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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주영하 "오래 전 그 식탁, 독상으로 복귀할 것"

[포스트코로나] 주영하 "오래 전 그 식탁, 독상으로 복귀할 것"

"개별식기, 덜어먹는 반찬" 포스트코로나 식탁 바뀐다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MHz (18:25~20:00)
■ 방송일 : 2020년 7월 16일 (목요일)
■ 진 행 : 정관용(국민대 특임교수)
■ 출연자 : 주영하(음식인문학자)

 


◇ 정관용> 오늘 특별기획 13번째 시간 <코로나19 신인류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의 새로운 변화들. 오늘 짚어볼 변화는 먹는 이야기입니다. 식탁 위에도 뉴노멀이 온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법’ 이런 제목을 붙여봤는데요. 음식인문학자이십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를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주영하>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음식인문학이라는 분과 학문이 있어요?

◆ 주영하> 제가 만든 거예요.

◇ 정관용> 혼자 하세요, 혼자?

◆ 주영하> 저하고 이제 제 제자 박사들하고 같이 하죠. 원래 보통 일반적으로 식품이나 음식에 대한 연구라는 게 대체로 식품영양학자, 공학자, 농학자 이분들만 연구하는 줄로 국내에서 알고 있죠. 그러니까 제가 역사와 문화를 역사학, 문화인류학, 민속학 이런 류의 학문에서 제가 올해 연구한 지가 이제 35년인데 잘 구분을 안 해 주니까 최근에 음식인문학이라고 하자고 개념을 잡았던 거죠.

◇ 정관용> 사실 외국에는 이런 분들 꽤 많잖아요.

◆ 주영하> 굉장히 많죠.

◇ 정관용> 그렇죠?

◆ 주영하> 인문사회학자들이 대부분 먹는 거 가지고 엄청나게 대작과 논문들을 쓰고 비판적인 논쟁들을 제시하죠.

◇ 정관용> 오늘 이제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가 먹는 문화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 얘기를 할 텐데. 전형적인 한국 사람들의 밥상을 떠올려보면 둘러앉아서 밥과 국이 있고 앞에 반찬이 쭉 늘어져 있고 찌개가 있고 같이 숟가락을 찌개에 넣어서 퍼먹고 반찬 먹을 때는 젓가락질로 서로서로 해서 먹고 이거잖아요.

◆ 주영하> 그렇죠.

◇ 정관용> 이런 식의 식문화가 언제부터 이렇게 정착된 거예요?

◆ 주영하> 굉장히 오래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실제로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것은 1920년대 이후에 조금조금 시작하다가 음식점에서는 이제 그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시작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문교부죠, 당시에는. 문교부에서 국민생활 개선운동을 하자 이러면서 이제 캠페인을 했던 항목 중의 하나가 공동 식탁을 사용해야지. 독상을 사용하지 말자. 그러니까 그 당시에도 그렇게 했고요. 그다음에 6. 25 때의 사진자료를 보면 미군 장교한테 시골의 어른들이 독상에다가 이른바 소반이라고 하죠. 소반에다가 상을 대접하고 어른이니까 대접한다고 그렇게 했으니까 1960년대까지는 아주 양반이라고 했던 댁에서는 남자 가장들은 꼭 독상을 받아서 혼자서 식사를 했습니다.

◇ 정관용> 그랬어요?

◆ 주영하> 조선시대 때는 물론 당연하고요.

◇ 정관용> 그랬어요?

◆ 주영하> 모든 남자들이 조선시대 때는 다 독상을 받았고요. 독상을 받고서 같은 공간에서 각자 독상을 가지고 같이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 정관용> 그러니까 무슨 손님이 왔다 그러면.

◆ 주영하> 독상이 나와야죠.

◇ 정관용> 그 사람용 독상.

◆ 주영하> 그렇죠.

◇ 정관용> 집주인용 독상. 그래서 따로 먹으면서 그러나 한 공간에 있는.

◆ 주영하> 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죠. 심지어 왕실에서 큰 연회 한 300명, 400명이 참석하는 연회를 해도 반드시 독상이 준비되고요. 그러면 한 번에 다 차릴 수가 없으니까 이제 나인들이 그때 그때마다 음식을 바꿔서 술하고 음료하고를 대접을 했고 여성들도 궁녀. 왕비나, 궁녀 전부 다 지체가 높은 집안 사람들은 다 독상을 받았습니다.

밥상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 정관용> 그게 조선시대 그 이전은 어땠는지 혹시 기록 같은 게 있어요? 삼국시대, 고려시대까지.

