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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이제 그만" 부활 꿈 꾸는 이종현 곁에 수호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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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은 이제 그만" 부활 꿈 꾸는 이종현 곁에 수호신 있다

    고양 오리온에서 의기투합한 이승현(사진 왼쪽)과 이종현 (사진=노컷뉴스)

     


    2013년 여름 농구 코트는 '언더독의 반란'으로 뜨거웠다. 프로농구 10개 구단과 프로 선수들로 채워진 국군체육부대(상무) 그리고 대학 남자농구 팀들이 참가한 제2회 프로아마 최강전은 흥행과 화제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이승현과 이종현을 앞세운 고려대와 김종규-두경민-김민구 등 경희대 3인방은 프로 선배들에게 밀리지 않는 기량을 자랑해 눈길을 끌었다.

    비록 외국인선수가 뛰지 않았고 비시즌이라 프로 선수들의 몸 상태가 100%는 아니었지만 팬들은 대학농구의 반란을 즐기며 옛 농구대잔치의 향수를 떠올렸다.

    코트의 열기는 뜨거웠다. 대회가 열린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평균 4,721명의 관중이 찾았다. 1년 전 초대 대회와 비교해 관중이 약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려대와 상무가 맞붙은 결승전 관중수는 6,072명이었다. 이는 같은 구장을 홈으로 쓰는 인기 프로구단 서울 SK의 전 시즌 평균 관중과 비슷한 숫자다.

    이처럼 뜨거운 관심 속에 고려대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학년 센터 이종현은 대회 평균 22.3득점, 14.0리바운드, 2.3블록슛, 야투 성공률 75.0%를 올려 MVP로 선정됐다. 3학년 빅맨 이승현은 평균 14.8득점, 12.0리바운드, 4.3어시스트로 이종현과 함께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고려대는 대학 최강팀이었다. 이종현이 입학 예정 자격으로 참가한 2012 농구대잔치를 시작으로 2013년부터 이승현이 4학년이었던 2014년까지 주요 대회 우승을 싹슬이했다.

    함께 있을 때 그들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이종현은 오래 전부터 이승현과 함께 뛰는 모습을 꿈 꿨다. 같은 포지션 선수로서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승현은 용산고 1학년 시절 어느 날 문자 한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휘문중 2학년 이종현입니다. 형님. 존경합니다. 친해지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승현은 문자를 받고 당황했다. 당시 친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종현은 당시 고교 최고 유망주였던 이승현을 닮고 싶어했다. 고려대 진학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한 둘은 프로에서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이승현은 2014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고양 오리온 유니폼을 입었고 이종현은 2년 뒤 울산 현대모비스의 1순위 지명을 받았다.

    대학 때처럼 같은 팀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두 선수 모두 최정상급 빅맨이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프로 무대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을 기회가 한동안 없을 게 확실했다.

    국가대표팀에 나란히 합류했던 2017년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아컵 대회가 둘이 함께 호흡을 맞춘 마지막 무대였다.

    그러던 지난 11월11일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현대모비스, 오리온, 전주 KCC가 단행한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이종현이 이승현의 소속팀 오리온으로 전격 이적한 것이다.

    농구계가 깜짝 놀랐고 이승현과 이종현도 놀랐다.

    2015 프로아마 최강전 결승전을 앞두고 오리온 이승현(사진 왼쪽)과 고려대 이종현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당시 결승전은 오리온의 승리로 끝났다 (사진=KBL 제공)

     



    이종현은 "(이)승현이 형과는 은퇴하기 전에 한팀에서 뛰어보자는 얘기를 했다. 같이 뛴다는 건 현실적으로 힘든 일 같았다. 이렇게 생각보다 일찍 만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종현은 "형과 재회해 너무 좋다. 설레고 옛날 생각도 난다"며 기뻐했지만 사실 둘이 재결합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수년간 이종현이 고난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종현은 2010년대 들어 한국 농구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빅맨이었다. 2년 선배인 이승현보다 먼저 대표팀에 뽑혔고 최소 10년 이상 국가대표 주전 센터는 그의 몫 같았다.

    하지만 이종현은 2018년부터 코트 대신 병원과 재활 센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부상이 찾아왔고 회복 후에는 무릎을 다쳤다. 은퇴를 결심해도 이해할만한 불운이었다. 이토록 불운한 선수는 없었다.

    이종현은 2020-2021시즌을 앞두고 성공적으로 재활을 마쳤지만 이미 팀내 입지는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평균 출전시간이 6분에 불과했다.

    마침 이승현의 백업 빅맨이 필요했던 오리온의 레이더에 이종현이 들어왔다. 오리온은 정상급 포워드 최진수를 내주는 출혈을 감수하고 이종현을 데려오기로 했다.

    이종현이 아마추어 시절부터 보여준 가치를 감안하면 전성기 시절 기량의 80% 정도만 근접해도 오리온은 트레이드의 승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보여준 게 많지 않다. 코트 밖에서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이종현은 자신을 향한 걱정과 우려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팬들은 제가 농구하는 모습을 못 보셨기 때문에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 몸 상태가 예전 같지는 않고 같을 수도 없다"면서도 "걱정을 깰 자신은 있다. 저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 트레이드에 대한 인식을 좋게 바꾸려면 결국 제가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현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친하고 가장 존경하는 선배 이승현의 도움이 큰 몫을 차지했다.

    이승현은 "그렇게 부상을 당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종현이가 그때 자기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여기서 진짜 끝내야 되는 게 맞냐고, 정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승현은 이종현에게 "네가 여태까지 농구를 한 세월이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고 격려했다.

    두 선수는 지난 비시즌 기간에 함께 스킬트레이닝을 했다. 이승현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훈련장을 찾았다. 더불어 곁에서 이종현의 코트 복귀 준비를 도왔다.

    이종현이 오리온 과자 중 가장 좋아한다는 꼬북칩 초코츄러스를 직접 구해 선물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속팀은 달랐지만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두 선수는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등번호는 고려대 시절 달았던 32번(이종현), 33번(이승현) 그대로다. 12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진행된 팀 연습에서 두 선수가 나란히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을 때 예전 느낌을 물씬 풍겼다.

    강을준 오리온 감독은 이승현을 "고양의 수호신"이라 부른다. 이승현의 팀내 입지는 대체불가 수준이다. 과거에 이승현보다도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종현은 이제 조력자로서 또 한번의 시작을 준비한다.

    둘은 서로 경쟁해야 하는 포지션이지만 묘하게도 경쟁자 같지가 않다.

    이승현은 "종현이는 이제 보여줘야 할 때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팀에 적응해야 하고 체력과 감각도 끌어올려야 한다. 옆에서 도와주겠다.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가겠다"며 웃었다.

    이종현은 "승현이 형이 옆에서 많은 힘이 돼줬고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었다. 두목같은 리더십도 있고 수호신 같은 든든함도 있다. 앞으로 수호신의 보좌관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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