과거 신고를 처리한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 등이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전날 두 의혹 모두에 말을 아꼈다. 아이가 숨지기 전 수개월에 걸쳐 있었던 3차례 신고에서는 학대 의혹을 밝히지 못한 경찰이 아이가 숨지고 나서야 한달 만에 방임 등 혐의를 규명하면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6개월 영아 학대 부모, '기소의견' 송치…"입양 한달 후부터 학대"

    19일 서울 양천경찰서는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 아동복지법상 방임 등 혐의를 받는 어머니 장모씨를 기소의견을 달아 구속 송치했다. 아버지 안모씨도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의 공동정범과 (방임에 대한) 방조 등 혐의로 기소의견으로 불구속 송치됐다.

    경찰은 "두 사람은 영아를 장기간에 걸쳐 방임·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다수의 참고인 조사와 CC(폐쇄회로)TV 영상, 피해 아동의 진료기록, 부모 휴대폰 디지털포렌식 등을 다각도로 거쳐 수사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입양하고 한 달 후인 지난 3월쯤부터 A양을 학대했다는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A양은 숨지기 전까지 8개월여 동안 학대 피해를 당한 것이다.

    어머니 장씨에게는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가 적용됐다. 그는 A양을 여러 차례 신체적으로 학대하고 차에 홀로 두거나 필요한 의료조치 등을 하지 않는 등 방임한 것으로 조사됐다. A양이 숨진 뒤에는 자신의 휴대폰에 있는 사진, 영상 등을 지운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지난 11일 구속됐다.

    경찰은 아버지 안씨에게는 방임 및 (방임에 대한) 방조 혐의 등을 적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같이 (방임)할 때도 있고, 엄마가 방조하는 데 용이하게 한 것도 있다"며 "아버지가 신체적 학대 등에 개입한 것은 검찰에서 더 수사할 부분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경찰은 부부의 주거지 근처 등 이들의 동선을 따라 확보한 자료 등을 토대로 아동학대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집 안에는 CCTV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장씨에 대해 살인 혐의를 검토했으나, 고의성 등을 입증하기 어려워 적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자녀가 있었던 이들이 A양을 둘째로 입양한 이유도 수사 대상 중 하나였다. 경찰은 입양 목적이 주택청약 가점 등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인지 조사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사귈 때부터 그런(입양) 얘기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A양은 지난달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병원에 실려 올 당시 복부와 뇌에 큰 상처가 있었으며, 이를 본 병원 관계자가 아동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밀 부검 결과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 A양의 사인이라는 소견을 내놓았다.

    ◇'그때는 아니고, 지금은 맞다?'…뒤늦은 경찰 수사

    '16개월 입양아 학대치사' 엄마 장모씨가 19일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A양을 살릴 기회는 최소 3차례 있었다. 관련 기관인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입양기관 등의 총체적 '부실 대응'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5월 A양이 다니던 어린이집 직원이 A양의 몸에서 멍 자국을 발견하고 첫 신고를 했고, △한 달 뒤에는 '아이가 차 안에 홀로 방치돼 있다'는 내용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9월에는 A양이 다니던 소아과 원장이 A양의 영양 상태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때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A양을 부모와 분리하지 않았다. 경찰은 3건의 신고를 모두 내사종결하거나 불기소(혐의없음) 처분했다. 경찰은 A양이 숨진 뒤에야 부모를 입건해 학대 이력 등을 조사하고, 과거 3건의 신고에 대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1개월여 수사 끝에 △6월에 A양을 차에 30여분 동안 방치한 행위 △9월에 확인된 A양의 영양 부실 상태 등이 '방임'에 해당한다고 최종 판단했다. 다만 지난 5월 이뤄진 첫 신고는 이들의 혐의사실에서 빠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멍 부분은 여러 자료로 입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했다.

    수사당국은 적어도 지난 6월과 9월에 있었던 두세 번째 신고에서는 아동학대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고 사실상 인정했다.

    경찰은 방임 혐의 판단의 실마리를 '과거 신고' 건들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대법원 방임 판례가 적어서, 그때(과거 신고) 한 가지만 봤을 때는 (방임에 대한) 판단이 미미했다"면서도 "사망 시점부터 (신고 건들을) 거꾸로 살펴보니 여러 건이 나와 (방임 혐의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이 보다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면,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입양된 아이라 파양될 것 등을 우려해 (분리조치 등에) 보수적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아동보호기관의 잘못된 판단을 뒤집어야 했지만, 당시 기관의 결정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찰은 "6월 이후로도 (학대 정황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지, 당시 단편적으로 한 개(신고 건)만 봤을 때는 판단하는 데 다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전날 과거 신고 건들을 부실 수사한 의혹에 "감찰 중인 사안"이라며 "사망한 아동에 대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아이가 숨진 이후 초동대응 부실 의혹이 일자, 서울지방경찰청은 점검단을 꾸리고 해당 신고들을 처리했던 양천경찰서 경찰관들을 상대로 감찰을 벌이고 있다.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지난해 아동 42명이 학대로 숨졌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경찰이 약식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한 19일은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기도 했다. 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예방'을 외치지만 공허하기만 하다. 지난해 학대로 숨진 아동은 42명에 달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5년 1만 9214건 △2016년 2만 9674건 △2017년 3만 4169건 △2018년 3만 6417건 △2019년 4만 1389건으로 5년 새 크게 늘었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부모가 아동학대 가해자인 비율은 70%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친인척, 부모의 동거인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학대 피해아동 보호조치 결과를 보면, '원 가정 보호 지속'이 2만 5206건으로 가장 많았다. 분리조치는 3669건에 그쳤다.

    현행법상 규정된 형량 자체는 낮은 편이 아니다. 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267건이다. 이 가운데 유기형이 선고된 사건은 33건으로 전체의 12%에 그쳤다. 집행유예는 96건(36%)으로 실형보다 세 배 더 많았다.

    경찰은 16개월 영아 학대 사망 사건 이후, '분리조치 강화'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현장에서 학대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도 2차례 이상 신고가 반복되고 학대로 의심되는 멍과 상흔이 발견되면 부모와 아동을 분리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복지부와 '즉각분리 제도'의 법적 근거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실한 '아동보호 체계'를 손보지 않는 한, 문제는 반복된다고 경고했다.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는 경찰 등 관련 기관의 감수성을 제고하고, 아동학대 전문 인력, 인프라 등을 확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화여대 정익중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을 전담하는 전문인력을 경찰, 검찰, 법원 등 각 기관에 둬야 한다"며 "즉각 분리만 강조하는 건 근본적 해결안이 될 수 없다. 아동, 사안 등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분리 이후 아동을 어디에 보낼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피해를 말할 수 없는 영아가 관련된 경우, 기존의 수사 매뉴얼보다 '아동보호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는 전날 자신의 SNS에 "정부가 아동학대 종합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아동학대 처벌강화 태스크포스(TF)'가 아동학대 신고 시 경찰 동행 출동, 처벌 강화를 위한 양형 기준 제안, 학대 아동 즉각 분리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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