◆ 주영하> 그때는 없고요.

◇ 정관용> 없어요?

◆ 주영하> 고려 말 때는 평상에 쪼그리고 앉아서라도 독상을 받았다, 관료들이. 왕은 물론이고.

◇ 정관용> 그것의 의미는 뭘까요? 독상이라는 것은.

◆ 주영하> 여러 가지 주장이 있을 수 있는데요. 관습이니까 뭐가 정답이다 이렇게 설명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고대 중국의 공자 이전 시대에 성현들을 보면 전부 다 독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남자는 반드시 혼자서 식사해야 되고 부부가 혼인하고서도 같이 식사하면 안 된다.

◇ 정관용> 왜 안 되는 거예요?

◆ 주영하> 그게 군자다움이라고 하는 걸 강조했는데 아시다시피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을 생활 속에 실천하려고 했던 선비들의 사회였으니까.

◇ 정관용> 남녀 유별의.

◆ 주영하> 남녀 유별과 그다음에 혼자의 독상. 그러니까 한꺼번에 음식을 다 차려놓고 한꺼번에 먹게 되는 거죠. 그러다가 이제 공동 식탁을 사용하니까 밥하고 국하고 숟가락, 젓가락만 내 것이고 나머지는 다 공유했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요새 최근에 미국에서 한국인 식당에 가는 백인들이 많은데 가길래 반드시 친구가, 한국인 친구가 있으면 알려줘요. 먹는 법, 가서 반찬하고는 다 공유다. 밥하고 국만 네 거야. 그러면 깜짝 놀라는 거죠.

◇ 정관용> 그렇죠. 상대적으로 미국 같은 경우는 각자 접시에다가 그날의 어떤 한두 가지 요리를 가운데 놓으면 각자 그걸 자기 접시에 덜어서 이렇게 먹는 스타일이잖아요.

◆ 주영하> 그렇죠. 그것은 이제 산업혁명 이후에 특히 패스트가 있었지 않습니까? 전염병에 대한 이렇게 그 두려움 그다음에 미생물이라고 하는 분야가 아주 학문적으로 성과를 내니까 그러니까 이제 침을 공유하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 깊게 특히 백인들 사이에서 공유돼 있어서 70년대 미국의 인류학자가 조사한 게 있는데요. 사과를 통으로 먹잖아요.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었다가 이제 부인이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갔단 말이에요. 그러면 남아 있는 한 입 자국이 있는 그 사과를 남편은 먹는다는 거죠. 부부 사이에는 침을 공유하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하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들하고는 침을 공유하지 않는 것이 이른바 전염병을 예방하고 위생이고 그다음에 이제 시민사회의 어떠한 일종의 에티켓으로 자리 잡다 보니까 서양 사람들은 백인들은 그렇게 안 한다는 거죠.

◇ 정관용> 그럼 서양은 중세 이전은 어땠는지 혹시 자료가 있어요?

◆ 주영하> 중세 이전에는 같이 먹었습니다. 우리하고 똑같이 먹었고.

◇ 정관용> 그랬었죠?

◆ 주영하> 그다음에 20세기 초반에 남부 독일의 농민들은 심지어 큰 대접에다 수프를 놓고 같이 스푼을 공유하면서 같이 떠먹는 모습의 사진도.

◇ 정관용> 스푼까지 공유했어요?

◆ 주영하> 그렇게 했으니까 일종의 시민으로서의 에티켓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강조되면서 이른바 이제 위생적인 문제하고 결합되어서 서양식의 레스토랑에서의 각자 개별화된 식탁을 받게 된 거죠.

◇ 정관용> 이게 생각해 보니까 이게 우리는 조선시대, 고려 말부터의 문화는 위생적으로는 훨씬 좋았던 거잖아요.

◆ 주영하> 양반들에 한해서.

◇ 정관용> 위생적으로 좋았다가 우리는 나빠진 거고.

◆ 주영하> 그렇죠.

◇ 정관용> 서양은 나쁜 상태에서 좋아진 거고.

◆ 주영하> 그렇죠.

◇ 정관용> 이게 뭐가 뒤바뀌었네요?

◆ 주영하> 그러니까 서양의 역사학자들 중에서는 적어도 19세기 이전에 식탁 위에서 위생적인 부분뿐이 아니고 에티켓과 예절이 있던 사람들은 중국인밖에 없다고 했는데 제가 이제 보태놓은 게 중국인뿐이 아니고 한국의 조선시대 선비들은 중국보다 더 막강했다라고 사실. 중국인들은 공유하거든요, 계속큰 접시에다가 반찬을 요리를 놓고서 젓가락 하나 가지고.

