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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홍경, 그가 진심으로 그려낸 '결백' 속 정수

[노컷 인터뷰]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곳, 대천에 모인 사람들 ④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 안정수 역 배우 홍경 - 1편

영화 '결백' 출연배우 홍경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스포일러 주의

안정수는 순수하고 깨끗하다. 어쩌면 영화 '결백' 속 어느 누구보다 결백한 인물이 정수일 듯싶다. 정수는 스물여섯 살 청년이지만, 열 살 아이 정도의 지적 능력을 보이는 자폐성 장애를 가졌다.

어릴 적 집을 떠난 누나 정인(신혜선)이 고향 대천으로 돌아왔다.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된 엄마 화자(배종옥)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희미한 기억 속 돌아온 누나 정인이 정수는 반갑기만 하다. 정인이 엄마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추인회 시장(허준호)을 비롯한 대천의 남성들이 정인을 공격할 때, 정수는 정인의 곁을 지킨다.

정수는 화자의 곁을 쭉 지켰던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정수는 정인에게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추인회로 대표되는 남성 권력을 향한 정인의 고군분투에 조력자가 된 정수. 그런 정수를 연기한 배우 홍경은 "여성 서사 중심, 가족 드라마 중심의 영화 안에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는 건 진짜 희소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첫 스크린 데뷔작, 흔치 않은 여성 서사 영화에서 쉽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한 홍경을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홍경이 말하는 '결백'과 정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홍경이란 배우의 올곧음도 전해져 왔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제공)

 

◇ 배우 홍경의 첫 영화, 첫 장면으로 문을 열다

배우 홍경은 지난 2017년 '학교 2017' 원병구 역으로 안방극장에 데뷔한 후 '저글러스'에서 사랑의 큐피트 좌태이 역, '라이브'에서 철없고 겁 없는 고등학생 만용 역, '라이프 온 마스'에서 사건 해결에 큰 단서를 쥔 인물 오영수 역까지 조금씩 천천히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가고 있다. 그에게 '결백'은 스크린 데뷔작이다.

첫 영화 '결백'에서 처음으로 촬영한 장면은 바로 이 영화 속 첫 장면이다. 원신 원컷(one scene-one cut)으로 이뤄진 오프닝에는 그 안에 모든 주요 인물과 주요 사건이 담겨 있다. 영화의 중요한 장면과 함께 시작한 데 대해 홍경은 "첫 신에 등장한다는 것 자체도 의미 있고, 영화 첫 신이 갖는 힘이 있다"며 "그런 장면에 함께해서 정말 좋았다"고 밝혔다.

"첫 촬영 현장에서 처음으로 연기한 게 오프닝이었어요. 모든 처음은 떨린다고, 사실 많이 긴장했죠. 보셔서 알겠지만 오프닝을 롱테이크로 촬영했어요. 쭉 달리는 호흡으로 찍고 나니 정수라는 캐릭터도 잡히고, 영화의 흐름도 따라갈 수 있었어요. 선배님들이 만들어 놓은 상황 안에서 저는 제 역할에 집중해서 연기만 하면 됐었죠. 얹혀가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영화 '결백' 출연배우 홍경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배우 홍경, 진심으로 '안정수'를 그려내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홍경은 '결백'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 가장 좋았다. 그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스릴러 장르도 있고, 긴장감 넘치는 감정도 있다. 또 가부장제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고, 여성 서사가 뚜렷하게 나와 있다"며 "어떤 분들은 감정들이 과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장면들이라 공감이 갔다"고 말했다.

'결백'의 시나리오를 본 순간 오디션을 보기 위해 바로 준비했다. '정수'라는 캐릭터는 홍경에게는 일종의 '도전'과 같았다. 그래서 꼭 하고 싶었다.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큰 고비와 마주했다. 자폐성 장애를 지닌 정수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과장되거나 왜곡되게 그려낼 경우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다.

"가장 걱정했던 지점이 그거였어요. 제가 연기했을 때 장애를 가진 분이나 가족 등 주변 분들이 불편하지 않았어야 했기에 그런 부분을 제일 많이 신경 썼어요. 연기를 준비하면서 제가 해야 했고, 90% 이상 마음에 가져간 게 실제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고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주변과의 관계였어요. 표면적인 것보다 '안'을 알아가려고 노력했죠."

오디션을 보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홍경은 특수학교, 집 주변 복지관 등을 찾아다니며 서류를 내고 교육을 받은 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봉사활동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눈으로 그들의 삶을 좇았다.

