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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부당 명령 거부권' 법제화 검토…'갑질' 원천봉쇄 추진

軍 '부당 명령 거부권' 법제화 검토…'갑질' 원천봉쇄 추진

2018~22년 군인복무기본정책서에 언급
"사적지시, 위법을 요구하는 명령, 존엄성과 인권 해치는 명령"
독일연방군 등의 경우 해당 사항 법에 명시
정경두 전 장관 "법규에 따른 지휘권 보장, 장병 인권 보장"
"현장에서 혼란·부담 있을 수 있어 철저히 준비해야" 비판도

한 부대 내부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국방부가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권'을 법에 명시하고 장병들을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직의 특성을 악용해 상급자가 하급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갑질' 문제 등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취지다.

14일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2018~22년 군인복무기본정책서를 보면, 군 당국은 '정당한 명령의 발령과 복종'이라는 주제로 상관이 적법한 기준에 따라 직무와 관련된 명령을 내리며 하급자는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명령을 이행할 수 있도록 이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은 '군인복무규율'에서 규정하고 있는 군인의 기본권 제한 및 의무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는 동시에, 장병 인권 강화, 건전한 병영문화 조성, 권리구제 등을 통해 군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김병기 의원실 제공)

 

군인복무기본정책서란 군인복무기본법에 따라 5년 단위로 수립해야 하는 '군인복무에 관한 기본정책'의 방향, 연도별 추진 계획, 기본 지침 등을 다룬 문서다.

현행 군인복무기본법 24~26조는 군인의 명령과 이에 대한 복종, 직권남용 금지 등을 다루고 있다. 다만 이 법에는 상급자가 어떤 명령을 할 수 없는지는 적혀 있어도 하급자가 어떤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국방부는 "상관의 명령이 위법한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복종을 하는 것은 범죄이며 이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라며 "상관은 언제나 적법한 직무상의 명령을 내려야 하고 사적이고 감정적인 명령을 내려서는 안 되며, 적법한 명령의 신속하고 정확한 이행을 위해선 하급자의 분별력과 준법의식도 요구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군 당국이 법률화를 검토 중인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의 권리'에서 '정당하지 않은 명령'의 예로는 사적지시, 위법을 요구하는 명령,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해치는 명령 등이 제시됐다. 이 문서는 또 "하급자의 거부할 권리, 신고의 의무 등을 검토한 후 필요 시 법률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군인복무에 관한 기본정책' 연도별 추진 계획. (사진=김병기 의원실 제공)

 

즉 하급자의 윤리의식에 의거한 분별력을 기반으로 해 법에 어긋나거거나 직무상 권한 범위를 벗어나는 등 정당하지 않은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사항은 일부 선진국 군대에서는 이미 법으로 명문화돼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 행위를 저질렀던 독일군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현행 군법에 이같은 사항을 명시했다.

독일연방군 '군인의 지위에 관한 법률(Gesetz über die Rechtsstellung der Soldaten)' 11조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공식적인 목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불복종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해당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에 대한 면책 내용도 붙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해당 명령이 범죄에 해당한다면 따라서는 안 된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정책서는 2019년까지 '정당한 명령에 대한 기준(안)' 정립과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의 권리·의무조항' 연구를 끝낸 뒤 2020~21년 사이 전자는 기준안 배포, 후자는 법령조항 개정을 시행한다고 덧붙였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지난 2019년 11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별관에서 자유한국당 영입 추진 보류와 공관병 갑질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그동안 군에서는 박찬주 전 대장의 갑질 사건 등 상급자가 지위를 악용해 하급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만연했다. 뿐만 아니라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와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정치개입 등 상급자가 직무 범위를 벗어난 명령을 내려 추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투서가 잇따라 올라오는 등 이러한 '갑질' 사건이 공분을 사자, 지난 4월과 6월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법규에 따라 정확히 지휘권을 보장하면서도 장병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선진화된 병영 문화로 가는 과정이다"며 "내부의 (신고) 시스템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잘 작동될 수 있도록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현재 검토하고 있는 내용 또한 '신고의 의무'를 언급하고 있는 것 등으로 볼 때 법안을 통해 장병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넓은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범위가 포괄적이어서 현장에서 혼란이나 부담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해당 명령이 규정상 직무 범위에는 해당하더라도 하급자는 인권침해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명령이나, 정치적 중립 의무와 관련된 명령인지 일일이 법적으로 따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병기 의원은 "군의 윤리 의식을 높인다는 제도 도입의 취지는 매우 바람직하지만, 거부할 수 있는 명령의 범위가 모호하면 현장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며 "분별 기준을 정립하고 교육하는 등의 일이 보다 신중한 검토 속에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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