◇ 정관용> 덜어 먹죠.

◆ 주영하> 덜어 먹기도 하는데 그 침이 입에 들어갔던 젓가락을 계속 사용하잖아요.

◇ 정관용> 자기 젓가락으로 덜어 먹죠.

◆ 주영하> 자기 젓가락으로 덜어 먹고 그다음에 심지어 저도 경험했는데 20년 전만 해도 베이징에서 너무 반가운 사람이 오면 자기 입에 넣었던 젓가락으로 저한테 음식을 덜어주고. 그런데 1915년에 말레이시아 화교 의사 중에 한 명이 결핵병이 많으니까 그 결핵의 원인이 이 잘못된 식사 방식이다. 그래서 이제 중국 식당에 가면 보셨듯이 회전식탁이 있잖아요.

◇ 정관용> 맞아요.

◆ 주영하> 그걸 개발한 거예요. 그걸 제한하고. 그래서 덜어 먹자라고 했는데 결국 성공 못했고요. 1980년대부터는 이제 홍콩에서부터 내 입에 들어가는 젓가락하고 그다음에 반찬을 옮기는 젓가락 2개를 주자 그렇게 그 운동을 했어요.

◇ 정관용> 그러니까 요리 접시에 임의 젓가락을 하나 놔두잖아요. 각자용 젓가락 말고. 그러면 회전하면서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에 있는 젓가락으로 덜어 먹고.

◆ 주영하> 그렇죠.

◇ 정관용> 그런 방식으로 한 거 아닙니까?

◆ 주영하> 홍콩은 상당히 많이 그게 진전이 되었는데요.

◇ 정관용> 중국 본토는 아니고.

◆ 주영하> 10년 전 본토에서 제가 아는 몇몇 분들이 캠페인을 했는데요. 처음에는 그렇게 하다가 이게 입에 들어간 젓가락이 어느 젓가락인지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아직도 안 되고. 아마 이번에 제가 연락을 했더니 코로나19 때문에 자기가 10년 동안 고생해서 한 캠페인이 이제 먹히고 있다, 사회에서 그렇게 얘기합니다.

◇ 정관용> 그런데 아무튼 서양은 그게 전염병으로 인해서 식생활이 위생적으로 변화하면서 덜어 먹는 문화가 생겼다 이거 아닙니까.

◆ 주영하> 그렇죠.

 


◇ 정관용> 그런데 우리는 그러면 그런 전염병으로 인한 공격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같이 먹는 문화로 계속 간 겁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 주영하> 어떻게 보면 효율성이죠. 가정에서 독상을 차린다고 상정을 하면 만약에 집에 시부모가 있고 그다음에 남편이 있다.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3개의 독상을 옛날 한옥 같으면 부엌에서부터 사랑방이나 대청마루까지 오는 데 큰 집이면 거의 10m 가까이 들고 옮겨야 되는데요. 그 노동력을 줄이라고 한 것은 굉장히 효과적인 방식이었는데 일본도 우리하고 비슷했거든요. 에도 시대 때까지는 부유 사무라이나 부유층들은 그랬는데 일본은 서양 틀을 빨리 받아들여서 개별화시켰죠.

◇ 정관용> 지금 현재 상태로 딱 놓고 보면 서양 또 중국, 일본, 제 머릿속에 떠올려보니까 우리나라가 제일 문제네요, 이 먹는 문화에 있어서.

◆ 주영하> 중국하고 우리가 문제입니다.

◇ 정관용> 감염병적 어떤 경계의식이 아예 없는 문화네요. 가족끼리만이 아니라 그냥 직장 동료들하고 식사를 하러 가도 지금 그냥 다 같이 먹잖아요.

◆ 주영하> 실제로 제가 지난주에 농림부 공무원들하고도 만났었는데, 실제로 술집뿐이 아니고 음식점에서도 옆에 있는 테이블에서 감염된 케이스가 한번 보도된 적이 있죠. 그러니까 그 문제고. 그다음 식사할 때는 어차피 마스크를 벗어야 되고.

◇ 정관용> 그렇죠.

◆ 주영하> 가족끼리는 확인되니까 문제가 없는데 식사할 때는 어떻게 보면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분이라고 해도 그분의 동선이.

◇ 정관용> 모르죠.

