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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 이정현이 만난 민정은 누구보다 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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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인터뷰] 영화 '반도'
    폐허의 땅 반도,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 '민정' _배우 이정현 ①

    (사진=NEW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들개'. 군대도, 도시도, 정부도 무너뜨린 좀비들 공격을 뚫고 살아남은 인간을 일컫는 이 단어에서 생존자들이 얼마나 처절한 삶을 이어왔는지 알 수 있다. 민정(이정현)은 들개다. 건장한 성인 남성조차 살아남기 힘든 좀비로 둘러싸인 반도에서 민정은 살아남았다. 어린 두 아이와 노인까지 데리고 말이다. 민정은 '엄마'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 폐허의 땅 반도에서 두려운 존재는 좀비만이 아니다. 사람도 믿을 수 없다. '631부대'라 부르는 인간들은 생존자들을 포획해 좀비들 사이에 풀어 놓고, 그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고 즐긴다. 민정은 그런 631부대로부터도 가족을 지켜야 한다.

    지옥 같은 반도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살아 온 민정의 앞에 반도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찾아온다. 그래서 그 마지막 희망을 붙잡아 보기로 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해보기로 한다. 그렇게 민정은 과거 생존의 갈림길에서 마주쳤던 정석(강동원)과 함께 나선다.

    이러한 민정이라는 캐릭터를 누구보다 섬세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관객 앞에 내놓은 배우가 이정현이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반도' 속 삶에 관해 들어봤다.

    (사진=NEW 제공)

     

    ◇ 낯선 현장, 낯선 반도를 이해하는 시간

    "이 시국에 관객이 이렇게나 오실 줄 몰랐어요. 정말 다행스러운 건 극장도, 영화인도 모두 어려운 시기에 극장이 활기를 되찾았다는 거예요. 앞으로 영화를 못 찍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많았는데, 극장을 찾아와주셔서 진짜 기쁘더라고요. '반도'를 기점으로 해서 다들 활력을 되찾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이른바 K-좀비물 '반도'는 폐허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마지막 사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다. 그동안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문명이 멸망한 후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전에 없던 폐허의 땅을 그려내기 위해 국내 최정상 VFX(Visual Effects·시각적 특수효과) 제작진 250여 명이 CG 작업 약 1300컷을 진행했다. 관객에게는 기대로 작용하는 지점이지만, 배우에게는 많은 것을 상상에 맡겨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현장이기도 하다.

    (사진=NEW 제공)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서, 특히 카체이싱 부분을 보고 이걸 도로를 막고 찍나 걱정이 한가득이었죠. 다 CG로 한다고 해서 이해를 못 하고 현장에 갔는데 세트 전체가 그린 스크린에 트럭 앞부분만 있더라고요. 멘붕이 왔죠. 그런데 감독님이 워낙에 철저한 분이라 1년 전부터 프리 프로덕션(영화 준비 단계)을 하면서 CG를 완성해 놓으셨더라고요. 합성된 걸 가지고 이렇게 할 거라며 시각적으로 충분히 보여주니까 수월하게 연기했어요."

    다행히 잘 준비된 현장이었다. 어떤 상황에 민정이 놓여 있는지, 그런 민정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머리에 그려졌다. 덕분에 이정현은 민정의 상황을 접하는 관객들이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장면마다 감정을 담아내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도 놀랐지만, 완성된 '반도'를 보자 감탄이 나왔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정교하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진짜 시각적인 표현이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NEW 제공)

     

    ◇ '엄마'라는 이름이 민정을 강인하게 만들었다

    믿기지 않을 수 있겠지만, '반도'는 배우 이정현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도전한 액션 블록버스터다. '테크노 여전사'라는 수식어가 누구보다 어울렸던 이정현은 이번 영화에서 진정한 전사가 됐다.

    총을 잡는 법도, 싸우는 법도 제대로 몰랐던 민정은 익숙한 듯 좀비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방아쇠를 당기는 데 망설임도 없다. 망설이는 순간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지난 4년의 세월에서 체득한 것이다. 민정의 강인한 생존력 이면에는 깊숙하게 자리잡은 모성이 있다. 이 다각적인 감정과 체험이 깃든 민정을 그려내는 이정현은 민정 그 자체다.

    (사진=NEW 제공)

     

    "민정은 폐허가 된 도심 속에서 아이들 때문에 짐승처럼 살아남았어요. 모성애 때문에 생긴 전투력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죠. 631부대 안에서 살아남아서 아이들과 탈출을 한 엄마라면, 그 정도 전투력이 생길 거 같아요. 그런 부분이 되게 많이 공감됐어요."

    이정현은 민정이라는 인물을 현실에 있는 모든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거기서부터 민정을 향한 공감이 시작됐고, 동시에 깊어졌다.

    "첫 장면을 보면 정석이 매형과 누나, 조카랑 탈출할 때('부산행' 속 시점) 민정을 만나요. 아이만이라도 태워 달라고 하지만 정석은 그냥 가죠. 실제로 그런 상황에 모든 어머니가 놓인다면, 아이를 위해서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할 거 같아요. 짐승들처럼 변한 631부대가 있는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완전히 변해야 하는 거죠."

    (사진=NEW 제공)

     

    ◇ 민정의 희망, 현실 사람들의 희망

    이정현이 이야기했듯이 민정의 살려달라는 애절하고 다급한 외침에도 정석은 외면하고 자리를 떠난다. 민정 옆에는 부상당한 남편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뿐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반도 밖 사람들은 반도의 사람들을 버렸다. 누군가는 '신이 버린 곳'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런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경계심일 테다. 더군다나 631부대라는 인간성마저 버린 광기 어린 인물들이 도사리는 곳이다. 그런 반도에서 만난 낯선 인물인 정석을 민정은 쉽게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쉼터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이 데려왔으니까요. 그리고 정석이 탈출할 수 있다니까 희망을 찾은 거죠. 사실 민정도 반도에서 살아갈 생각에 막막했는데 말이죠. 여기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으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반도를 탈출하기 위해서 정석이랑 한 팀이 돼서 움직인 거라 생각해요."

    구조의 손길이 끊긴 곳, 내일을 기약할 수조차 없는 곳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민정은 위험을 무릅쓰기로 한다. 쉽지 않음을 알기에 과거 정석의 과오와 양심을 건드리며 준이(이레)와 유진(이예원)을 부탁한다.

    (사진=NEW 제공)

     

    이러한 민정은 '부산행' 속 석우(공유)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를 지키겠다는 부성애로 결국 자신을 희생한 석우처럼 민정도 영화 말미에 선택 아닌 선택을 마주한다. 아이들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내놓는 것이다.

    여기서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과 다른 선택을 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두가 삶과 희망을 잃은 시대, 희망이라는 가치가 가진 소중함을 붙잡고 민정이 석우와는 다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다. 어쩌면 멸망의 세계를 다루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최선의 결말이자 메시지다.

    "죽기 싫었죠. 같이 살아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죽는 거구나 했던 거죠.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끝나서 좋았어요. 또 누군가가 죽었다면 엄청 답답하고 슬펐을 거예요."

    이정현은 많은 관객에게 '반도'가 어떻게 다가가길,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랄까.

    "모두가 힘든 시기잖아요. 좋은 추억이 되는, 재밌는 오락 영화로 남았으면 해요. '작년 이맘때 반도를 봤지'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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