봉사활동을 하며 적어도 연기를 위한 발걸음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위해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덕분에 장애인 아이를 둔 가정을 지켜본 한 관객이 그의 연기가 단순히 흉내만 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해줬다. 정수를 연기한 홍경의 진심이 전해졌다.

영화 '결백' 출연배우 홍경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홍경, 그 순간의 살아있음을 연기하다

'결백'은 인물들이 가진 죄책감을 묘하게 건드리며 '결백' 혹은 '무죄'란 단어가 갖는 아이러니를 고민하게끔 만든다.

영화에서 변호사 정인은 죄를 좇아야지 돈을 좇아선 안 된다며 자기 신념을 드러낸다. 그런 정인의 마음속 죄책감을 건드는 장면이 두 차례 나오는데 그중 하나는 정인 자신과 연관된 죄책감이다. 그리고 감춰둔 그 감정을 건드는 게 바로 정수다.

정수는 누나 정인에게 자신이 이렇게 된 게 누나 때문이라던데 그게 맞느냐고 물어본다. 순수한 표정으로 정인의 아픈 곳을 찌르며 정인이 숨겨 왔던 죄책감과 아픔을 떠오르게 만든다. 해당 장면을 찍을 때 박상현 감독은 홍경에게 어떠한 주문도 하지 않고 그가 해석한 대로 가보자고 했다. 두 테이크(take·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하나의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거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게 진짜 미묘한 신인 거 같아요. 둘의 관계는 멀어 보이면서 또 가까운 사이거든요. 정수에게 누나는 엄마만큼 애착이 강한 존재라 생각했고, 그 장면을 촬영할 때 감독님께서 이야기해준 것도 누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예요. 엄마가, 아빠가 이야기하는 표면적인 누나를 떠나 정수에게 누나는 소중한 존재예요. 그런 누나를 보게 되자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죠. 그걸 연기할 때 저도 모르는 이상한 감정들이 나오더라고요."

(사진=㈜키다리이엔티, 소니 픽쳐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제공)

 

홍경이 연기하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 화자가 첫 공판에서 검사에게 심문을 받을 때다. 자신 안의 세계에 갇혀 현실에서 괴리된 화자가 심문받는 동안 정수 역시 혼자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 홍경은 "사실 조금 의외라 할 수 있는데 나는 그 신이 정말 좋았다"며 "정수에게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엄마 뒤에 딱 붙어있는 정수가 좋았다"고 말했다.

반면 많은 배우와 함께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혼자 툭 튀어나온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일까 어려웠다. 홍경은 "내가 단독으로 나오거나 검사에게 심문받는 것보다 선배님들과 호흡할 때가 조금 더 어려웠다"며 "화면 전체에서 내가 일부분만 나온다고 했을 때 뭔가 안 해도 안 되고, 그러면서 정수로서 그 순간 살아있어야 했다. 다른 배우들의 감정선을 방해하는 행동은 하지 않되 정수의 생동감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장면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에 시선이 너무 뺏길 것 같은 경우 감독님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정수라는 캐릭터가 보인다'면서 많이 조절해주셨다"며 "이번 영화를 하면서 많이 깨우쳤고, 선배님들께 많이 배웠다"고 덧붙였다.

영화 '결백' 출연배우 홍경이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결백', 더 많은 관객이 찾아주길

영화 상영 중 의외로 관객석에서 가장 큰 반응이 나왔던 장면은 정수가 "한 대 맞으면 두 대! 맞지 말고 때려! 엄마가 그랬어"라며 자신을 때린 검찰 조사관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다. 갑작스러운 정수의 행동에 한 공간에 있던 이들 눈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인을 방해하던 인물들이 맞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시원하기까지 하다.

홍경은 "정수라는 인물 자체가 웃기려고 때린 건 아니다. 엄마에게 교육받은 대로 맞으니까 때린 건데, 많이들 웃었다고 해서 몰래 영화관에 찾아가 직접 반응을 보려고 한다"며 웃었다. 관객들은 시원하게 웃었지만 정작 그는 누군가를 때려야 하는 게 어려웠다. 형사 역의 배우 한이진을 때리고 난 후 자신을 때려달라고 할 정도로 미안한 마음도 컸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순간, 미안한 상황을 이겨내고 '결백'이 관객들을 찾게 됐다.

"지금까지 영화를 봐주신 관객분들께 제일 감사해요. 어려운 시국이고, 사실 오시면서도 걱정이 많으셨을 텐데 그런데도 찾아주셔서 감사하죠. 우리 영화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보고 나서 생각할 점도 많고요. 극장에서도 방역에 힘써주고 있으니까, 마스크 잘 착용하시고 '결백'을 더 많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웃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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