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부터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영산강 지류인 문평천 제방이 무너졌다.(사진=박요진 기자)
"제방만 높여줬어도 이 정도 피해는 아닐 것인디."
10일 오전 11시쯤 전남 나주시 다시면 죽산1리 주민들과 대민 지원에 나선 군인들은 망가진 생활기기와 옷가지 등을 나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일부 주민들은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아 모습을 다 드러내지 못한 논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죽산1리에는 수십 명의 군인들과 공무원, 봉사단체 관계자들이 나와 수해 복구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날 낮부터 태풍 '장미'의 영향권에 들면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수해 복구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지난 7일 이후 나주에 내린 비는 누적 강수량 400㎜를 넘어섰으며 가장 많은 비가 내린 7일에는 시간당 최대 강수량 64㎜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남 나주시 다시면 죽산1리에서 수해 복구를 위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사진=박요진 기자)
이튿날인 지난 8일 오전 죽산보로 가로막힌 영산강 본류로 물이 흘러들어가지 못하면서 문평천을 넘어 농경지로 물이 넘어들기 시작했다. 같은 날 오전 9시를 전후해 일부 제방이 붕괴됐고 채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인근 농경지 수백 ha와 수십 채의 주택과 방앗간, 마을회관 등에 물이 들어찼다.
이번 폭우로 전남 나주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 중 한 곳인 나주시 다시면 죽산1리 이장 이재대(72)씨는 영산강 지천의 제방을 미리 높여주지 않은 지자체 등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씨는 "영산강 지천인 문평천의 제방이 낮아 많은 비가 올 경우 침수 피해가 예견됐다"며 "배수펌프가 설치돼 있었지만 죽산보 건립 이후 물이 빠지는 속도가 더 느려졌다"고 말했다.
전남 나주시 다시면에 내린 폭우로 주택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사진=박요진 기자)
인근 마을인 석곡1리에서 평생 살아온 이개희(67)씨에게도 이 같은 물난리는 처음 겪는 일이다. 이씨는 "지난 1989년 폭우로 늘어난 물이 제방을 넘는 수해 피해가 발생한 이후 제방을 높여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묵살됐다"며 "제방을 높였더라면 수해 피해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평천에 인접해 있는 죽산1리, 석곡1리와 영산강 죽산보는 직선 거리로 채 1㎞도 떨어져 있지 않다.
폭우로 인해 빠른 속도로 물이 불어나자 죽산보 수문을 최대한 개방했지만 영산강 지류의 높이가 본류를 넘어서자 이를 견디지 못한 제방이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민들의 수차례 요구에도 문평천 제방을 높여주지 않은 지자체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죽산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이다.
전라남도 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기준 나주 다시면 일대 농경지는 최소 530여 ㏊가 물에 잠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폭우로 나주 문평천 제방 0.4㎞와 봉황천 제방 0.15㎞이 무너졌고 제방 붕괴로 침수된 농경지만 800여 ㏊가 넘고 나주시 다시면·금천면 주민 100여 명이 마을회관과 인근 초등학교로 대피했다. 지난 8일 오전부터 이날 오전까지 만 이틀 이상 물에 잠겨 있는 농경지와 도로가 더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앞서 전라남도 김영록 지사는 지난 9일 수해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전남을 찾은 정세균 총리를 만나 큰 피해가 발생한 나주를 비롯해 전남 7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줄 것을 건의했다.
광주지방기상청은 이날 오후 2시 기준 남해서부 동쪽먼바다와 남해서부 앞바다, 전남동부 남해앞바다에 태풍주의보를 발효했고 전남서부 남해앞바다와 서해남부 남쪽먼바다에는 풍랑주의보를 내렸다. 이밖에 고흥·여수·장흥·강진·완도·구례·보성·광양·순천과 거문도와 초도에는 태풍주의보가, 화순에는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다.
기상청은 태풍 '장미'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오는 11일까지 광주전남지역에 50㎜에서 최고 150㎜의 강수량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태풍 장미는 이날 오후 3시쯤 통영으로 상륙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