◆ 주영하> 어떻게 됐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다 경험하시겠지만 음식점에서는 그냥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테이블도 간격을 두지 않고 다 예전하고 똑같이 붙어서 먹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기회에 좀 개별화된 위생적인 식탁의 모습들을 다시 우리가 좀 갖추면 굉장히 좋은 효과가 뭐냐 하면 첫 번째는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어요. 왜냐하면 4명이 공유하는 반찬을 놓다 보니까 남더라도 수북하게 안 쌓아놓으면 손님들이 싫어한대요. 그리고 다 안 먹잖아요. 그래서 7~80년대, 90년대에 정부가 나서서 이제 음식물쓰레기 줄이자고 캠페인을 했는데 업주 입장에서는 손님이 안 올 수 있고 그렇죠? 손님 입장에서는 왜 우리를 이렇게 야박하게 해 이렇게 할 수 있으니까 계속 실패를 했거든요, 그동안.

◇ 정관용> 그러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한번 좀 정리해 보세요.

◆ 주영하> 농림부에서는 지금 제안한 게 이렇게 일반적인 구내식당이나 학교식당에서는 지금 충분히 지키고 있는 편인데.

◇ 정관용> 그렇죠. 식판을 들고 각자가 조금씩 덜어서 자기 걸 담아서 가져가는 방식이죠.

◆ 주영하> 그렇죠. 그러니까 우선은 식탁 배치를 좀 바꿔야 되는데 이게 고민스러운 게 식탁을 많이 배치시켜야지 업주 입장에서는 영업이익을 볼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 문제가 있는데 우선은 개별화된 식기를 제공해야 됩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주영하> 각자한테. 그리고 반찬도 조금조금씩. 지난주에 우연히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코로나 이후에 그렇게 바꾼 한 식당 업주를 만났었는데요. 그분 이야기는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을 했대요, 자기도. 혹시나 단골 손님들이나 손님들이 오면 타박하지 않을까. 그런데 마주앉아 있더라도 각자한테 반찬을 주니까 손님들이 너무 좋아하더라는 거예요. 침을 공유하지 않으니까. 반찬을 조금씩 조금씩 주니까 이제 다 먹고 난 부분은 보충해 주고 그렇게 했더니 첫 번째는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어서 60%가 줄어들었답니다. 그래서 그게 일종의 이익이죠.

◇ 정관용> 당연하죠. 음식점 입장에서는 크죠, 이게.

◆ 주영하> 그다음에 혼자 오더라도 그렇게 차려준대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냐면 혼자 왔는데 미안해서 그렇게 해 주니까 저가를 안 시키고 좀 비싼 걸 시킨대요. 그래서 이제 경험상 괜찮더라 했는데 그건 특수한 사례고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정부의 공적 영역에서의 좀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금 지원이.

◇ 정관용> 자금 지원을?

◆ 주영하> 왜냐하면 식기를 마련하고 바꿔야 되고요. 그다음에 식탁도 숫자를 줄여야 되고.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일제 시대 때부터 식당 업주가 제일 만만해서 그런 식탁 위의 계몽. 예를 들어서 혼분식이라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위생 문제라든지 할 때 경찰권이 개입되었던 적도 있잖아요. 그래서 경찰 순사가 가서 뭐라고 하고 그다음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위생과 공무원들이라는 사람들이 와서 조금이라도 먼지가 있으면 그냥 영업정지를 시키고.

◇ 정관용> 옛날이죠. 혼식 장려할 때는 도시락 검사했잖아요.

◆ 주영하> 그렇죠.

◇ 정관용> 흰 쌀밥 싸오면 매 맞았어요.

◆ 주영하> 저도 그랬는데 그런 상황에서의 식당 업주들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정부의 지시는 일종의 통제니까요.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각 식당 업주와 그다음에 단골들이 조금 논의를 할 필요가 있고요. 각자의 성격에 맞도록 하고 그런 데 대해서 안을 내면 지방자치정부나 중앙정부에서 일정하게 지원해 주는 방식. 그렇게 하면 이 기회에 우리의 오래되지도 않은 식사 방식을 좀 더 코로나19 이후에 조금 더 안정되게 편안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정관용> 이건 지금 음식점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까? 가정에서는 기존대로?

◆ 주영하> 가정에서는 기존대로 해도 되죠. 왜냐하면 가정에서 그렇게 하려면 이렇게 누군가가 도움이나 하인이 있지 않으면 어려운 거죠. 가정에서 함께 식사를 해야 되고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식문화도 바뀐다. 음식인문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 주영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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