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1. "사장의 폭언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듭니다. '닭대가리냐', '미친 거 아니냐'고 모욕을 주고, '뇌가 없는 사람이냐'며 소리를 지릅니다. 사소한 업무 실수를 이유로 경위서를 쓰게 하는데, 경위서를 제출하면 빨간펜으로 정정해 다시 써오게 합니다. 어떤 날은 온종일 업무도 하지 못하게 경위서를 계속 반려시킵니다.또 제게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며 자진 퇴사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지 않겠다고 했더니, 앞으로 계속 시말서를 쓰게 하겠다고 합니다. 제 시말서를 모아서 징계위원회를 열겠다는 협박도 이어졌습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힘이 듭니다."(A씨)#2. "용역업체에서 일을 합니다. 밥을 먹고 있었는데, 원청업체 관리자가 본인이 지시한 시간에 밥을 먹지 않는다고 경위서를 써오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출근하자마자 원청 관리자가 저를 오라고 하더니, 자기가 부르는 대로 경위서를 받아 적으라고 했습니다. 두 번 경위서를 작성했는데 '2회 이상' 경위서를 썼기 때문에 해고사유가 충족된다며 그날 부로 해고됐습니다. 이렇게 작성한 경위서가 정당한가요? 너무 황당합니다."(B씨)
근로자가 사고나 비위행위에 연루됐을 때 해당사건의 경위를 상술해 회사에 제출하는 '시말서'(始末書)를 이용한 직장 내 갑질이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의 중대한 과오가 아닌 사소한 실수로도 '꼬투리'를 잡아 반복적으로 징계를 하거나 자진퇴사를 유도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올 1월부터 지난달까지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중 시말서나 반성문을 직장에서 강요당했다는 제보가 143건으로 집계됐다고 25일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적은 문서'라고 시말서의 뜻을 규정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해 "국립국어원은 시말서를 경위서로 순화해 사용하라고 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시말서는 위력을 떨치고 있다"고 짚었다.
같은 맥락에서 '잘못했다'는 반성의 뜻이 담기지 않은 경위서와 달리 시말서는 '반복된 잘못'에는 징벌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 고용주들이 직원들을 겁박하는 용도로 쓰이기 좋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대법원은 시말서가 사건 관련 '단순 보고'를 넘어 자발적 반성을 담도록 강요할 때 이는 헌법 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0년 판례에서 "취업규칙에서 사용자가 사고나 비위행위 등을 저지른 근로자에게 시말서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경우, 그 시말서가 단순히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근로관계에서 발생한 사고 등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단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이나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헌법이 보장하는 내심의 윤리적 판단에 대한 강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한 취업규칙 규정은 헌법에 위반돼 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에 따라 효력이 없고, 그에 근거한 사용자의 시말서 제출명령은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며 "근로자가 그와 같은 시말서의 제출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징계사유나 징계양정의 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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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직장갑질119는 '시말서 O회 제출 시 해고' 등으로 시말서를 해고사유로 삼는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역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대법원은 해고의 정당성은 사회통념상 사용자가 해당 근로자와 근로계약관계를 계속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사정이 있는지 여부에 의해 판단해야 할 것이고, 반복적인 시말서 제출 시 해고가 가능하도록 정한 단체협약·취업규칙의 '시말서 징계규정'만으로는 징계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도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에서 반성문 강요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명시하고 있다. 회사에서 시말서를 강요한다면, 대법 판결에 따라 거부하면 된다"며 "경위서란 제목으로 사실관계를 쓰더라도 상사가 반성, 사과, 재발방지, 처벌 등의 단어를 강요한다면 대법 판례와 근로기준법에 따라 위법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인들에게 '시말서 갑질' 3대 대응법으로 △시말서 대신 경위서를 작성한다 △반성·사죄 등의 내용을 담지 않고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만 기술한다 △경위서(시말서) 강요 및 수정 요구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다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